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김광호,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벌금 내면 조사받겠다”

전장연 활동가들, 남대문서 자진 출석 “억울… 왜 우리만 조사받나? 국가도 조사하라” 박경석, 모의재판 내용 언급하며 조사 거부 “김광호, 벌금 내거나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계획 먼저 밝혀라”

2022-08-31     하민지 기자
남대문서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전장연 활동가, 남대문경찰서 자진 출석 조사 일부수용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조사를 거부해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서울남대문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앞서 전장연은 혜화경찰서, 용산경찰서 등에 자진 출석했으나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편의시설이 없어 조사를 거부한 바 있다. 이에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차별행위를 시정하지 않고 남대문서에서 전장연 사건을 병합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출석요구서를 받은 활동가 26명 중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상임공동대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이음센터) 소장,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먼저 조사에 응했다.

전장연은 31일 오후 2시, 남대문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경찰 조사에 임했다. 단,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조사를 거부했다. 박 대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국민참여모의재판 내용을 수용해 벌금을 내거나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계획을 밝히면 자진 출석해 조사받겠다”고 밝혔다.

전장연은 지난 29일, 국민참여모의재판을 열고 김 청장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피고인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김 청장이 이에 불응해 모의재판은 결국 김 청장 없이 진행됐다. 모의재판 재판부는 김 청장의 “악의적 차별행위”가 인정된다며 벌금 3천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전장연 “우린 비폭력저항권 행사했을 뿐… 김광호·추경호·윤석열을 수사하라”

이날 남대문서에 출석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공동대표는 20년 전, 서울역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이동권 투쟁을 하다 남대문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20년 후 또다시 남대문서에 온 이 대표는 변하지 않는 장애인차별 사회를 개탄했다.

이 대표는 “20년 전에 서울역 지하철 선로에 드러누워서 1시간 동안 개기다가(버티다가) 경찰이 우르르 와서 장애인 20명, 비장애인 20명을 한꺼번에 잡아갔다. 남대문서로 잡혀가서 조사받는데, 당시 수사관이 장애인인 나를 보고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아서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는데 그게 그렇게 잡아갈 일인가?”라고 성토했다.

또한 “20년 후인 오늘(31일), 남대문서에 또 조사받으러 왔다. 우리(장애인)는 20년 넘게 끊임없이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단지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했을 뿐인데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바뀌어도 해결되는 게 없다. 우리만 조사받는 게 합당한가? 조사해라. 조사받고 투쟁하고, 또 조사받고 또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억울하다며 크게 분노했다. 사진 하민지

이 대표와 함께 출석한 문애린 이음센터 소장도 억울하다며 분노했다. 문 소장은 “억울하다. 지하철을 1분이라도, 버스를 10분이라도 더 멈춰 세워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고 울부짖을 걸 그랬다. 조사받고 다시 거리에서 투쟁할 것이다. 그러면 또 조사받고, 감옥에 수감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 진짜 범죄자는 장애인을 거주시설과 집구석에 꽁꽁 묶어놓은 정부다”고 힘줘 말했다.

1998년에 시행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6조는 국가가 장애인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시행령 별표2에는 대상시설별로 설치해야 하는 편의시설의 종류와 설치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파출소와 같은 공공시설에는 장애인이 통행 가능한 접근로, 엘리베이터, 장애인 화장실, 점자블록 등이 있어야 한다.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은 장애인등편의법을 준수하지 않은 경찰을 규탄했다. 이 회장은 “장애인등편의법이 시행된 지 24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경찰서가 엘리베이터 하나 설치해 놓지 않은 게 말이 되나? 경찰이야 말로 수십 년간 법을 위반했으면서 왜 우리만 잘못했다고 하나?”라며 “이번 폭우로 동작역과 이수역이 침수돼 엘리베이터 가동이 안 된다. 장애인은 해당 역에 가면 지하철을 탈 수 없어 허탕 친다. 그런데도 안내문구 한 줄 없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한다는 방송은 매일 아침 하면서, 장애인에게는 단순한 공지 한 마디도 안 한다”고 분노했다.

또한 “조사받는 건 억울하지 않다. 국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한 태도로 나오는데 우리만 잘못했다고 하는 게 너무나 억울하다. 장애인권 외면하는 김광호 청장,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부터 조사해라”라며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억울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억울하지 않게 시민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지하철 탄다. 투쟁하는 장애인들 전부 잡아가라. 정부가 장애인을 외면하는 한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국가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장애인을 지속해서 구조적으로 차별했다. 이런 국가를 향해 우리는 비폭력적 저항권을 행사한 것일 뿐”이라며 투쟁이 죄가 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철장 속에 들어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박경석 “김광호가 장애인 차별 인정하면 조사받을 것”… 철장 속 조사 거부

전장연이 지난 29일 연 국민참여모의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김광호 청장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평결했다. 재판부는 이를 반영해 김 청장에 벌금 3천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청장이 장애인차별금지법 49조가 규정하는 “악의적 차별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 24년이 지나는 동안 경찰서에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긴 시간 수많은 장애인이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엘리베이터 설치 비용은 서울경찰청 한 해 예산의 0.03%만 쓰면 되므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과도한 부담”이라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차별의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 등이 인정되고 차별 피해의 규모도 크다며 벌금 3천만 원을 선고했다.

비록 진짜 재판은 아니었지만, 해당 모의재판은 김 청장의 모순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김 청장은 전장연 투쟁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이 법을 위반하며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장 속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남대문서 수사과장에게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대표는 모의재판 내용을 언급하며 김 청장이 벌금을 내면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벌금을 내지 않을 거면 경찰서에 오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라. 아니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계획이라도 밝혀라. 또한 우릴 흉악범 취급한 것에 대해 사과해라. 그러면 조사받겠다”라고 강조했다.

철장을 타고 나타난 박 대표는 철장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차별사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시각적 퍼포먼스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김 청장의 행위와 같은 차별 때문에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법대로 조사하려면 해라. 그 전에 경찰부터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남대문서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장애인권리예산 요구를 외면한 채 청와대에서 ‘장애예술인 특별전’을 연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또한 윤 정부의 첫 2023년 예산안이 지난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전장연은 오는 9월 5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36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행진하는 전장연 활동가들. 한 활동가가 장애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가짜 관을 끌고 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행진하는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