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지상의 교통은 ‘통제’되고, 지하의 교통은 ‘마비’된다

대통령의 출근과 장애인의 시위를 보는 다른 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8분 출근길에 생각해야 할 것들

2022-05-20     이슬하 기자

지난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오전 8시 21분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를 나선 윤 대통령은 8시 34분쯤 용산 대통령 집무실 1층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보통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약 7km 거리를 8분 만에 내달렸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이 집을 나서기 20분 전인 오전 8시쯤부터 경찰은 사저 인근 서울성모병원 사거리 등의 교통을 통제했습니다. 이런 풍경은 윤 대통령이 입주할 한남동 새 대통령 관저 리모델링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한 달 정도 계속될 예정이랍니다.

네이버에 검색된 5월 11일 자 기사들 목록을 캡처한 것. 기사 제목에 “우려했던 교통체증 없었다”, “일부 차량 통제”, “큰 교통혼잡 없어”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 대통령의 출근길에는 관대한 언론 

관련 기사들을 살펴봤습니다. ‘우려와 달리 큰 혼잡은 없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언론은 경찰 관계자의 입을 빌려 ‘교통통제는 일부 구간에서만 일시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경우, 출근길 불편을 겪었다는 시민의 목소리는 댓글에만 존재했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시민은 어쩐지 인내심이 풍부한, 성숙한 시민뿐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교통통제 최소화…첫 출근 ‘이상無’ (한국경제, 2022.05.11) 

급기야 한국경제는 ‘이상 무’라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물론 윤 대통령 입장에선 정말 그랬을 테니,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사를 쓰신 기자님은 “대통령 경호로 겪는 불편은 거의 없다”는 익명의 이웃 주민들 말을 전했습니다. 지난달 13일 열린 민주노총 집회를 다룬 기사에서는 교통통제로 불편을 겪었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성실히 전달했던 기자님이었습니다. 아무튼, “특별한 신호 통제 없이”, “차량들 모두 지체 없이 도로를 통과했다”고 전하는 ‘이상 무’ 기사만 보면, 윤 대통령 첫 출근날 아침은 제법 평화로운 아침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평화로웠던 아침에 저는 조금은 소란스러운 현장에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용산에 도착하기 한참 전인 오전 8시, 삼각지역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의 29일 차 삭발식이 있었습니다. 오전 9시에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지하철 오체투지를 진행했습니다. 박 대표가 지하철을 타기도 전, 뉴시스·세계일보·이데일리·서울경제 등은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의 트위터 게시물을 인용하며 ‘전장연 시위로 4호선 열차 운행 지연이 예상된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만 보면, 전쟁이 따로 없는 아침일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본 현장은 전쟁 같지는 않았습니다. 삼각지역에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려 승객들이 내리고, 박 대표를 비롯한 전장연 활동가들이 모두 타 문이 다시 닫히는 데까지 2분 34초가 걸렸습니다. 4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인 삼각지역의 경우 평일 출근 시간 승하차에 평균 약 30초~1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2분 정도 더 걸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분밖에 더 안 걸렸다고 해도, 늦어진 건 맞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집을 나서기 20분 전부터 시작된 통제로 차량이 정체된 것보다 더 큰 혼잡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연이 예상된다고 공사 트위터 게시물 퍼와서 기사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랬으면 대통령 출근길 기사에서도 그랬듯 ‘우려와 달리 큰 혼잡은 없었다’고도 써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런 기사를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언론은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찰의 노력은 세심하게 보도해줬지만, 지연을 최소화하고자 열차가 도착하기 전 휠체어에서 미리 내려와 승강장 바닥에 엎드린 채 기다린 박 대표의 마음에는 그런 세심함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출근길 통제가 있던 지난 11일 아침 삼각지역.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휠체어에서 미리 내려와 승강장 바닥에 엎드려 있던 박경석 대표가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이슬하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의 출근으로 차들이 멈춰 서 있는 건 ‘대기하는’ 거고, 장애인의 시위로 지하철이 멈춰 서 있는 건 ‘발목이 잡힌’ 거니까요. 멀쩡한 대통령 집무실을 굳이 옮기는 바람에 생기는 교통체증은 ‘불가피한’ 거고,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어 지하철을 막는 장애인의 투쟁방식은 ‘생각해봐야 하는’ 거니까요. 시민들 갈 길 막고 출근한 대통령이 기자들과 몇 마디 나누는 건 ‘하늘에 있다 땅에 내려와 소통하는(머니투데이)’ 거고, 지하철에서 시민들에게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는 건 ‘민폐를 끼치는’ 거니까요.

