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폭우는 떡볶이 파는 김씨 포장마차도 덮쳤다 / 최인기

[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②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직업, 노점상

2022-10-11     최인기
8월 8일 1호선 석계역 굴레방길 아래가 물에 잠겼다. 사진 정구준 

올해는 유독 기후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온다. 특히 가난, 장애인, 반지하에 덮친 재난 기사가 뉴스를 뒤덮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얹어 알려지지 않은 노점상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난여름 반지하 폭우 참사가 일어났던 시기, 우리 노점상단체 소통방에도 여러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구로·금천지역에서 장사하다가 수해를 맞은 사진이었다. 새벽에 내린 집중 폭우로 일대의 노점상이 휩쓸리고 집기가 거리에 흩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이를 목격한 노점상 이범석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안양천 일대가 범람하자 물이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까지 역류한 거예요. 대부분 떡볶이 포장마차 등을 운영하는 상인이었는데 빗물이 도로 위를 덮치자 주변 차량과 뒤엉켜, 집기는 물론 가스통까지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일대에는 약 8대가량의 노점상이 장사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인명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얼마나 아찔했는지를 알려주는 증언이었다.

8월 8일 폭우로 가산디지털단지역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노점상 마차가 큰 피해를 입었다. 휩쓸려 나간 포장마차를 중장비로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이범석

- 빌딩 숲 사이 아스팔트 도로가 우리의 장사 공간

석계역 근처에서 장사하는 노점상 정구준 씨도 자신의 자리 옆 전철 굴레방길 아래로 물이 잠겨 일대가 위험에 처한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우이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이곳은 과거 배수펌프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상습적으로 물이 잠기던 곳입니다. 이번에도 굴레방길 쪽으로 차량이 끊기고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토스트 파는 노점상과 도넛을 파는 제가 커다란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수해를 입을 뻔한 정구준 씨 옆에서 어묵을 파는 김만호 씨도 한마디 거든다. “아무리 더워도 떡볶이 노점상은 불판 앞에서 눌어붙지 않도록 국자로 휘휘 저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파는 어묵은 국물을 우려내기 위해 약한 불이지만 항상 켜 놓습니다. 여름 평균기온 30도를 오르내리면 음식 파는 노점상 천막 안 온도는 훌쩍 올라가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종일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그야말로 탈진해 쓰러질 정도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손님들은 아무리 노점상 어묵과 떡볶이가 맛나도 한여름이면 돈을 조금 더 지불해 에어컨이 나오는 프랜차이즈 분식점을 찾는다. 김만호 씨는 여름이면 이제 차라리 장사를 중단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겨울철은 반대다. 아무리 손난로를 켠다 한들 천막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추위를 막을 수 없다. 반대로 어느 해에는 겨울답지 않게 너무 푸근해 제철 품목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마디로 ‘앞으로 밑지고 뒤로 까인다.’ 물건이 남게 되면 보관 비용 때문에 원가 이하로 땡처리할 수밖에 없다.

변화무쌍한 기온은 야채와 과일을 파는 노점상도 비껴가지 않는다. 청량리 청과물시장 앞에서 장사하는 노점상 오근택 씨는 8월 초·중순 경 내린 이례적 집중호우로 과수·채소 등 농작물 피해가 크단다. 장사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마수걸이’조차 못한 날도 많았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노점상들은 이구동성으로 기후위기에 따른 기상이변이 심해지면서 생계를 위협당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겨울 노점상에서 어묵 등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노점상은 추위와 싸워야 한다. 사진 최인기 

- ‘불법’ 딱지 붙은 노점, 큰 피해 입어도 ‘쉬쉬’

이렇게 곳곳에서 피해를 보지만 노점상들은 원래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다. 무엇보다 ‘불법’으로 인식되기에 내부적으로도 묵인하거나 쉬쉬하는 편이다. 그러니 언론에도 잘 나오지 않고,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기 어렵다. 그러나 노점상은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빈곤계층이다.

지난해 9월~10월, 민주노점상전국연합(아래 민주노련)과 한국도시연구소, 빈곤사회연대는 노점을 운영하는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월평균 노점운영소득은 131만 2천 원이며, 이 중 100만 원 이하(54.9%)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 평균연령은 61.5세였으며 노점운영기간은 ‘10년 이상’이 76.4%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노점을 하게 된 주된 이유로 이들은 사업실패·실업(62.3%)을 꼽았다. 즉, 노점은 기존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자본이 미약한 이들이 그나마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노동인 것이다.

조항아 민주노련 사무처장은 폭우뿐만 아니라 폭염과 추위도 노점상에게 치명적인 고통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시사철 거리의 매연과 황사는 기관지 등 병을 유발합니다. 단속과 철거뿐만 아니라 재난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들은 노점상특별법 제정 운동을 꺼내 들었습니다. 떳떳한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죠. 이 법안은 작년 1월까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입법청원에 성공했습니다. 단속을 비롯해 과태료 부과를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밖에도 대안 마련을 위한 ‘노점상생계보호협의회’ 신설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노점상특별법 제정 운동은 일견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노점상특별법 제정 운동은 노점상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불법’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정받을 때, 자신의 권리를 확장하고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항아 사무처장은 “현재 이 법안은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처리는 계속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며 “시급히 제정돼야 할 법”이라는 주장도 빠트리지 않았다.

길 위의 노점상.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던 노점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진 최인기 

필자는 자전거로 청계천변을 달려 출퇴근한다.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 서울 시내 빗물이 청계천으로 모여드는 것을 목격한다. 물은 순식간에 급류가 되어 중랑천 방향으로 흘러내린다. 동대문 밖 창신동 쪽 청량리 방향은 지대가 낮아 종종 노점상들이 장사하는 장소가 물에 잠기기도 한다. 여름철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일손을 멈추고 대피해야 할 장소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하루 장사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의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공산품의 경우 비에 젖으면 손해가 막심하다.

이렇게 노점상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와 바람 한 점 없는 빌딩 숲 사이 길모퉁이에서 장사한다. 기후에 매우 취약한 직업이다. 사람과 자연을 서로 떼놓을 수 있을까? 모든 게 이어져 있지만 위기로 인한 재난은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다. 기업의 끝없는 욕심과 멈추지 않는 욕망이 가난한 이들의 재난이 되었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필자 소개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기록하는 빈민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