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치료 막아 예산 아끼는 정부에 당사자들 ‘분노’

희귀질환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존재하지만… 보험 적용 까다롭고 언제든 끊길 수 있는 스핀라자 급여화된 졸겐스마, 효과 없어 다른 치료제 쓰려면 환자 전액 부담 에브리스디는 급여 도입 논의조차 ‘지지부진’ “한시가 급한 당사자들로서는 더는 늦어져서는 안 돼”

2022-08-26     이슬하 기자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4일 오후 2시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 앞에 놓인 현수막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스핀라자 급여 중단 기준 폐지 및 에브리스디 급여 보장 촉구 기자회견”이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정부가 고가의 희귀의약품에 대한 보험 적용을 축소하려는 가운데, 희귀질환 당사자들이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저울질하지 마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 환자 의약품 접근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SMA공대위)’는 24일 오후 2시 강원도 원주에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보험 적용 확대를 촉구했다.

- “환자들이 못 맞게 함으로써 예산 아끼려는 정부”

척수성근위축증은 운동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Survival Motor Neuron, SMN) 단백질 결핍으로 온몸의 근육이 점차 약화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과거에는 별다른 치료제가 없었지만, 2016년 최초 치료제인 ‘스핀라자(뉴시너센나트륨, nusinersen)’가 개발돼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부터 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주사로 투여되는 스핀라자는 첫해에는 6회, 이후부터는 4개월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 주사 비용은 1회당 약 1억 원이다. 보험 적용이 절실한 상황인데, 보험이 적용되더라도 환자 본인부담금이 약 600만 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조차 적용받기 까다롭다는 것이다. 심평원 약제급여기준 소위원회는 환자 본인이 ‘만 3세 이하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을 증명해야만 스핀라자 급여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만 3세 이후에 진단을 받았거나, 3세 이전에 발병했다는 것을 본인이 증명할 수 없으면 사실상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어렵게 적용받은 스핀라자 급여가 중단되기도 한다. 심평원은 4개월에 한 번씩 스핀라자를 투여할 때마다 모니터링을 통해 급여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스핀라자는 증상이 ‘개선 혹은 유지’되지 않으면 급여 적용이 중단된다.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들은 “효율성의 잣대로 희귀질환자의 생명을 재단하지 마라”며 심평원에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이들은 ‘만 3세 이하 증상 발현’이라는 급여 적용 기준은 의학적 근거도 빈약한 데다, 어린 시절을 입증할 의료기록이 남아있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사가 약물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심사의 과정인 만큼, 별도의 모니터링을 통해 급여를 중단하는 제도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MA공대위는 이런 요구사항을 가지고 지난 2월 7일 심평원 서울지원을 점거하며 심평원장 면담을 촉구하기도 했다.

SMA공대위는 지난 2월 7일 심평원 서울지원을 점거하며 심평원장 면담을 촉구했다. 심평원 서울지원 건물 벽면에 요구사항이 담긴 피켓들이 붙어있다. 사진 비마이너DB

그러나 심평원은 만 3세 기준 폐지 논의는 미뤄둔 채, 급여 중단 기준에 대해서는 오히려 강화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상이 ‘개선 혹은 유지’돼야 한다는 기준을, 증상이 ‘개선’돼야 하는 것으로 강화하려는 것이다. 퇴행성 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은 약을 투여했을 때 몸의 기능과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효과가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극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개선’으로 급여 유지 기준을 강화하려는 데에는 예산 논리가 작용했다는 게 SMA공대위의 분석이다.

