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원내 정당에 장애인권리예산 면담 요청… 국힘만 무응답
2023년 예산 반영 위해 8개월 투쟁 기재부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 장애인들 “더는 못 기다려… 국회가 책임져라” 4개 원내 정당 대표에 공문 보냈지만 국힘만 무시
기획재정부가 장애인권리예산 요구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삭발 투쟁,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방문 등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지만 기재부는 “검토하겠다”는 말 말고 별다른 입장을 내놓은 게 없다.
이에 전장연 활동가 200여 명이 20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예산심의와 결정 권한이 있는 국회가 책임지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전장연은 이를 위해 지난 14일, 4개 원내 정당에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위한 간담회 제안 공문을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모두 간담회를 열자고 답변이 왔으나 국민의힘만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맨날 ‘검토’만… 장애인들이 국회로 달려간 이유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3일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시작으로 2023년 장애인권리예산의 완전한 보장을 위해 8개월째 투쟁 중이다. 지난 4일로 현재까지 33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 3월 30일부터는 매일 삭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20일 기준 74차례 진행했고 현재까지 107명이 삭발했다. 혜화역 아침 선전전은 20일로 152일째다.
8개월 투쟁 동안 기재부는 “검토하겠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난 1월 7일, 문재인 정부의 기재부는 전장연이 제시한 2023년 장애인권리예산안을 보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3월 29일,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5월 2일, 추경호 기재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고민하겠다”고 했다. 6월 29일, 추경호 장관의 기재부는 “검토하겠다”고 했다.
8개월간 같은 요구안을 제시하며 투쟁했지만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계속되자 전장연 활동가들은 14일 밤 10시, 추경호 장관에게 직접 면담요청서를 전달하고자 자택으로 찾아갔다. 추 장관은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언급하며 “집 앞에 뭘 붙이고 밤늦게 시위한 것에 상당히 유감을 표한다. (전장연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충분히 거쳤다.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실제 조율 중인 예산안을 보면 검토라도 했는지 의심스럽다. 전장연이 입수한 ‘복지부 장애인정책국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다음 해 장애인 정책 관련 예산으로 4조 5382억 원을 기재부에 요청했다. 올해 본예산인 4조 852억 원보다 4530억 원(11.1%) 증액됐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증가분 반영에 그친다. 활동지원 예산, 탈시설 예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예산 등 장애계가 ‘권리예산’으로 요구한 예산은 단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증가율이 0.8%P 낮아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다음 해 예산을 국회에서 논의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의한 후 본회의로 보낸다. 본회의가 의결하고 대통령이 공고하면 다음 해 예산이 확정된다. 이날 장애인 200여 명이 국회 앞으로 달려간 이유다. 이들은 예산심의와 결정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 “국회의원들이 기재부 T4 막아달라”
31도 땡볕 아래 모인 장애인들은 ‘검토’라는 말 뒤에 숨어 장애인권리를 외면하는 기재부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국회가 기재부의 T4(티포)를 막아달라 요청하기 위해 왔다. T4는 1930년대 나치정권의 장애인 학살 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아 장애인이 죽도록 방치하는 기재부는 장애인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국회의원들이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도 T4를 언급하며 “당시 나치정권은 장애인을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 규정하고 장애인복지에 드는 돈이 아깝다며 장애인을 잡아다가 학살했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는 기재부가 나치정권과 다를 게 무엇인가. 기재부의 이런 태도는 ‘장애인권리 보장할 돈 없다. 장애인은 시설에나 갇혀 살아라’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기재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국회가 책임지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청와대, 국회, 세종시 등 안 간 곳이 없다. 삭발투쟁, 지하철 선전전, 결의대회, 추 장관 자택방문 등 안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추경호 장관은 검토하겠다는 말로만 응답한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국회로 왔다. 국회의원들이 장애인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권리예산 요구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우리는 비장애인과 같은 기본적 권리를 누리는 삶을 살고 싶어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잘살겠다는 ‘플러스’의 삶을 원하는 게 아니다. 현재 장애인의 삶이 ‘마이너스’이니, 마이너스를 0으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과 같은 조건에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겠다는 건 결코 과도한 요구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책임지게 하기 위해 전장연은 지난 14일, 4개 원내 정당 대표(국민의힘 권성동, 민주당 박홍근, 정의당 이은주, 기본소득당 용혜인)에게 간담회를 제안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인 3시부터는 민주당 원내 정책위의장인 김성환 의원과 1시간가량 간담회가 진행됐다. 면담에 참여한 정다운 활동가는 “2023년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은 간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전장연과 일정을 조율 중이다. 그러나 국민의힘만이 아무 답변이 없는 상태다. 정 활동가는 국민의힘을 비판하며 “여당인 국민의힘은 평소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그런데 왜 장애시민과의 소통은 하지 않나. 빠르게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 200여 명은 기자회견 후 국회의원의 책임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아 종이비행기 1천 개를 국회의사당을 향해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