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어메이징 코리아’, 기후악당에 맞선 철거민들 / 이원호

[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③ 기후위기와 재난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도시 계획, 쫓겨나는 철거민

2022-10-16     이원호

- 어메이징 코리아

상훈 : 저거는 얼마 전에 네가 안전 진단한 건물이지? 진짜 튼튼하게 지었나 보다.

동훈 : 안 튼튼해. D등급 나왔어

상훈 : ‘경축’이라는데?

동훈 : 재건축하려면 D등급 나와야 돼. D등급 나와서 재건축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야. 돈 벌게 생겼다고….

상훈 : 하. 진짜 ‘어메이징 코리아’다. 안전하지 않다고 판정 난 걸 경축이라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인 구조기술사 동훈(이선균 씨)과 그의 형 상훈(박호산 씨)이 나눈 대사는 재건축과 관련한 ‘어메이징 코리아’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기 집이 위험하다는 것에 기뻐하며, 축하의 현수막이 나부끼는 개발 지역의 풍경은 상식적이지 않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의 주택은 일정 기간의 건축 연한이 지나면 재개발·재건축의 요건에 충족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30년, 벽돌구조는 20년 이상이면 노후도의 기준이 충족되어 ‘돈 벌게 생긴’ 재개발·재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경축’의 신호가 된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부터 ‘100년 가는 아파트를 짓겠다’라고 선언했지만, 한국의 아파트 공동주택 교체 수명은 27년도 되지 않는다. 미국과 프랑스의 공동주택 교체 수명은 70~80년, 영국과 독일은 120년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개발의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역시 ‘돈’이다. 국내 건설폐기물 중 재활용되지 못한 1.1%의 폐기물만으로도 수도권매립지 쓰레기의 58%를 차지할 정도라고 하니, 전형적인 토건국가인 ‘어메이징 코리아’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월계동 재건축구역에는 2022년 7월 10일까지 자진이주하라는 공고와 철거 예정 건물에 침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있다. 사진 이원호

- 월계동,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월계동 487-17번지 일대, 이곳에도 재건축 사업 시행인가가 났던 2006년부터 ‘돈 벌게 생겼다’는 ‘경축’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제는 ‘빨리 나가라’는 이주 개시 공고와 철거 예정이라는 경고문이 동네 담벼락과 대문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은 단독주택과 다세대, 다가구 주택 등 저층 주거지인데도 ‘월계동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이라는 명칭의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곳이다.1)

한때 300여 세대가 거주하던 동네는 이제 다섯 세대만이 남아있다. 올해 4월부터 7월까지가 자진 이주 기간이었지만, 조합은 자진 이주 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명도소송을 진행해 진작부터 쫓아냈다. 세입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동네였지만 이곳에 계획된 374호의 아파트 중에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은 39호밖에 짓지 않는다. 용적률을 올리는 변경계획이 인가되었지만 분양아파트만 당초보다 92호 늘었을 뿐, 임대주택은 4호가 줄었다.

봉천동과 신림동 달동네를 거쳐, 월계동에만 20년 이상 살고있는 철거민 신 씨(65세, 여)는 이웃들이 다 쫓겨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이 남아있다고 했다.

“제가 2019년도에 여기서 통장도 하고 해서 잘 알아요. 여기가 세대 수만 300세대가 넘었어요. 대부분 세입자들이었죠. 기초생활수급자도 그때는 47가구였어요. 저도 수급자이고요. 여기가 2006년 이전부터 개발을 추진하면서 집주인들이 집을 방치하고 그런 대신에 저렴하게 오랫동안 살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15년 넘게 멈춰있던 개발이 갑자기 추진되면서 이제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다 쫓겨난 거죠. 지금 다섯 가구만 남아있는데, 네 가구가 수급자예요. 나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거죠.”

