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이 추모” 이덕인 유족, 진실화해위에 조사 촉구

장애인노점상, 이덕인 열사 27주기 27년 기다림 끝에 진실화해위 조사 시작 그러나 유족에겐 연락 없고, 조사 진행 상황도 알 수 없어 공대위 “진실화해위, 진상규명에 진정성 있나?” 유족, 오열하며 조사 촉구

2022-11-28     하민지 기자
이덕인 열사의 어머니 김정자 씨가 열사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이자 노점상인 이덕인 열사. 그가 스물아홉 나이에 공권력의 폭력으로 의문사를 당한 지 27년이 지났다. 장애계는 매년 11월에 추모제를 열어 열사의 넋을 기린다. 비가 오던 28일 오후 5시,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이덕인공대위)는 서울시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 앞에서 27번째 추모제를 열었다.

영정 속 열사는 언제나 스물아홉이다. 열사의 어머니 김정자 씨는 뽀얀 얼굴을 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오열했다. “우리 아들 이덕인이가 먹고살려고 그랬는데, 경찰이 갈가리 찢어놨어. 부검을 한다고 갈가리 찢어놨어. 경찰은 사람 죽이는 새끼들이야.”

김 씨는 경찰차 불빛을 보더니 고발하듯 고함쳤다. “경찰이 사람 죽였다! 경찰이 사람 죽였다! 내 아들 이덕인이를 갈가리 찢어놨다!” 김 씨는 다시 아들의 영정을 바라봤다. “여기 불(제사 때 피우는 향) 좀 켜주시오. 내 새끼를 경찰이 찢어놨어. 어떻게 사람을 찢어놔. 경찰이 갈가리 찢었다! 경찰이 갈가리 찢었다!” 김 씨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추모상을 내리치면서 울었다.

이덕인 열사의 영정. 사진 하민지

- 27년 기다림 끝에 국가 차원의 조사 시작… 열사 명예 회복될까

김 씨의 말처럼 이덕인 열사는 먹고살기 위해 노점을 운영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던 1995년 6월, 열사는 인천 아암도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노점을 운영하며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 인천노점상연합회 등에서 활동했다.

같은 해 11월 24일, 인천시와 연수구는 폭력과 비리로 악명 높은 용역업체 ‘무창’을 고용해 아암도 노점을 강제철거했다. 아암도노점상철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었던 열사는 노점단속과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11월 24일부터 망루농성을 시작했다.

25일, 열사는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28일, 열사는 숨진 채 발견됐다. 손목에는 밧줄이 엉켜 있었고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타살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찰 1500여 명이 열사가 안치된 인천 길병원 영안실 벽을 뚫고 난입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 갔다. 유족의 동의 없이 강제로 부검이 진행됐다. 김정자 씨가 “경찰이 아들을 갈가리 찢었다”며 울부짖은 이유다. 이후 발표된 사인은 익사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활동가들. 사진 하민지

열사 사망 후 유족은 27년간 1인 시위, 집회, 농성 등 안 해 본 게 없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은 번번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2기 진실화해위에 조사신청서를 제출했다. 진실화해위는 1년 2개월이 지난 올해 5월, 드디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조사 개시 후 유족, 신청인과의 소통 없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덕인공대위는 “진실화해위가 진상규명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김광석 전국노점상총연합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노점상·장애인 모여 “진상규명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

이날 추모제에서 노점상과 장애인은 진실화해위를 향해 열사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끝까지 투쟁하며 열사의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광석 전국노점상총연합 위원장은 “진상규명이 진정한 추모다. 진실화해위는 열사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명예를 회복하고 국고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7년 전, 그날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며 “불평등과 빈곤에 맞선 장애·빈민 민중이 이덕인 열사의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최영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은 “노점상은 도시의 상권을 먼저 살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상권을 살리고 나면 국가는 부자, 건물주의 편을 들며 노점상을 쫓아낸다. 현재 노점상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이제 더는 당하고만 있지 말자”며 “이 썩은 정권과 썩은 세상을 투쟁으로 바꿔내자. 그게 바로 이덕인 열사의 바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7세인 김솔 인천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이덕인 열사 사망 당시 10살이었다. 김 회장은 “당시에는 어려서 잘 몰랐다. 지금은 열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열사는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고 먹고살고 싶었던 것”이라며 “열사의 소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장애인권리예산이 보장되지 않아 노동권, 이동권 등 많은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열사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4일, 유족·공대위와 면담했다. 진화위는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가 끝나기 전 진정인(유족)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창조 박종필추모사업회 사무국장은 “내년 추모제는 열사의 명예가 회복된 상태에서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