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탈시설조례 통과 앞두고 장애계-시설협회 쌍방 집회

탈시설조례안, 탈시설 대상에서 그룹홈 제외된 채 상임위 통과 장애계, 조례안 후퇴에 분노 “서울시, 얼마나 사람 더 죽어야 정신차릴 것인가” 시설협회 “탈시설조례 철회하라, 시설도 당사자 선택이다” 주장

2022-06-20     강혜민 기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앞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탈시설은 장애인 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바로 옆에서 서울시시설협회가 탈시설조례 제정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NO 탈시설 지원법” “탈시설조례 제정? 당사자들과 상의도 없이? 장애인인권 무시하는 탈시설조례안 폐기하라” “시설 대기자들 죽어간다. 신규시설 늘려라”고 적힌 피켓을 사람들이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서울시 탈시설조례 통과를 앞두고 장애계와 시설협회 간의 긴장이 팽팽하다. 조례 통과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11시, 서울시의회 앞에선 서로 다른 두 개의 집회가 열렸다.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서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서울시총연합회)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탈시설조례 제정 촉구 집회가 진행됐다. 이들은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다”라면서 탈시설 권리를 부정하는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서울시시설협회)를 규탄했다.

10미터가량 떨어진 바로 옆에서는 서울시시설협회가 주최한 ‘탈시설조례 제정 철회 요구’ 집회가 열린 터였다. 노란색 폴리스라인과 방패 든 경찰이 이중으로 경계선을 친 이곳에서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가 크게 흘러나왔다. 사회자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대오 맨 앞에는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아래 거주시설부모회) 소속 부모들이 소복을 입고 “거주시설 존재, 권리로 인정하라” “당사자 배제한 조례 철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왜곡하지 말라” “다양한 돌봄 체계 마련”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흔들었다. 그들 뒤로는 시설 임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설은 감옥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탈시설조례인가?” “지역사회 기반을 먼저 구축하라” 등의 손피켓을 들었다.

크게 울려 퍼지는 노래는 자연히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까지 또렷이 들려왔다. 탈시설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던 진형식 서울시총연합회 회장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시설이 사람보다 중요하냐?”면서 “탈시설은 정말 온전하게 지역사회에서 자립해서 살아보겠다는 거다. 누가? 바로 우리가. 누가? 바로 당사자가! 시설도, 부모도 반대하면 안 된다”라고 외쳤다.

진형식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탈시설조례 대상에서 그룹홈 제외된 채 상임위 통과, 21일 본회의 예정

지난달 25일 서윤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안’(아래 탈시설조례)을 대표발의했다. 이 안은 지난 13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일부 수정되어 재석의원 7명 중 찬성 5명, 반대 2명의 의견으로 가결됐다. 21일 열리는 본회의를 통과하면 탈시설조례는 제정된다.

수정안에서는 탈시설 대상이 되는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정의가 축소됐다. 원안에서는 장애인복지법 58조를 따랐으나 수정안에서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등이 제외되고, 오직 장애유형별 거주시설과 중증장애인 거주시설만을 대상으로 한다. 정수용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13일 상임위에서 “탈시설이 적용되는 거주시설에서 영유아시설, 단기거주시설, 공동생활가정을 제외하는 게 적절하다”고 한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이에 대해 심사보고서는 “공동생활가정은 자립·독립 생활이 보장되는 대안적 주거 형태로 인정된다는 소관부서 의견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에 대한 기본원칙을 담은 4조 3항도 수정됐다. 수정안에선 “장애인은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단,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될 경우, 서울특별시장·자치구청장이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 원안의 단서 조항을 삭제했다.

이에 대해 심사보고서는 “(서울특별시장·자치구청장이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 침해 소지가 있어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소관부서에서 본 안건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3개의 법무법인에서 단서 조항이 민법 제9조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민법 제9조에는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겐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갇히는 것이 최선인 삶은 없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그러나 이러한 수정안에 대해 장애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20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지 대리하는 게 아니다”면서 “이미 발달장애인법에 의사결정 과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무연고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 지침상 시군구 민간협의체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논의과정에서 서울시는 이 조항 검토에만 몇 달의 시간을 끌었다. 법률 자문 구할 때는 의뢰하는 사람(서울시)의 입장을 기본정보로 주는데 마치 강제 탈시설을 염두에 둔 듯 왜곡해서 주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심사보고서는 종합의견에서 “장애인복지정책이 거주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대적 패러다임”이라면서 “모든 장애인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지원과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탈시설 정책의 당사자·가족 및 장애인단체 등에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바, 탈시설 지원내용 및 서비스 제공방법 등 구체적인 정책수단에 대해 신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 보고서에는 서울시시설협회와 거주시설부모회의 반대 의견이 담겨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장애인탈시설권리 부정하는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장애계, 조례안 후퇴에 분노 “서울시, 얼마나 사람 더 죽어야 정신차릴 것인가”

이날 결의대회에서 탈시설조례안 후퇴에 대해 이정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크게 분노했다. 이정하 활동가는 “서울시 스스로 탈시설 자립생활에 대한 무능, 무관심,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언제까지 사람이 죽어 나가야 정신 차릴 것인가”라고 규탄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 거주시설 중고령 장애인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시설에서 10~30년 수용된 거주인들에겐 노인성 질환 유병률과 치매 등 정신적 장애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1실당 3명 이상 거주하는 사람도 47.8%나 된다. 시설 정책은 인권보장에 실패했다”라면서 “서울시는 2018년 서울시 탈시설 권리선언을 다시 한번 상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조화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우리는 왜 시설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라고 물으며 “시설에선 답답해서 못 산다.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고 외쳤다.

