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청소노동자가 덕성여대 앞에 모인 이유

학내 혐오 여론 맞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한다” 덕성여대, 장애인 의무고용률 서울지역 대학 32곳 중 가장 낮아 본관 엘리베이터 미설치, 박경석 “장애인 접근권 보장하라”

2022-10-26     복건우 기자
덕성여대 정문 앞 게시판에 청소노동자 파업과 시위를 비난하는 자보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사진 복건우

‘하청 소속 청소노동자, 요구사항은 용역업체에. 교육기관을 볼모 삼지마라.’

26일 기자가 찾은 덕성여대 정문에는 청소노동자 파업과 시위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학생회관 길목에는 ‘소음공해로 인한 학습권 침해를 멈춰주세요’ ‘학교가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은 것처럼 시위하지 마세요’ 같은 말이 적힌 포스트잇이 한쪽 벽면을 채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이날 낮 12시 30분 덕성여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 파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시급 인상과 학내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장애인 의무고용률과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덕성여대 학교본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26일 낮 12시 30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덕성여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시급 인상과 비정규직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인·청소노동자의 ‘일할 권리’ 외면하는 덕성여대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본부에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1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이는 최저시급 인상(440원)에 따른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현재 덕성여대 청소노동자의 시급은 9390원으로, 법정 최저시급(9160원)을 약간 웃돈다.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현재 미화 용역 노조분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만큼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며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본부에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의 책임을 묻는 대신 청소노동자를 향해 비난과 혐오의 말을 쏟아냈다.

이날 장애계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장애인의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제정된 지 33년 된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학내 청소노동자의 생활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모두 ‘차별’의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덕성여대를 필두로 모든 대학이 헌법에서 정하는 장애인과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때까지 함께 연대하며 싸울 것”이라 했다.

실제로 ‘학생들을 인질로 삼아 불편을 끼친다’는 주장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전장연 출근길 시위에 대해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고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안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학교본부는 혐오와 갈등 부추기기를 멈추고, 장애인의 일자리와 비정규 여성 노동자의 생활임금을 조속히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학생회관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대열을 이루고 선 청소노동자 너머로 장애계 활동가들이 보인다. 사진 복건우

- 덕성여대 장애인 고용률, 서울지역 대학 중 가장 낮아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전장연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학생회관이 보이는 길목 양쪽에서 20분간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들은 법이 정하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고 장애인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학교본부에 거듭 촉구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4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서울특별시 소재 종합대학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덕성여대의 장애인 고용률(0.61%)은 서울지역 종합대학 32곳 중 가장 낮았다. 덕성여대는 장애인 의무고용률(3.1%)을 준수하지 않아 4억 2천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납부했다.

서기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대학은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특정 비율 이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 이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데, 덕성여대의 장애인 고용률은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의 평균치마저 한참 밑도는 수준”이라 지적했다.

박경석 대표는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에게 ‘장애인 의무고용 준수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정문 앞 본관 건물을 찾았지만, 건물 내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이동이 불가능했다. 박 대표는 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수동휠체어째 들려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사진 복건우

- 엘리베이터 없는 덕성여대 본관… 휠체어 가로막는 ‘계단’

같은 시각 박 대표는 김 총장에게 ‘장애인 의무고용 준수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정문 앞 본관 건물을 찾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2층 총장실로 올라가지 못했다. 본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들이 “요구안을 대신 전달해드리겠다”고 하자, 박 대표는 “총장실 건물에 왜 엘리베이터가 없느냐”며 “이대로라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덕성여대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총장실에 올라갈 수가 없다. 저를 2층으로 올려주시면 직접 (요구안을) 전달하겠다”고 항의했다.

이는 장애인의 이동권 및 시설물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박 대표는 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수동휠체어째로 들려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박 대표는 ‘청소노동자 생활임금 보장’ ‘장애인 고용의무 준수를 위한 계획 발표’가 담긴 요구안을 비서실에 제출한 뒤 다음 달 10일까지 김 총장의 답변을 요구했다.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학교본부에는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백종권 덕성여대 사무처장은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이동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전달받은 요구안은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