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수용할 수 있는 시위하라”는 조규홍… 전장연 “자격 없다”

청문회서 “전장연 시위는 불법” 낙인찍은 조규홍 “정부가 다 검토하고 있으니 ‘일반인’이 수용하는 시위 해라” 전장연 “기재부 요직 거친 한국판 T4 주범… 자격 없다”

2022-09-27     하민지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향해 ‘시민의 출근을 방해하는 불법행위’라고 비난했다.

전장연은 즉각 성명서를 내고, “27일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 해당 발언을 사과하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27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청문회에서도 “그분들(전장연)의 요구사항을 잘 알고 정부도 검토 중이다. 이제 ‘일반인’이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위하셔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에 전장연은 같은 날 오후 5시, 복지부 장관 서울 사무소가 있는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긴급 집회를 열고 “조규홍 후보자는 복지부 장관 자격이 없다”고 규탄했다.

27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조규홍 후보자가 최혜영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SBS 뉴스 유튜브 캡처

- “요구사항은 정부가 잘 알고 있으니 이제 표현방법 좀 바꾸셔야…”

조규홍 후보자는 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에서 ‘전장연 지하철 시위는 업무방해이며 시민의 출근을 방해하는 불법 시위’라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연 요구에 대해서는 ‘타당성 등을 검토하며 불법적인 시위를 지양하도록 소통할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별다른 대책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전장연은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조 후보자는 돈으로 장애인 권리를 자른 기획재정부 관료이자 한국의 T4(나치의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 작전 주범이면서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에 불법 운운한다”라고 강도 높게 규탄했다.

실제로 조 후보자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기재부 예산제도과, 예산총괄과 등에서 근무했다. 2022년 5월부터 복지부 제1차관으로 근무해, 복지부 경력은 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전장연은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으로 자른 주범이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전장연을 낙인찍기부터 한다”며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발언을 사과하고 활동지원예산, 발달장애인예산, 탈시설예산 등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라”고 규탄했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사과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국회의원이 조 후보자를 향해 “시위가 불법인 건 보이고, 왜 이렇게까지 시위하는지는 보이지 않나? 장관 후보이자 현직 차관이면 시위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해결을 위한) 정부 역할부터 말해야 한다”고 따져 물었다.

조 후보자는 “시민의 출근을 방해하고 많은 분에게 불편을 끼쳐드리는 시위라 합법적인 범위를 벗어났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정부도 잘 알고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시위 표현 방법을 바꾸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최 의원이 “헌법에 있는 행복추구권을 보장하지 않는 건 정부다. 정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불법 시위’하지 않도록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벌써 불법이라 단정 짓는 분이 어떻게 소통할지 의문이다. 다시 묻는다. 장애인 시위는 불법인가?”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조 후보는 “요구내용과 요구방법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나는 요구방법을 얘기하는 것이다. 정부가 잘 검토하고 있으니까, 표현방법 좀 바꾸셔서 ‘일반인’이 수용할 수 있는 시위를 해 달라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일반인’이라는 표현에 최 의원이 “비장애인”이라고 정정했지만 조 후보는 별다른 반응 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 모인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 복지부 장관 서울 사무소 앞 외벽에 “조규홍 자격 없다”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던 27일 오후 5시, 전장연은 서울시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 긴급하게 모여 “조 후보자는 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조 후보자는 기재부의 요직을 다 거친 ‘한국판 T4’의 주범이며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방치한 사람이다. 장애인권리예산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도 믿을까 말까 한 상황에, 불법과 처벌을 운운하며 낙인부터 찍는 후보는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30분가량의 짧은 집회를 마치고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외벽에 장애인권리예산 요구 관련 스티커를 붙였다. 박 대표가 스프레이로 “조규홍 자격 없다”는 글씨를 쓰려 하자 경찰은 “사유재산 효용을 침해하는 재물손괴 행위”라며 저지했다.

이에 박 대표는 스티커 위에 “조규홍 자격 없다”라는 글씨를 쓰고, “조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사퇴 운동,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운동 등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외벽에 스프레이로 ‘조규홍 자격 없다’라고 썼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 권리 보장에 “점검하겠다”, “유념하겠다”

조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 보장을 묻는 다른 의원의 질의에도 원론적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탈시설지원법을 대표발의한 최혜영 의원이 “윤석열 정부는 탈시설지원법 통과에 매우 비협조적이다.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정부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여야 의원 모두가 지적하고 있다. 당시 조 후보자가 복지부 제1차관으로서 정부 방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5개월이 지났다”고 비판했다. 조 후보자 스스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정부 방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사과하지 않고 “추진사항을 점검하겠다”고만 짧게 답변했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는 복지부 제1차관이 된 후 발달장애인 참사 사건이 몇 건 일어났는지 알고 있나? 분향소에는 가 봤나?”라고 물었다. 조 후보자는 침묵하다가 “가 본 적 없다”고 짧게 대답하고, 발달장애인 지원 방안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복지제도 신청주의의 문제점, 부양의무자기준 미폐지 등에 대해서 질의했지만 조 후보자는 “복지제도 신청 시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만들겠다”, “유념하겠다” 정도로 짧게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