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준 LH 사장 “동자동 민간개발 총대 메겠다”… 쪽방주민 ‘분노’
이한준 신임 LH 사장 “소유주가 원하면 민간개발 총대 메겠다” 쪽방주민 분노… “쪽방주민 목소리부터 들어라” 민간개발 되면 공공임대주택 1250호→156호 축소 소유주 이익은 10배 뻥튀기되는 부동산 투기 쪽방주민, 이한준 사장에게 면담 요구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이 2년째 일시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5일에 발표한 계획대로라면, 현재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구계획을 승인하고 토지 및 건물 소유주에 대한 보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내년부터 공공임대주택 공사가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공공개발은 발표만 됐고, 이후 아무것도 진척된 게 없다. 지구지정은 지난해까지 완료됐어야 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지구지정을 위한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조차 완료됐는지 불투명하다.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계획은 여전히 2021년 2월 5일에 머물러 있다.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는 공공개발이 발표된 후 즉각 반발하며 민간개발을 주장해 왔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소유주 측으로부터 민간개발 계획안을 받고, 보완 지시를 하며 공공개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도심복합사업 후보지의 토지소유자 동의율을 재조사해 동의율이 30% 미만인 사업장에 대해 후보지에서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즉, 공공개발에 찬성하는 소유주가 30% 미만이면 공공개발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14일 취임한 이한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신임 사장의 입장 또한 문제적이다. 이 사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 측이 주장하는 민간개발에 대해 “주민(소유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며 “주민들(소유주)이 원한다면 기꺼이 총대 메고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 사장을 강력 규탄했다. 이들은 5일 오전 10시, 서울시 용산구 LH수도권특별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개발은 쪽방주민을 내쫓는 일이다. 이 사장은 공공개발에 앞장서라”며 이 사장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 소유주는 ‘가짜 주민’… “진짜 주민인 쪽방주민 목소리 들어라”
현재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는 개발이 될 거란 이유로 쪽방주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건물을 유지·보수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쪽방주민은 “소유주의 이 같은 행태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공공개발 발표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고 증언한다. 이 때문에 동자동 쪽방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 최근 이사 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공공개발이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권리가 있음에도, 열악한 주거환경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다른 쪽방으로 이사 가거나 길거리에서 노숙하기를 택하는 것이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조금만 기다리면 깨끗한 집(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이사 가는 걸 말리지만 다들 살기 힘들다고 말하며 결국 동자동 쪽방을 떠나고 있다. 방이 50개인데 화장실이 1개뿐이다. 그사이 추운 날 연로한 어르신마저 차라리 쪽방 밖에서 살겠다며 길거리에 나와 계신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백 부위원장은 “나는 여기(동자동 쪽방)에서 10년 살았다. 공공개발 계획이 발표된 후 주민으로서 안 해 본 게 없다. 세종시 국토부 앞에도 찾아가고, 장관·서울시장·국회의원 등 안 만난 사람이 없다. 여기 LH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 사장도 그렇고 다들 너무하다. 우리(쪽방주민)는 힘이 너무 약하지만, 우리의 조그만 소리가 메아리쳐서 크게 들릴까 싶어 오늘도 나왔다. 어렵더라도 똘똘 뭉쳐서 공공개발이 시작되는 날까지 전부 투쟁하자”고 말했다.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는 이 사장을 강력 규탄했다. 정 이사는 “주민은 소유주가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다.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소유주 중 동자동에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소유주는 주민이 아니다. 쪽방에 사는 우리가 진짜 주민”이라며 “이 사장은 동자동에 살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주민이라 말하는 ‘가짜 주민(소유주)’이 아니라 ‘진짜 주민’인 우리(쪽방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총대는 ‘진짜 주민’의 안정된 주거권을 위한 공공개발을 위해서 메라”고 성토했다.
실제로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구역 소유주 중 동자동에 거주 중인 사람은 20%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호태 동자동사랑방 운영위원은 “이렇게 오래도록 말도 없이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나? 정부와 LH는 우리(쪽방주민)를 주민으로 여기기는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우리를 주민으로 여겼다면 우리의 말을 우선해서 들어야지, 왜 엉뚱하게 외지에 나가 있는 소유주 말을 먼저 듣나?”라며 “쪽방주민이 진짜 주민이다. 우리(쪽방주민)가 원하는 대로 공공개발을 시행하라”라고 요구했다.
김 운영위원은 “민간개발하면 여기 사는 쪽방주민은 다 쫓겨난다. 소유주는 아파트를 지어 돈 벌 궁리만 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부동산 투기꾼의 편을 들지 말고, 부자들이 아파트 세울 곳이 없도록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건설하라”라고 말했다.
- 민간개발하면 공공임대주택 수는 1/8로 줄고, 소유주 이익은 10배 뻥튀기
소유주는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소유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거라고 재차 주장해 왔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소유주가 투기 이익을 노리고 민간개발을 추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참여연대는 10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개발 이익과 민간개발 이익을 비교해 발표했다. 계산 결과, 민간개발을 진행하면 소유주 개발이익은 최대 10배로 확대되는 반면 공공임대주택 환수 규모는 공공개발에 비해 8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존 계획대로 공공이 개발할 경우 소유주 세대가 200호, 공공분양주택 960호, 공공임대주택 1250호가 건설된다. 참여연대는 이 중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제외한 1160호에서 총 2273억 원의 개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소유주는 세대당 1억 4198만 원, LH는 1471억 원의 개발이익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LH가 가져간 개발이익 1471억 원은 다시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입된다. 현재 공공임대주택 건설에는 세금이 투입되지 않는다. LH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저리로 융자 혹은 출자를 받은 돈과 공공분양주택 개발이익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 시민사회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LH가 공공분양주택을 더 비싼 값에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개발 시 건설될 공공임대주택 수는 156호로, 공공개발 1250호의 8분의 1밖에 안 된다. 현재 동자동 쪽방촌에는 1000여 세대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개발은 쪽방주민 1000여 명을 재정착하기는커녕 이들의 90%가 쫓겨나는 계획인 것이다.
반면 소유주가 얻는 개발이익은 10배로 뻥튀기된다. 공공임대주택 156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소유주 세대 200호, 일반분양주택 1194호로 총 1394호다. 참여연대는 1394호에서 개발이익 2757억 원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분양가 상한제(주택 분양가격을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를 적용하더라도 2112억 원이다. 소유주와 대기업 건설사는 세대당 최소 10억 5609만 원에서 최대 13억 7826만 원에 달하는 개발이익을 독식하게 된다.
이미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민간개발로는 저소득층인 쪽방주민이 공공임대주택에 절대 입주할 수 없다. 이 사장은 국민의 주거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국민인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소유주의 투기이익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고 한다. 소유주와 대기업 건설사에 혜택을 주겠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동자동 쪽방주민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소유주를 위해 총대를 메겠다는 이한준 사장은 소유주 대변자인가? 공공개발을 하루하루 애타게 기다리는 쪽방주민의 뒤통수를 망치로 내려친 것과 다름없다. 민간개발은 더 많은 개발이익을 위해 쪽방주민을 손쉽게 내쫓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우리는 그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라며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개발이익이 아닌 쪽방주민의 주거권이다. 공익실현이 제1의 목적이 돼야 한다. 이 사장은 공공의 책무를 다하고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에 앞장서라”라고 강조했다.
쪽방주민은 기자회견 후 이 사장에 대한 면담요구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