‘문명’의 진짜 의미 / 최한별

[칼럼] 최한별의 못다 한 이야기

2022-04-29     최한별

- 145년 전통의 하버드-예일 미식축구 경기, 시위로 한 시간 동안 멈추다

한국에 ‘연고전’이 있다면, 미국에는 하버드-예일전이 있다. 두 학교 간 미식축구 경기가 매해 열리는데, 무려 1875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행사인데다, ‘더 게임(The Game)’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많은 이의 이목이 쏠리는 경기라고 한다.

2019년 11월 24일, 136회 ‘더 게임’ 하프타임이 진행되고 있을 때, 갑자기 장내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사람이 경기장 내로 달려나왔다. 어리둥절한 관중의 눈앞에 이들이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누구도 이기지 않았다. 예일과 하버드는 기후 부정의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Nobody wins. Yale and Harvard are complicit in climate injustice).” 이들은 예일대와 하버드대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기후위기 시위대로, 두 학교의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 중단을 촉구했다. 시위는 70명 규모로 시작되었으나, 현장에서 관중과 선수들이 합류하며 500여 명가량으로 확대되었다. 시위로 인해 경기는 약 한 시간가량 중단되었다.

예일대는 시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지한다”면서도 “동료 학생들의 경력이 달린 경기이자 연례 전통 행사에 시위를 조직한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좌파적 기준으로 학교의 전통 행사를 훼손한 것은 옳지 않다”거나, “실제로 잘못한 것이 없는 관중과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3월 28일 MBC 뉴스데스크 영상 캡처

- ‘문명’의 핵심은 질서 아닌 정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발언도 이와 비슷하다. 이 대표는 전장연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연착시키는 투쟁은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인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비판했다.

아마 그가 말하는 ‘문명’은 사회 구조로서의 문명(civilisation)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태도를 뜻하는 시빌러티(civility)에 가까울 텐데, 사전에는 시빌러티의 뜻이 “예절”, “공손함”으로 번역되어 있다. 많은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문명사회’에서는 민폐 끼치지 않고 조용하고 공손하며, 소위 ‘점잖은’ 사람이 시민적(civil)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해외에서도 의도적으로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시위에 대해 “상식/예의/문명을 갖추라(with civility)”는 비판이 있다. 하버드-예일 경기에 뛰어든 기후위기 시위대를 향해서도 그랬고, 미국 전역에서 고속도로와 다리를 가로막으며 차량 통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대를 향해서도 그랬다. 물론, 이미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대로 한국 장애계와 너무나 흡사하게 도로와 버스를 막아 세운 해외 장애인권 활동가들을 향해서도.

그러나 시빌러티는 질서보다 정의가 핵심인 단어이다. 시빌러티의 어원인 ‘키비타스(civitas)’는 공동체 또는 국가를 의미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시빌러티는 근본적으로 공동체의 선(good)을, 이웃을,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구성원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민적 예의란 단순히 ‘점잖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곧 자신의 행복과 등치하는 공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감을 가진, 즉 ‘시민적 예의를 갖춘’(이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문명적인’) 사람에게는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같기에, 이들은 공동체의 완전한 평등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문명적인’, 즉 시민적 예의(civility)를 갖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별적 현실을 바꾸려는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돌아왔지만, 결국 문명-즉 시민적 예의라는 것은 시위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이들을 향한 철저한 차별을 방치하고 심지어 내심 옹호하기까지 하는 비장애인 구성원들에게 요구되어야 한다.

문명과 시빌러티(civility)라는 단어가 어떻게 변질되어왔는가를 생각해본다. 사회가 뒤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이들, 아무도 현재의 억압과 차별을 들추지 않았으면 하는 이들이 문명과 시빌러티에 침묵과 부동을 꾸준히 덧씌워 왔으리라. 미국 정치과학자인 키이스 바이비 시라큐스대학 교수 역시 ‘시빌러티’의 본래 의미가 변형된 과정을 설명하며 “(미국의) 반연방주의자들, 여성참정권자들과 낙태죄 폐지론자들, 그리고 20세기 시민권 운동가들은 모두 특정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행동 규범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며 “무례함과 야만성에 대한 비난, 즉 ‘문명적이지 않다(without civility)’는 표현은 기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을 위축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지적했다.

