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도 흔적을 남긴다 / 안희제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한 번 보고 잊을 수 없는 어느 외국 밈(meme)이 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가라앉는 장면과 배 위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장면을 캡처해서 두 장을 이어붙인 후, 각각에 짤막한 설명을 붙이는 밈이었다. 내가 본 것은 아마 대학원생 버전이었던 것 같다. 배가 가라앉는 장면에는 ‘지금의 세상(the world right now)’이라는 말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장면에는 ‘논문을 쓰고 있는 나(me writing my thesis)’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나에게 이 밈은 공부하고 글을 쓰다가 느끼곤 하는 허무함을 포착한 것으로 느껴졌다. 종종 나도 ‘세상이 이 모양인데 공부해서 뭐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극심한 무력감에 빠진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뭔가를 쓰는 게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이게 몇 명의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공부도, 글도, 활동도 부족한 나에게는 때 이른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대학 안의 장애인권 활동은 대체로 지는 싸움이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결정 권한도 없었고, 결정 권한과 예산이 있는 이들에게 가서 요청하고, 부탁하고, 읍소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항의하고, 싸우고, 결국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때로 나는 장애인권위원회실에서 쓰러져 있거나 울면서 생각했다. 기껏해야 이 싸움을 어느 속기록에 한두 줄로 남기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그래서일까,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터 나는 이제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인권 운동에서 크게 이기는 경험 같은 건 많지 않다고. 집회 현장을 가서도, 다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부족한 경험과 빠른 판단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다름 아닌 냉소였다.
그러던 중 나의 냉소에 제동을 걸어준 말들이 있었다. 나는 친구와 낙원상가 옆의 넓은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해준 이야기가 자신의 활동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다른 이에게 듣고 전달해 준 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한 말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운동에서 중요한 건 잘 지는 일인 것 같아.’
지는 데에 지쳤다고, 이제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던 내 머리에 이 말이 와서 꽂혔다. 그리고 내가 치열했던 우리의 싸움을 무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잘 지기 위해 노력했다.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덤벼야만 했고, 똑같은 헛소리에 매번 이전보다 조금은 더 잘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한편으로 우리의 수많은 싸움들을 내가 나서서 부정하도록 이끌고 있었다.
‘작은 승리들을 모아야 하는 것 같아요.’
다른 활동가는 홈리스 당사자들이 거리에서 겪는 문제들, 그러니까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박스 집 철거나 경범죄 처벌법을 근거로 경찰들이 휘두르는 폭력들에 맞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작은 싸움’들은 결코 주거권이나 의료 접근성 보장과 같은 ‘큰 요구’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 우리 주변을 바꿔 나가는 것, 정말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은 법의 제정보다도 그런 작은 싸움들에서 이기는 경험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이메일에, 속기록에, 합의문에, 인터넷에 하나의 흔적이라도 남기려고 애썼던 내가, 우리가 떠올랐다.
우리의 싸움은 단지 적을 이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흔적을 남기려 싸우는 일은 다음에 같은 문제로 싸울 또 다른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싸움을 통해 바뀔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의 싸움을 보고 멈칫할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으며, 우리의 싸움을 보고 자신의 삶의 다른 현장에서 싸울 용기를 얻을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다.
“그것[혁명]은 변화가 가능하리라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변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유의미한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일,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 그것은 절망과 싸우는 일이다.”1)
대선 이후 좌절에 빠지려던 나를 붙잡아 준 건 ‘선거가 끝났다고 운동이 끝나냐’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은 지금까지도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받쳐주고 있다. 오드리 로드는 혁명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고,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단번에 망하지도 않는다. 그의 말처럼, 혁명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 노력”이다.2)
그런 의미에서 혁명이란, 사회의 변화란 거대한 몇 개의 사건보다는 평범한 우리의 태도와 일상에 가까운 것일 테다.
얼마 전 수업에서, 나는 위기와 기회,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모순들을 포착하고 기술해내는 게 때로는 공회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거기서 커다란 구조를 향한 싸움의 방향을 찾아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선생님은 답했다. 커다란 구조를 직접 바꾸는 것만이 ‘방향’은 아니니까 지금 하고 있는 게 공회전은 아닐 거라고. 그리고 설령 공회전일지언정, 공회전도 흔적을 남긴다고.
우리는 작은 승리를 모으며, 잘 져서 흔적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자주, 어쩌면 대체로 패배하겠지만, 그것은 도리어 우리를 꿈꾸게 할 것이다. “패배자란 패배를 패배로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꿈을 사고하는 자”니까.3)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 세계를 어떻게든 지탱해내는 힘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싸울 것이다. 지치면 쓰러지고, 아프면 눕고, 힘들면 도망치기도 하겠지만,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하면 잘 패배하고 조금씩 승리할지 궁리할 것이다. 바이올린 소리가 가라앉고 있는 누군가의 생을 잠시나마 붙들어 알 수 없는 어떤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 그 활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패배하고 쓰러지고 도망치더라도 냉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그러니 설령 우리의 싸움이 공회전처럼 느껴져도 겁낼 필요는 없다. 공회전도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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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박미선 옮김, 2018, 250쪽
2) 오드리 로드, 같은 책, 248쪽
3) 도미야마 이치로, 『유착의 사상』, 심정명 옮김, 글항아리, 2015, 262쪽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며, 질병과 장애를 중심으로 사회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 《과학잡지 에피: 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