월계동 철거민 신 씨가 살고 있는 2층 집. 아들 두 명과 함께 살던 신 씨는 SH전세임대주택 제도로 지원받은 7천만 원에 자신의 돈을 조금 보태 9년째 전세로 이곳에 살고 있다. 사진 이원호

- 대책 없는 대책, 단독주택 재건축

월계동 재건축 지역은 지난 2018년 겨울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라는 유서와 함께 삶을 등진 아현동 고(故) 박준경의 동네와 같은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이다. 사실상 재개발과 다름없는 사업임에도, 재건축이라는 이유로 세입자에 대한 법적 대책이 전혀 없었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하나의 공법 체계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규정하는 사업인데도, 법은 재개발사업만 세입자 손실보상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2)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개발을 하면서도, 개발사업의 명칭으로 세입자 대책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나마 박준경의 죽음 이후 서울시는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은 재개발사업 세입자와 동일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서울시는 첫 사례지역으로 월계동 재건축 지역에 세입자 대책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 씨에 의하면 이곳 세입자 중에 재개발에 준하는 알량한 보상이나 대책을 제공받은 세입자는 거의 없다. 재개발사업의 세입자 대책은 정비구역지정 공람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월계동도 그 기준을 적용하면 정비구역이 지정된 2006년 3월 이전부터 거주했어야 세입자 대책을 적용받을 수 있다.

상가 세입자의 대책 기준일이 되는 사업시행인가도 구역지정 6개월만인 2006년 9월에 났으니, 월계동의 주거·상가 세입자들은 이곳에서 16년 이상을 살거나 영업했어야 재개발에 준하는 대책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사실상 대책 없는 대책이다. 월계동에 20년 넘게 산 신 씨도 이곳 정비구역 내의 주택에서는 10년밖에 살지 않았으니, 대책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점포정리 20% 행사. 긴 세월 고마웠습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12년간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재건축사업이라 상가세입자에 대한 법적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시가 단독주택 재건축 대책으로 재개발에 준하는 보상을 유도하고 있긴 하나 이를 기준으로 해도 2006년부터 영업한 사람에게만 해당하여 이 가게 주인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사진 이원호

“여기는 개발을 한다면 원래 재개발을 해야 하는 곳인데, 재건축으로 바뀐 거예요. 아현동 사건 이후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도 세입자 대책을 세운다고 했고, 우리 동네가 첫 대상 지역이라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래도 다행이다. 이사 갈 수 있겠구나’ 했어요. 그런데 이사비 몇 푼도 없이 그냥 다 쫓겨났어요. 여기가 2006년에 구역 지정이 되어서 해당이 없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살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세입자가….”

월계동 신 씨가 세 들어 살고있는 주택의 반지하에도 50대 후반의 남성 세입자 ㄱ 씨가 살고 있었다. 떠나지 못했던 그는 결국 반지하 방에서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떠날 수 없었던 이곳을, 그렇게 떠나버렸다.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혼자였던 분인데, 어머니가 죽고 나서 매우 괴로워했어요. 마음 의지할 곳도 없고, 자기 몸도 아픈데 갈 곳은 없으니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제가 통장도 하고 그래서 주민센터에 전화했어요. 집중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좀 돌봐줘야 한다고…. 그런데 개발지역이라 그런지 별다른 대응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10월인가 며칠째 인기척이 없어서 제가 고구마를 쪄서 내려갔는데, 이상한 거예요. 벽에 기대서 누워있는데 싸하더라고요. 방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떠난 거예요.”

사람이 떠난 빈집들이 많지만 마당이 있는 빈집마다 감나무에 감이 열려 있다. 이처럼 대부분 멀쩡하고 예쁜 집들이었다. 사진 이원호

- 고쳐 쓸 필요도, 튼튼하게 지을 필요도 없는 집

대부분이 쫓겨나듯 떠나 경고장이 붙어 있는 동네는 스산하면서도 한편으로 반듯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6년 전, ‘재건축이 필요할 정도의 낡고 열악한 주거지’라고 결정했을 그 판단을 지금 시점의 동네를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반시설이 양호한 동네라, 집만 잘 수리하면서 고쳐 써도 충분할 텐데…. 아뿔싸! 그러면 돈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물건이 낡아서 새롭게 고치거나 바꾸려면 돈을 써야 하는 게 당연할 텐데, ‘어메이징 코리아’에서 집은, 자기 돈을 들여 고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바보다. 더 방치해서 시간이 지나면 개발을 해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튼튼하게 오래 가도록 건설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2~30년 후 개발할 테니 말이다. 신 씨는 집이 조금 낡았지만 살기 좋았던 동네였는데 삭막해졌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저희 아버지가 건축일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잘 알아요. 시멘트랑 모래 배합 비율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100년이 갈 집도, 일부러 20~30년만 가게 지어요. 그래야 그때 또 부수고 개발하고 하니까요.”

