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 불수용 가닥 드러나… “추경호가 직접 응답하라”
제33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전개 복지부 예산안 살펴보니… 장애인권리예산 요구 철저히 외면 “추경호 기재부 장관 답변 기다리겠다”… 8월 1일까지 투쟁 유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33번째 출근길 지하철 연착 투쟁을 벌였다. 4일 전장연은 보건복지부가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예산안 자료를 공개하며 장애인권리예산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사실을 알렸다. 전장연은 추경호 기재부 장관의 응답을 촉구하며, 응답이 없을 시 다음 달 1일 연착 투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오전 8시 20분경, 삼각지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한 활동가들은 동대문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양방향 승강장으로 4호선 상행선과 하행선을 오가며 연착 투쟁을 벌였다. 열차가 출발하지 않자 일부 승객들은 강하게 항의하며 활동가들을 끌어내릴 것을 경찰에 주문하기도 했다. 시위는 오전 9시 30분경 활동가들이 혜화역에 내리며 마무리됐다.
- 7개월간의 시위에도 꼼짝하지 않는 정부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통해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9월 3일에 정부 예산안을 국회로 넘기기 전까지, 예산 편성 과정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이 탓에 장애인권리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날 전장연은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2023년 예산안’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복지부가 기재부에 요청한 예산이 담긴 것으로, 지난달 29일 열린 기재부·복지부와의 간담회에서 전장연이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진 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내년도 장애인 정책 관련 예산으로 4조 5382억 원을 기재부에 요청했다. 올해 본예산인 4조 852억 원보다 4530억 원(11.1%) 증액된 것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복지부 예산안에는 자연증가분 이외 예산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지난해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로 시민들과 부딪혀가면서 낸 우리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활동지원예산, 탈시설예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예산 등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장애계의 요구는 단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다.
전장연은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년도 활동지원예산으로 2조 9857억 원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지원 수가 인상과 대상자 증원, 중증장애인 매칭 활성화를 위한 가산수당 인상과 대상자 증원 등이 담겼다. 또한 전장연은 산정특례(종합조사 갱신 시, 삭감 및 탈락자에 대한 시간보전) 대상자를 올해 7만 2495명에서 10만 명으로 확대할 것, 만 65세가 도래한 장애인에 대한 기준을 완화해 활동지원 대상자를 508명에서 2000명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활동지원 대상자를 내년에 고작 1만 명만 증원할 것이며, 가산수당을 지금의 2000원으로 동결하고 대상자도 지금의 4000명으로 유지할 예정으로 드러났다. 복지부는 전장연의 다른 요구안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장애계 요구보다 9226억 원 적은 2조 631억 원을 기재부에 요청했다.
탈시설예산의 경우, 전장연은 자립지원 대상자 1000명으로 확대, 탈시설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제공 등 807억 원을 요구했으나 복지부는 88억 원만을 기재부에 전달했다. 복지부 예산안대로라면 자립지원 대상자는 올해 200명에서 내년에 고작 400명으로 늘어날 뿐이다.
전장연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보장을 위해 주간활동서비스, 방과후활동서비스에 대한 인원과 시간을 대폭 확대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전장연은 총 5763억 원을 요구했으나 복지부가 잡은 예산은 2413억 원뿐이다.
박 대표는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기재부를 다시 한번 규탄하며 “기재부는 장애인의 권리를 비용의 문제로 치부하며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T4 프로그램’은 1939년부터 1941년까지 히틀러 정권이 자행한 장애인 집단학살과 생체실험을 의미한다.
박 대표는 추경호 기재부 장관이 7월 말까지 직접 답변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추 장관의 답변을 기다리며 출근길 지하철 연착 투쟁을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답변이 없을 경우 다음 달 1일부터 매주 월요일 또다시 연착 투쟁을 전개하겠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