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무응답’에 다시 지하철 투쟁 나선 전장연

전장연 29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재개  4호선 혜화역→삼각지역 1시간 지하철 선전전 “중증·발달장애인 시혜와 동정의 실험도구 아냐” 기재부 계속된 면담 요청에도 ‘무응답’… 일주일 기다린다

2022-06-13     허현덕 기자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지하철 시위를 하고 있다. 그의 목에는 사다리가 걸려 있다. 사진 허현덕 

“발달장애인, 뇌병변중증장애인이 어머니·아버지에게 맞아 죽고, 스카프로 목 졸려 죽고,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망치로 맞아 죽어야겠습니까? 그게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제발 장애인을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자기 부모에게 죽임당한다고 불쌍하다고 하고, ‘오죽했으면 장애인을 죽였겠느냐’라는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인은 자선과 눈물의 실험도구가 아닙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는 하얀 판넬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T4를 아십니까?”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2022, 애슐리 이킨)’는 나치의 T4 작전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다. 박 대표는 이를 언급하며 “T4 지역에서 벌어진 이 작전으로 장애아동 30만 명이 사망했다. 최근 5~6월 사이에 벌어진 발달·중증장애인과 가족 6명의 죽음은 나치의 T4 작전과 다를 게 없다”라고 설명했다. 구조적인 사회 문제에서 빚어진 비극이라는 의미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하얀 판넬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T4를 아십니까?”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이형숙 회장이 판넬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전장연 29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재개 

이처럼 처절한 마음을 전하며, 13일 오전 7시 30분 4호선 혜화역에서 전장연 활동가들은 29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재개를 알렸다. 지난 4월 22일(28차) 이후 52일 만이다. 

활동가들은 혜화역에서 삼각지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고 장애인이 더 이상 살해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외쳤다. 

이번 시위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활동가 11명과 다수의 비장애인 활동가가 참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 혜화역은 취재진과 경찰, 지하철보안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경찰은 이유 없이 강경하게 지하철 탑승을 막아서 한 활동가의 안경이 날아가기도 했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역에서 한차례 내린 활동가들은 지하철을 연착시키며, 장애인권리예산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들은 4호선 회현역에서 두 갈래로 흩어져 시위를 이어갔다. 한 팀은 회현역과 서울역을 오갔고, 한 팀은 삼각지역으로 향했다. 

일부 경찰은 이유 없이 강경하게 지하철 탑승을 막아서 한 활동가의 안경이 날아가기도 했다. 사진 허현덕
지하철 안은 활동가, 취재진, 경찰, 지하철보안관으로 꽉 차 있었다. 사진 허현덕
연착이 길어지자 역장이 해산 명령을 내리고 있다. 사진 허현덕

1시간가량 진행된 선전전에서 대다수 시민은 무관심했다. 일부 시민은 활동가들에게 욕설을 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반면 힘내라는 말로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지하철 시위의 거점이 된 혜화역과 삼각지역은 장애인의 권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역이다. 

혜화역은 1999년 이규식 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다친 곳이다. 이를 계기로 서울지하철 중 혜화역에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지난해 12월 6일부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외치며 선전전이 진행되고 있는 역이기도 하다. 

삼각지역은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지난 5월 27일부터 최근 사망한 중증·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곳이다. 삼각지역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이날 50번째 삭발식을 열었다. 삭발결의자 김영록 일산서구 햇빛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이날 삭발한 김영록 일산서구 햇빛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그는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사진 허현덕

- 기재부 계속된 면담 요청에도 ‘무응답’… 일주일 기다린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전장연은 2023년 정부 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해달라며 28번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벌였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앞에서 결의대회도 수차례 열었다. 52일간 계속 면담 요청도 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일 인사청문회에서 추경호 장관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 배려 또는 지원 확대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에 따른 실질적 움직임은 전혀 없다. 전장연에 따르면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에 관해서 기재부는 장관 면담은 물론, 실무자를 통해 요구안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지난 5월 29일 2022년도 추가경정예산 62억 원이 통과됐지만, 장애인 관련 예산은 ‘특별교통수단 연구비’ 2억 원 증액이 전부였다. 정부는 헌법에 명시한 (장애인의) 권리를 지키지 않고 있다”라며 기재부가 면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장애인권리예산에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활동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예산 국가 보장 △탈시설 예산 807억 원 편성 등이 포함된다.

전장연은 다시 일주일간 기재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기재부가 계속 무응답으로 일관한다면 20일(월) 오전 7시 30분에 3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재개할 예정이다. 

박경석 대표는 “계속 기재부에 만남을 요구했지만, 그 만남조차도 거부당했다. 기재부는 실무자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만나서 내년도 정부 가이드라인예산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말해달라. 일주일 사이에 아무 답이 없으면 다음주 월요일 아침 7시 30분에 시민 여러분께 우리의 권리를 외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하철 시위를 하는 한 활동가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걸고 있다. 사진 허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