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횡령하라 / 안희제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2022-06-22     안희제
용산역 아래 숲길에 있는 텐트촌. 2017년 여름의 모습이다. 사진 이관택

지난 4월, 시공사 일주종합건설은 6성급 ‘서울드래곤시티호텔(SDC)’과 용산역을 잇는 공중보행교 공사를 위해 서울시 용산역 인근의 텐트촌을 철거하겠다고 찾아왔다. 이 공중보행교는 텐트촌 일부를 가로질러 설치될 계획이다. 이미 2017년 10월에 서울드래곤시티호텔이 개장했을 때 호텔 경비원은 기존 구름다리 내의 노점상과 홈리스를 전부 쫓아냈는데, 이번에 강제철거 통보를 받은 홈리스 중 한 사람은 그때 기존 구름다리에서 쫓겨나 현재 텐트촌에 머물게 된 사람이다. 텐트촌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텐트촌 주민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주거지원조차 안 하려는 용산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비마이너] 호텔 가는 다리 짓는다고 ‘용산역 홈리스 텐트촌’ 철거 위기)

비슷한 시기에 을지로에서는 강제 집행이 이루어졌다.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철거된 을지OB베어는 서울시가 2015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2018년에는 주류 점포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1980년에 개업한 최초의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는 지난 4월21일 새벽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가게는 폐허가 되었고, 가게를 지키고 있던 이들은 도로로 내던져졌다. 지금도 사람들은 을지로에서 상생을 외치며 강제 철거와 서울시, 정부의 무책임한 방관에 항의하고 있다. (▷[시사인] 을지OB베어, 끝내 사라진 을지로의 빛나는 순간)

이러한 문제들이 일단락되기도 전에,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은 너도 나도 재개발, 재건축 공약을 내세웠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모두 청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송영길 후보는 ‘서울형 코인’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부동산 개발 이익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다. 실패한 코인들과는 달리 100만 원짜리가 200~300만 원으로 뛸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개발하겠다는 구룡마을은 주로 고령의 가난한 주민들이 허가받지 못한 시설물들에서 살고 있는 지역으로, 80년대에 전두환 정권이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도시미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이 형성한 곳이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가상화폐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가장 주요한 투기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2017~2018년 무렵 비트코인을 필두로 시작된 이 “비트코인 광풍(bitcoin frenzy)”은 다른 가상화폐들로도 확장되었고, ‘코인’은 가상화폐를 통칭하는 대명사 정도로 자리 잡았다. 인류학자 이승철은 비전문가인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투자자보단 도박자(gambler)에 가깝다고 분석하며, 이것이 한국 사회 경제 발전기 이후의 사회 전환 속에서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다루어 보려는 이들의 희망과 절망, 분투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한다.1)

송영길 전 후보가 약속한 ‘서울형 코인’은 최근 희망을 점점 놓고 있는 코인 투자자들에게도 무관심해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부동산 개발 이면의 철거 문제와 코인 도박 이면의 절망적인 한국 사회를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가능했다. 철거민들의 마을을 개발하면서 코인을 만들겠다는 이 해괴한 공약은 투기를 위한 파괴들의 연속인 도시와 도박과도 같은 투기의 집합체인 가상화폐 투자를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애초부터 서울특별시의 슬로건도 공정도시보다는 투기도시가 어울렸으나, 이제는 더더욱 투기도시 외에는 형용할 단어가 딱히 안 보일 지경이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용산구 한강대로를 막아섰다. 맞은편에 방패를 든 경찰이 서 있고, 그 너머로 차들이 보인다. 높은 빌딩숲으로 하늘은 가리어져 있다. 사진 이슬하

욕망, 갈망, 혹은 절박함은 그 맥락과 형태에 따라 우리를 여러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홈리스행동의 홈리스 주거팀 2019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 주민들의 대부분은 “동네가 익숙하고, 교통이 좋은데다, 이웃들과 계속 함께 지내고 싶기 때문”에 재개발 이후에도 양동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2)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이를 “소박한 갈망”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했는데, 이 표현은 지난 4월 14일, 경복궁역 삭발 투쟁 현장에서 노들야학 교사 고병권이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목마르면 물을 마실 수 있고, 동네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장애해방운동의 요구를 “소박한 요구”라고 표현한 것을 상기한다.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으로 잘못된 일이며 정치적으로도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와 우리 가족이 그 상황으로 인한 불이익은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자체는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 고작 그 정도의 마음을 먹는 것일 뿐이지만 이렇게 시작된 경제실천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시민들의 주거 불안으로 이어진다.”3) 

쪽방촌 주민들과 장애인들의 ‘소박한’ 욕망은 우리가 누구도 쫓겨나지 않고 지붕 있는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어떤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가진 사람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게 한다. 반면, 부동산 개발을 당연한 전제로 채택하며 ‘○○ 신설’과 같은 공약들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은 편리한 투기를 위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나와 가족이 다치지 않길 바란다는 ‘고작 그 정도의 마음’을 파괴적인 투기의 욕망으로 전환하고 증폭한다. 그렇게 전환된 욕망이 이끄는 세계에서 우리의 관계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으로 변한다. 

누군가가 얻은 만큼 다른 이가 잃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정말로 세상이 제로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그 정도일 뿐인 소박한 욕망들 중 어떤 것을 선택적으로 증폭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제로섬으로 구성해내는 사회에서 만들어진다.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 중의 양자택일이라는 세계관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부동산과 코인 투기의 문제, 도시 개발이라는 철거의 문제를 이해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욕망이 횡령되어 폭력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공금 횡령이 법을 위반한다면, 욕망의 횡령은 가능성을 위반한다. 도시가 더 많은 존재의 거처가 될 가능성, ‘부동산’이 아닌 삶이 펼쳐지는 장소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횡령된 욕망은 절박함을 횡령하는 사회라는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데 복무하고, 때로는 개발과 투기라는 파괴적 욕망을 누군가의 절박함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사회는 명령한다, ‘욕망을 횡령하라.’ 그런데 누구의 어떤 욕망을 횡령함으로써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              *              *

1) Seung Cheol Lee, “Magical capitalism, gambler subjects: South Korea’s bitcoin investment frenzy”, Cultural Studies, 36:1, 2022, 96-119, DOI: 10.1080/09502386.2020.1788620
2)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후마니타스, 2021, 24쪽. 
3) 최시현, 〈주택 담보 정동경제〉, 《문화과학》, 106호, 2021, 74쪽.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며, 질병과 장애를 중심으로 사회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 《과학잡지 에피: 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몸이 말이 될 때》(공저)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