‘시설은 감옥이 아니다’라는 시설협회의 주장에 대해 박민규 우리하나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또한 “시설은 감옥이 아니라는 말 맞다. 그런데 시설에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유를 박탈당할 만큼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지역사회와 단절되어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나?”라며 “탈시설조례 제정으로 지역사회 체계를 탄탄히 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주시설부모회 소속 사람들이 소복을 입고 “거주시설 존재, 권리로 인정하라” “당사자 배제한 조례 철회”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왜곡하지 말라” “다양한 돌봄 체계 마련”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시설협회 “탈시설조례 철회하라. 시설도 당사자 선택이다” 주장

바로 옆에서 열린 ‘탈시설조례 철회 요구’ 집회에선 시설 임직원과 시설에 장애인자녀를 둔 부모들이 ‘우리가 바로 당사자’라며 조례 제정 과정에서 당사자 의견이 배제되었다는 주장을 지속해서 펴나갔다. 이들은 “시설 폐지는 사형선고”라면서 “시설은 당사자의 선택”이라고도 말했다.

이 집회는 서울시시설협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거주시설부모회가 공동주최했으며 이날 집회에는 200여 명가량이 참석했다. 이번 집회에 대해 서울시시설협회는 ‘시설당 5명씩, 반드시 연차를 사용해서 탈시설 반대 집회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내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정현우 경기도 여주 다산하늘센터 원장은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제대로 된 탈시설을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 편향된 전장연에 끌려가면서 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일방적으로 결정짓는 탈시설조례를 철회하고,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사회 돌봄체계를 마련하라”고 말했다.

김현아 거주시설부모회 대표가 소복을 입고 발언하고 있다. 하얀 마스크에는 빨간 글씨로 “탈시설 반대”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김현아 거주시설부모회 대표의 자녀는 중증발달장애인으로 시설에 있다. 이날 집회에서 김 대표는 “‘중증장애아 키움을 당하는’ 이 억울함과 서러움을 다른 누군가가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 사회 시스템을 고쳐가고자 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시설에 백프로 만족해서 시설을 지켜달라는 거 아니다. 현재와 같은 시설이 계속된다면 탈시설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설이 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거듭나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중증장애인 돌봄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 있게 해야 한다. 전장연 같은 이권단체에 넘겨줄 수 없다”고 외쳐 시설협회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 김 대표는 ‘전장연이 탈시설 운동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거짓 뉴스를 사실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는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예산이 한 해 1조 7천억 원인데 25%가 아이엘센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수익으로 돌아간다. 이건 장애인 팔아서 장사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지속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성인 중증발달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다는 한 아버지는 “휠체어 타고 여행 다니고 직장 다니고 자동차 타고 돌아다니는 저들이 장애인이냐? 중증 와상장애인과 발달장애인만이 장애인이다”면서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식 죽이는 이유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시설은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협의회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시시설협회 집회가 진행되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위에서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탈시설 반대 집회를 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폐지? 사형선고!”라는 피켓을 든 사람이 현수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21일 본회의 조례 통과’ 압박하며 장애계 내일도 집회 예고

12시 20분경 서울시협의회 소속 활동가들은 서울시시설협회 집회가 진행되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위에서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탈시설 반대 집회를 열던 사람들은 ‘현수막을 당장 제거하라’고 항의하며 “발달장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탈시설 지원법 반대” “시설은 당사자 선택”이라고 적힌 손팻말로 이를 가리려고 했다.

또한 같은 시각, 장애인 활동가들은 대한문 앞 세종대로를 한 시간가량 막아서며 서울시에 탈시설조례 통과를 요구했다.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거주시설에서 이용자 부모들을 앞세워 탈시설조례를 반대하며 시설을 유지하려는 게 말이 되나. 서울시 탈시설조례 제정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이행하는 거다. 내일 2시 본회의에서 조례가 통과될 수 있도록 내일도 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가 세종대로를 점거한 채 탈시설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의 앞엔 “서울시는 서울시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하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강혜민 

이날 서울장애인부모연대도 탈시설조례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소속 장애인 부모 19명은 지난달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에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는 우리 자녀를 시설에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녀를 포함한 약 3만 4천 명의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라면서 “서울시의회는 탈시설을 막는 거주시설 운영법인과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불충분하여 불안한 일부 부모의 주장에 굴복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본회의가 열리는 21일에도 장애계와 시설협회는 동시에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세종대로를 점거하며 탈시설조례 통과를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그들 뒤로 멈춰 선 버스들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