2022년, 한국에 이러한 시도가 또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를 비롯해 저항의 권리에 ‘비문명’을 운운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이 매끄럽게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으려던 자들이, 흑인에게 학교를, 버스를, 식당을 허용하지 않으려던 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3호선 경복궁역 지하철 안. 비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일렬로 들어오고 있다. 그의 옆으로 승객들이 앉아 있다. 사진 강혜민

- 진짜 ‘비문명’은 누구인가

이 대표 눈에는 분명 ‘비문명적’일 하버드-예일 경기 중단 시위의 결과는 어땠을까. 많은 이들이 ‘열심히 경기를 준비한 선수들이 무슨 죄냐’라며 시위대를 비난했지만, 정작 하버드 미식축구부 주장인 웨슬리 오즈버리는 시위를 지지했다. 그는 “물론, 우리는 최대 경쟁자인 예일대와의 경기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두 학교는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산업에 투자를 계속하고 있고, 기후위기에서 승자는 없다”며, “두 학교가 대중을 호도하고, 학계를 더럽히며 진실을 부정하는 기업을 지지하면서 진정으로 학문을 수양하는 곳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버드 교지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 편집장인 패트릭 바르함 케사다 역시 “시위란 불편한 것이다(Protest is Inconvenient)”라는 글을 통해 해당 시위를 지지하며 “시위는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하거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시끄럽고 불편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 목표인 행위”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위 중) 법률을 어김으로써 시위의 원인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의제의 중요성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는 시위는) 가능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학생들의 꾸준한 (이 대표에 따르면 ‘비문명적인') 시위와 저항의 결과로, 하버드 대학은 지난 2021년 9월,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사회를 멈추는 시위의 본질은 다른 국가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2017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무기박람회’ 전시장 앞 도로를 봉쇄한 시위대가 기소되었다. 그러나 영국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나 평화 집회의 자유권 행사로 인해 교통 혼잡 등 일상의 균열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이 있어야 한다”라며 “‘그저 그런 말다툼’과 달리, 정치적 견해는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며 시위대에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이 1990년 가입한 유엔자유권규약 역시 일반논평을 통해 “(평화적 집회는) 차량 흐름이나 보행자의 움직임 또는 경제적 활동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의도했건 또는 의도하지 않았건, 이러한 결과가 있다고 해서 그러한 집회가 향유하는 보호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아울러, “평화적 집회의 권리에 대한 너무 광범위한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질서’라는 모호한 정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평화적 집회는 어떤 경우에는 본질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상당한 정도의 관용을 요구한다”는 점 역시 강조했다.

이 대표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모교의 동문뿐만 아니라, 시위의 권리 보장이 국가 의무라고 선언하는 다른 국가들, 나아가 유엔과도 ‘비문명적’이라고 맞서 싸워야 할 것 같다. 이쯤 되면 인권의 가치와 진보에 대한 상당한 합의가 이뤄진 21세기의 ‘문명’에 맞서고 있는 ‘비문명’이 대체 누구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겠다. 헌법에서도 보장한 시민적 권리에 대한 몰이해라는, 정치인으로서의 미숙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 참고 》

- Protesters gather outside Homeland Security Secretary Kirstjen Nielsen’s home in Virginia

- Protesters shout 'shame' at Kirstjen Nielsen as she dines at Mexican restaurant

- How “Civility” Became a Buzzword—and Lost All Meaning

- Protest is Inconvenient

- Activists Disrupt Harvard-Yale Rivalry Game To Protest Climate Change

- A Harvard Senior Complained About Climate Change Protesters — and Was Brutally Roasted by His Ex

- Harvard Football Captain’s Response to Game-Delaying Protest Goes Viral

최한별의 못다 한 이야기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국내외 장애계를 연결하는 단단한 다리가 되고 싶어 한국장애포럼(Korean Disability Forum, KD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계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며 못다 한 말을 여기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