- ‘사상 최초 장애인 권리보장 대통령’을 기다리며

윤 대통령 출근길 기사들을 읽으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제가 아는 대표님은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를 가만 놔둘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들의 출근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든 말든 자신의 뜻만 관철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아집을 용납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비문명적 출근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성역을 남겨두지 않으시는 대표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장연은)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인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3월 28일 MBC 뉴스데스크 캡처

윤석열 대통령님에게도 부탁드립니다. 대통령님은 집무실을 옮기는 이유를 설명하며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장애인들이 선전전을 진행한 지 100일이 넘은 혜화역을 보십시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6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머리를 깎은 경복궁역과 삼각지역을 보십시오. 장애인권리민생4법 제·개정을 요구하며 1년이 넘도록 매일 그 자리를 지키는 여의도 농성장을 보십시오. 차별에 저항한다는 의식이 그 공간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구중궁궐 청와대를 나온 김에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주세요.

첫 출근길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 뭐 특별한 소감 없습니다. 일해야죠”라고 대답하시는 대통령님의 당당함에 조금 놀랐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는 장애인들과 달리, 국민들 출근길 방해해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으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첫 출근길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 뭐 특별한 소감 없습니다. 일해야죠”라고 대답하고 있다. 지난 11일 연합뉴스TV 캡처

표현은 안 하셨어도 미안한 마음 갖고 계실 줄 압니다. 그 마음은 대통령님 말씀처럼 “구두 밑창이 닳도록” 일해서 보여주시면 됩니다. 어떤 분들은 대통령님이 지각했다고 뭐라 하던데, 저는 대통령도 사람인데 지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유연근무제라도 하냐고 조롱하는 분도 있던데, 저는 그러면 안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택근무 문제는, 굳이 집무실에 가실 필요가 없는 날엔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집에서 일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꼬는 게 아니고 모두 진심입니다. 집에서 편한 옷 입고 일하셔도 좋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과 장애인권리민생4법 제·개정에 힘써주십시오. 그래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출근하는 차 안에서라도 21년을 외친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해주십시오. 이들이 외치는 이동권 보장이라는 게, 거리의 차들 막아가며 서초에서 용산까지 8분 만에 무정차 통과하게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같은 경기도인 포천에서 화성까지 이동하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1~2시간씩 기다려 4번을 갈아타고 8시간이 넘게 걸리는 현실을 바꿔 달라는 겁니다. 경찰 100명을 동원해 출근길 내내 경호해달라는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닐지 몰라도, 기재부 장관은 대통령님이 임명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상 최초 출퇴근 대통령’도 좋지만, ‘사상 최초 장애인 권리보장 대통령’은 어떠십니까? 지하철 투쟁 취재를 나가보면 일부 비장애인 승객분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씨발 청와대 갈 것이지, 왜 여기서 난리야!” 대통령님의 출근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지하철 승객분들의 저 욕이 대통령님을 향하지 않도록, 국민을 위한 정치에 매진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국민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지난 13일 이선희 충북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이 오체투지를 하며 지하철 바닥을 기고 있다. 이날 아침 삭발한 그의 머리가 짧다. 이 회장 앞에는 ‘예산 없는 껍데기뿐인 장애인 권리’를 비유하는 빈 깡통이 놓여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