“집이 옛날 집이라 가끔 비가 새기는 했어요. 주인에게 고쳐 달라고 해도 방수 페인트 한번 옥상에 칠하고는 그만이에요. 개발될 동네라고 잘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 저는 개발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오래 살았고, 우리 동네가 좋아진다면야 좋지요. 그런데 지금의 개발은 저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 살 수가 없잖아요. 여기는 살기 좋아요. 시장도 가깝고, 전철도 가깝고, 사람들도 오래 살아서 친하고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예요. 그런데 개발되면서 이렇게 삭막해졌죠.”

우이천변을 따라 다세대 빌라들이 있고, 안쪽으로는 단독주택들이 있는 월계동 재건축구역 모습. 사진 이원호

- 기후위기와 재난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서울시 도시계획

월계동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는 ‘우이천변에 있어 침수 위험지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이천 바닥의 시멘트를 걷어내고 하천을 생태적으로 잘 관리하는 게 더 우선한 침수 대비책일 것이다. 지난 8월 초, 기후재난이 불평등을 따라 아래로 흘러 반지하 가구를 덮친 비극을 우리는 아프게 목격했다. 온갖 도시 개발사업으로 인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딱딱하게 덮인 땅에 빗물이 스며들 수 없었다. 하천의 범람이 아니라 땅에 스미지 못해 하수관으로 몰린 빗물이 역류해 땅속 삶을 덮쳤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물리적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개발사업 일변도이다. 급기야 서울시는 반지하 밀집지역이 빠른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될 수 있는 가점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피해는 반지하 주민들이 당했는데, 지원은 개발을 원하는 투기적 소유주들에게 하겠다는 것이다. 많이 알려졌듯 콘크리트 건축산업이야말로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주범3)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불평등 참사를 잊은 듯, 서울시는 도심 곳곳에 고층 빌딩을 세우고 콘크리트로 뒤덮는 ‘2040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월계동 철거민 신 씨는 다가올 명도 집행을 대비해, 방 한쪽에 침낭과 텐트를 준비해 두고 있다. 사진 이원호

- 철거민 투쟁, 토건·기후 악당에 맞선 싸움

월계동 철거민 신 씨는 재난 위험과 안전하지 않은 노후주택이라는, 토건 세력들의 겁박에 의해 쫓겨나는 중이다. 그녀는 자진 이주 기간이 도래하기 전에 날아온 명도소송 패소 판결문에 따라, 겨울 전 치러질 전쟁 같은 명도 집행을 대비하고 있다. 방 한쪽에는 자녀들과 캠핑할 때 쓰던 침낭과 텐트도 챙겨두었다. 이 집이 집행당해 쫓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 구청 앞에서 텐트를 치고 싸우겠다고 한다.

개발에 맞선 철거민들의 싸움은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한 싸움일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토건·기후 악당에 맞서는 싸움이기도 하다. 불평등의 재난을 온몸으로 맞서는 철거민들의 싸움에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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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개발과 재건축은 정비기반시설(도로, 공원, 상하수도 등)이 양호한지의 정도로 나뉜다. 도로 등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한 곳은 재개발을, 양호한 곳은 재건축으로 추진된다. 이에 재개발은 단독주택, 빌라 등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진행하고, 재건축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역에서 추진된다.

2004년, 재건축사업이 각종 규제 완화 등의 조치로 아파트뿐만 아니라 단독주택 밀집지역에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단독주택 재건축이 세입자 이주대책 등 공공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면서 2012년, 단독주택에 대한 재건축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월계동처럼 2012년 이전에 단독주택 재건축으로 구역이 지정된 곳은 그대로 추진되고 있다.

2) 공공 인프라인 기반시설까지 정비하는 재개발사업은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공익사업으로 분류되어 ‘공익사업법’에 따른 보상 체계를 준용한다. 반면 재건축은 민간사업으로 분류되어, 공익사업에 따른 손실보상 체계를 적용받지 않는다.

3) 건축은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콘크리트는 단일 품목만으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 송률‧크리스티안 슈바이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데에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 : 기후 위기, 건축, 윤리’, 월간 SPACE 648호, 2021년 11월

필자 소개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