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권성동은 차별 멈추라” 37차 지하철 투쟁

권성동 “불법으로 얻는 건 처벌뿐” 망발 전장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될 수 있으면 처벌 달게 받겠다” 경찰, 국회에 면담요구안 제출하려는 장애인 강경진압

2022-09-19     하민지 기자
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이 김순석 열사 38주기인 19일, 37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 60여 명은 19일 오전 7시 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3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진행했다. 시청역에서 당산역까지 매 정거장을 천천히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당산역에서 9호선을 갈아타고 국회로 간 후, 주요 정당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관한 면담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날 출근길 투쟁에서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지난 14일, 권 원내대표는 논평을 통해 “전장연이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고 망발을 해 장애인의 공분을 샀다.

또한 이날은 김순석 열사의 기일이기도 하다. 휠체어 이용자였던 열사는 38년 전인 1984년 9월 19일,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무책임한 권 원내대표의 발언을 규탄하며 지하철을 타겠다”고 말했다.

박선영 전장연 활동가가 김순석 열사 유서가 담긴 책 《유언을 만난 세계》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장연 시위를 향해 맹비난을 쏟아냈다. “이미 전장연 불법 시위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고 있다. 이런 방식을 지속한다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며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 불법행위를 주도한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위를 지지하는 의견을 “선동”이라며 정파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전장연을 비판하면 일부 야권 인사는 혐오와 차별이라고 낙인찍는다. 다른 의견을 도덕적 파탄으로 몰아세우며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려는 선동”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전형적인 갈등산업 종사자의 모습”이라고 망언했다.

이에 대해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조차도 정파적으로 이용하고 갈라치기하는 ‘못된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다”라며 “권 원내대표는 장애인의 권리를 국가권력이 차별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먼저 책임져라”라고 규탄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수용시설을 뜻하는 철창에 갇혀 이동하고 있다. 그의 목에는 쇠사슬이 매여 있다. 사진 강혜민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권 원내대표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외침을 당리당략에 맞게 이용했다. 비통한 심정”이라며 “장애인권리예산이 보장될 수만 있다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 2023년도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갔으니, 이제는 국회가 책임져라”라고 성토했다.

전장연은 세계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 중이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예산요구안, 면담요청서 등을 정부와 국회, 각 정당에 수도 없이 전달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에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 예산안과 전장연 예산안은 약 1조 5천억 원이 차이 난다. 정부는 지난 2일, 예산안을 국회로 넘겼다.

박경석 대표는 “1조 5천억 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일 뿐이다. 이마저도 보장하지 않으면 장애인은 계속 마이너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국회가 해결하라. 예산안 심사할 때 장애인권리예산 1조 5천억 원을 증액하라”고 강조했다.

지하철을 탄 장애인 활동가들 뒤로 피켓이 보인다. 피켓에는 “1939년 나치가 장애인 바라보는 관점=2022년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 기획재정부의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춰 주십시오. 장애인권리예산은 비용 문제가 아닌 시민의 권리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권리예산이 보장되지 않아 죽어간 장애인들의 삶을 의미하는 가짜 관을 활동가들이 이동시키고 있다. 관에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발달중증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 보장하라”고 적힌 까만 천이 덮여 있다. 사진 강혜민

- 휠체어 이용자 밀치며 먼저 타는 승객들

전장연은 시청역에서 당산역까지 매 정거장을 천천히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6-1칸에 승차했다가 하차한 후 7-1칸으로 다시 타는 식이다. 역마다 5~6분씩 지연됐다.

홍대입구역과 합정역은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는 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똑같이 출근하는 서울시민이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휠체어 이용자 승차를 위해 공간을 확보해 달라”고 열차 내 승객에게 요청했지만,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승객이 많았다. 어떤 승객은 “아, 싫어요!”라고 짜증을 내며 휠체어 이용자의 승차를 막기도 했다.

전장연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이 김순석 열사 38주기인 19일, 37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휠체어 이용자들이 열차에 타기 위해 줄을 섰지만, 많은 승객이 아랑곳하지 않고 휠체어 이용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열차에 타버렸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휠체어 이용자 타시게 하려고 만든 공간이에요. 다른 칸에 승차해 주세요”라고 외쳤지만 대부분 듣지 않았다. 결국 합정역에서는 휠체어 이용자들이 자리가 없어 열차에 다 타지 못해 두 번에 걸쳐 당산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2호선 당산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환승할 때도 1역사 1동선이 보장되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들은 고생해야 했다. 딱 한 대 있는 엘리베이터엔 휠체어 이용자 두 사람만 겨우 탈 수 있었는데 9호선 승강장까지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환승하는 데에만 1시간가량 걸렸다.

2호선 당산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매우 길다. 딱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에는 휠체어 탄 사람이 두 명밖에 타지 못한다. 사진 강혜민

- 국회에 공문 내러 가는데 막아선 경찰

전장연은 9시 50분경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열고 각 정당 대표에게 장애인권리예산에 관한 면담요구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대표단이 국회로 들어가려 하자 경찰은 전장연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 1항을 위반했다며 막아섰다. 해당 조항에는 국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있거나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경우 옥외집회 및 시위를 금지한다고 돼 있다.

국회 앞에 모인 전장연 활동가들. 국회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경찰에 의해 길이 막히자,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간담회 요청 공문을 높이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은 대표단 두세 명 정도만 면담요구안을 제출하러 국회 안으로 가겠다고 밝힌 상태였지만 경찰은 방패로 막아섰다. 이에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비서관이 박경석 대표만 데리고 국회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국회에서 근무하는 비서관조차 방패로 막아섰다. 박경석 대표는 “국회에 국민이 왜 못 들어가나. 공문 하나 접수하자는 건데, 길을 열어 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사무처 직원 한 명이 나오면서 박경석 대표의 국회 출입이 가능해졌다. 박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하한나 주임에게 면담요구안을 전달했다. 면담요구안을 받은 천준호 의원은 “장애인권리예산을 우선 처리해야 할 민생예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간담회를 통해 숙고해서 답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은주 비대위원장과 강은미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삼각지역 삭발투쟁결의식에 참석해 받아 간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이 간담회 요청 공문을 받고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