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시위에도 장애인 이동권 요구 예산 2,000억 잘려 나가

국회 국토위, 장애인 이동권 예산 5,288억 요구했는데 3,130억 반영 저상버스도, 시외‧고속버스 휠체어 리프트도, 장콜 운전원도 부족해 예결위 심사 기다리며 전장연 “21일부터 삼각지역서 천막 농성”

2022-11-19     복건우 기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에서 2023년도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심의한 결과가 나왔다. 장애계는 내년도 이동권 예산으로 총 5,288억 원을 요구해왔으나, 일부만 반영돼 총 3,130억 원이 의결됐다. 지난 10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대부분이 반영된 것과 대조적이다.

장애인 이동권 예산은 크게 세 가지다. 저상버스 도입 보조, 시외이동권 보장, 그리고 특별교통수단(아래 장애인콜택시) 운영비 및 신규 도입 지원이다. 장애계는 해당 예산으로 각각 3,434억 원, 31억 원, 1,823억 원 편성을 국회에 요구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2,159억 원과 비교해보면 총 3,129억 원을 더 증액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국토위에서는 이 중 973억 원만 반영됐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21년의 외침에 대한 반쪽짜리 답변”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따라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오는 21일부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위)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을 제대로 보장하라며 삼각지역에서 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해 9월 서울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영등포 10번 계단버스를 막아섰다. 활동가들이 버스 위로 올려 놓은 수동휠체어 뒤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사진 비마이너DB

- 대·폐차되는 시내버스 7,613대 중 707대만 저상버스로 바꾸겠다? 

우리나라 시내버스 대부분은 휠체어 탄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계단버스’다. 승하차 통로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자는 탈 수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도입률은 30.6%로, 10대 중 7대가 여전히 계단버스에 머물러 있다. 비장애인은 길어야 10분이면 기다려 타는 버스를, 휠체어 탄 장애인은 못해도 3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에 반해 저상버스는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차체가 낮으며 휠체어 승강장치를 갖추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노약자, 임산부 등 모든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장애계는 전국의 모든 시내버스를 100% 저상버스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려면, 휠체어 탄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버스를 지체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근거해 2007년부터 5년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여기엔 전국 및 지역별 저상버스 도입 목표치가 담겨 있다. 앞선 3차 계획(2017~2021)에서는 2021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저상버스 목표 도입률은 지금껏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엔 목표치보다 총 4,153대의 저상버스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시내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발표한 버스통계편람에 따르면 차량 교체가 의무화되는 연식의 차량은 지난해 기준 총 7,613대에 달했다.

이에 장애계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에 따라 저상버스 7,613대 도입을 요구하는 예산안 편성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고작 707대만 수용했다. 이로 인해 정부 예산안 대비 289억 원 증액된 2,105억 원이 의결됐다. 장애계는 3,435억 원을 편성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지난 3월 활동가들이 충북 청주시 오송역 근처 버스환승센터 B1 버스 앞에 전단지를 붙여 놨다. 대전에서 세종을 거쳐 청주까지 오가는 B1 버스는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없는 계단버스다. 사진 하민지

- 시외이동권 예산, 장애계 30억 요구했지만 고작 10억 편성 

장애계는 이에 더해 휠체어 리프트 설비가 장착된 시외·고속버스 도입을 요구했다. 앞선 ‘저상버스 도입 목표치’와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는 시내 노선버스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장애계 요구안에 저상버스 확대와 별도로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25억 원 증액이 포함된 이유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달리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시외‧고속버스, 광역급행버스 등 광역교통시설에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버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처음으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 10대가 4개 노선(서울-강릉, 서울-당진, 서울-부산, 서울-전주)에 시범 도입됐는데, 이는 전체 고속버스 노선 169개 중 2.4% 비율에 그치는 수치다.

그 마저도 코로나19로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는 이유로 운행 횟수가 줄면서, 최근에는 1개 노선(서울-당진)에서 버스 2대가 겨우 운행을 지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외‧고속 저상버스 도입률은 20년째 사실상 0% 수준이다.

이에 장애계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 비율을 12%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계가 요구해 온 내년도 예산 30억 원에는 20개 노선의 시외‧고속버스 휠체어 리프트와 터미널 개선 비용이 포함된다. 그러나 국토위에서는 올해 예산에서 고작 5억 증액된 10억 원만 반영됐다.

세종시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사진 강혜민

- 장콜 한 대당 운전원 한 명만 반영… 1,823억 요구했는데 1,016억 의결

지하철도, 저상버스도, 시외 간 이동이 가능한 광역버스도 없는 지역은 어떨까. 이때 장애인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장애인콜택시다. 고정장치와 리프트 등이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대중교통의 대체재로 기능한다.

장애인콜택시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따라 법정 대수가 정해져 있다. 2019년 시행규칙이 개정돼 장애인 200명당 1대에서 150명당 1대로 법정 대수가 상향됐지만, 실제 차량 도입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장애인콜택시 보급률은 86%로, 법정 대수를 채우려면 664대가 더 필요하다.

법정 대수를 채우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차 한 대당 운전원 수가 한 명 안팎에 그쳐 오랜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24시간 운행에 3교대 근무를 전제하면, 현 수준의 인력으로는 운행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대에도 전체 차량의 3분의 1 이상이 운전원 없이 차고지에 세워져 있다.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려면 하루 이틀 전 예약해야 한다.

따라서 장애계는 장애인콜택시 신규 도입 보조를 위한 예산 148억 원과 함께 차 한 대당 운전원 두 명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예산 1,675억 원을 촉구했다. 하지만 국토위에서는 신규 도입 보조를 위한 예산은 반영되었으나, 운전원 인건비는 한 명만 반영된 868억 원이 의결됐다. 총 1,823억 원을 요구했는데 1,016억 원만 국회 예결위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사진 왼쪽)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에게 장애인 이동권 예산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영상 캡처

- 국토위, 장애계 요구안 일부만 수용… 전장연 21일 천막 농성 시작

지금까지 나온 장애인 이동권 예산 요구안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장애인도 원하는 시간에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갈 수 있도록 저상버스 도입 예산을 확대하고, 장애인도 명절에 고향을 찾을 수 있도록 시외‧고속버스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고, 그것마저 어렵다면 장애인콜택시를 제때 탈 수 있도록 운전원 수를 증원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계는 ‘박탈당한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라’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지하철 시위를 1년 가까이 지속해왔다. 

하지만 국회 국토위는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 증액 요구안을 일부만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14~16일 사흘간 열린 국회 국토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아래 예결소위)에서 국토부 예산안을 의결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5일 서울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끝내고 혜화역 승강장에 모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인권리예산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장애계는 다가오는 국회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 본심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토위 증액안이 예결위 심사에서 다시 삭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증액이 되더라도 예결위를 거친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는 장애인들이 예산심사 기간 내내 정부‧여당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장연은 국회의 예산 기조를 비판하며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박경석 대표는 “국회 상임위가 예선전이라면 예결위는 본선에 해당한다. 상임위에서 증액된 예산은 정부 동의가 있어야 확정된다. 장애인권리예산이 내년도 예산안에 확실하게 반영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투쟁에 나설 것”이라 말했다.

장애인들은 오는 21일부터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4호선 삼각지역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한다. 이들은 예결위 심사가 끝날 때까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에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을 함께 전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