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 죽고 운 좋으면 사는’ 사회 바꾸는 기후정의행동 / 박주석

[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⑥ 기후재난 속에서 가장 먼저 죽는 장애인

2022-10-24     박주석
2020년 2월 26일, 장애계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설 내 집단감염 문제에 대해 ‘시설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긴급구제를 신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도대남병원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얼굴 없는 영정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 전 세계 기후재난, 1980년대보다 3배 증가… 장애인이 먼저 죽는다

“발달장애인이랑 비장애인이랑 가족들이 반지하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많이 슬펐어요.” (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지난 10월, 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함께 재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활동가들은 지난 8월, 반지하에 덮친 폭우로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사망한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언론에 나오죠. 서울시, 국가 등이 대책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사람이 죽으면 만들어지는 것 같고, 그다음에 우리가 사는 것 같아요. 꼭 사람이 죽어야 대책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물음이 들어요.” (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1980년대에 비해 전 세계 날씨에 의한 재난 횟수는 3배 증가했다*). 점차 빈번하게 찾아오는 재난에 장애인이 사망하는 일 또한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올해 8월 폭우뿐만 아니라 지난 3월 울진 산불이 발생했으며, 코로나19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에 장기입원해있던 정신장애인이었으며, 이번 반지하 폭우 참사로 사망한 이 또한 발달장애인 일가족이었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취약계층,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장에서 국가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장애인은 재난 상황마다 가족, 지역주민, 봉사단체, 장애인권단체 등 누군가 돌봄을 부담하거나 구조해주거나 선의를 베풀거나 지원해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울진 산불 때 장애인은 국가가 아닌 이웃, 이장, 장애인권단체 등 마을 내 관계망을 통해 재난을 인지할 수 있었고, 코로나19 때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가 매칭되지 않아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방역복을 입고 지원에 나서야 했다. 장애인은 운 좋게 나를 지원해 줄 누군가가 있어서,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살아남았다. 국가의 역할이 없는 재난 속에서 유일하게 작동한 것은 바로 사적 관계망이었다.

2014년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재난대응과가 펴낸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지체장애인용)’을 보면, 국가는 어떤 유형의 재난이든 장애인에게 “사고 발생 시 안전벨을 누르고 도움을 줄 사람을 기다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재난에 장애인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안심콜과 같은 등록·관리 체계를 만들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내용은 여전히 없다.

국가는 항상 재난으로 인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사과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재난의 원인을 장애인의 개인적 특성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장애인의 개인 특성상 이동하기 불편하고, 기저질환을 지녀 재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홍수뿐 아니라 화재,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발달장애인이 대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수원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기후정의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장애해방

그러나 우리는 안다. 국가는 장애인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닌, 제 역할을 다해 재난에 그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재·폭우 등 재난에 안전한 건물을 설계하고 장애포용적 훈련프로그램을 상시 진행하는 사회, 장애인이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자체가 구급차로 장애인 가구를 일일이 방문하여 안전하게 대피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사회, 보장구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응급 시 누구나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말이다.

지난 9월 24일,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시민 3만 5천여 명이 모인 자리에 수많은 장애인들이 함께했다. 2020년에도 기후정의행진은 있었고 장마로 인한 50여 명의 사망·실종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가 생명을 잃었는지, 누가 더 취약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미비했다. 2년 사이 생태 위기와 사회 불평등을 잇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린 함께 기후정의를 외치게 되었다.

“우리는 이 기후재난의 불평등 속에서, 인권의 불평등 속에서, 권리의 불평등 속에서, 여기 계시는 분들과 외치고자 합니다. 다 함께 외쳐주시겠습니까?”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꼭 재난 현장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지원인력이 없어 온전히 가족이 부담하거나 시설에 강제 입소해야만 한다. 재난은 일상의 불평등이 심화된 결과다.

이로 인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해 12월부터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며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권리예산이란 장애인도 더는 집과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하고 노동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 모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예산을 말한다.

이는 9·24기후정의행진이 목표했던 모든 불평등을 끝내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더 키우며 생명 파괴 체제를 종식하는 과정과도 닿아있다. 실제 장애인이 지하철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은 녹색 교통으로 전환하는 운동에 장애 당사자가 주체로 서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속에서 장애인이 장애인이라서 사망하고, 운이 좋아서 살아남지 않도록, 우리는 ‘불평등이 재난’인 사회를 바꾸기 위해 기후정의를 함께 외치고자 한다. 장애해방은 기후정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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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bitious climate protection targets are needed – or the cost of climate change will keep rising. Munich Re. 2009.11.26. 

* 필자 소개

박주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