SMA공대위는 지난달 20일 제16차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아래 건정심)에서 또 다른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인 졸겐스마에 대한 급여 결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고가 약제인 졸겐스마가 급여화되면서 희귀의약품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자 스핀라자의 급여 중단 기준을 강화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는 스핀라자와 졸겐스마 외에 에브리스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에브리스디는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먹는 약인 에브리스디는 척추강 주사를 놓을 수 없거나 잦은 입원 치료가 어려운 이들에게 꼭 필요한 약물이지만, 심평원은 제약사가 급여를 신청한 지 1년이 넘도록 에브리스디 급여 도입 논의를 미루고 있다.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는 “에브리스디는 논의를 마쳐야 하는 법정기한을 이미 넘겼음에도, 아직도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고 있다. 희귀질환자들은 정부의 예산 논리로 인해 생명을 포기당하고 있다”면서 “비싼 약값을 낮추거나 제약 자본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환자들이 못 맞게 함으로써 예산을 아끼려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인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척추에 주사를 놓는 스핀라자는 주사를 맞고 나면 8시간 정도를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사망 동의서를 쓰고 맞는다. 얼마 전, 스핀라자를 맞는 환우 한 명이 주사를 맞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척추가 너무 아파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또한, 중소도시는 4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먹는 치료제인 에브리스디는 이런 어려움들을 해소해줄 수 있어, 당사자들에게 너무나 절박한 치료제”라고 강조했다.

- 논의 진행 상황조차 당사자에게 비밀인 심평원

이날 SMA공대위는 심평원 실무진과 면담을 진행했다. SMA공대위 측에서는 노금호 소장, 박주석 간사, 박명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등이 참여했고, 심평원 측에서는 장용명 개발상임이사 등이 참석했다.

SMA공대위는 심평원 측에 △스핀라자 ‘만 3세 이하 증상 발현’ 급여 적용 기준 폐지 △스핀라자 급여 중단 제도 폐지 △에브리스디 급여 도입 논의 즉각 시작 △졸겐스마 급여 연령 기준 확대 및 다른 치료제 교체투여 시 급여 보장을 요구했다.

졸겐스마의 경우 지난달 20일 건정심에서 급여 결정이 이뤄졌지만, 적용 기준은 협소하다. 어릴 때 한 번만 맞으면 된다고 해 ‘원샷 치료제’라 불리는 졸겐스마는 식약처에서 승인하기로는 나이 제한이 없었으나, 건정심에서는 ‘12개월 이하의 환아’라는 연령 제한이 달렸다. 그마저도 9개월에서 12개월 사이의 환아는 투여가 이득이 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졸겐스마에 대한 급여 적용을 이미 하고 있는 나라들(미국, 일본 등)은 대부분 연령 제한을 ‘24개월 이하’로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이번 건정심은 급여 기준에 ‘투여 후 다른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투여 시 급여를 인정하지 않음’이라고 명시했다. 졸겐스마 투여 후 효과가 없더라도 다른 치료제에 대한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SMA공대위는 이런 급여 기준 역시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노금호 소장이 장용명 심평원 개발상임이사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노금호 소장은 각 요구사항에 대한 심평원의 논의 진행 상황을 질의했다. 그는 “‘만 3세’ 기준은 폐지할 것처럼 하더니 도대체 언제 폐지하는 거냐. 한시가 급한 당사자들로서는 더는 늦어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나 역시 그 기준에 걸려 치료를 못 받은 1년 동안 병이 많이 진행됐다”고 분노했다.

이에 장용명 이사는 “실무진 선에서 소위원회 논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는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특히 중증질환이나 고가 희귀의약품에 대해서는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는 “몸 상태가 개선돼야만 보험 적용을 유지하는 것으로 단정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고도 해명했다. 이에 대해 노 소장이 “예전에는 몸 상태가 유지만 돼도 상관없었는데,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몸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사실상 보험 적용에서 탈락된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다. 내가 아는 탈락자만 4명이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라고 되묻자 장 이사를 비롯한 심평원 실무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논의 진행 상황을 전혀 공유받지 못한 SMA공대위 측은 소위원회 참여 보장 등 당사자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라며 심평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심평원 측은 9월 중으로 김선민 심평원장 면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경. 사진 이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