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눈에 띄면 안 돼요” 가난과 장애로 고립된 여성홈리스

아랫마을에서 열린 ‘여성홈리스 증언대회’ 여성홈리스 5명 차례로 생애사 증언‧대독 남성 위주 홈리스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 젠더 관점 반영한 홈리스 지원체계 요구

2022-12-23     복건우 기자
19일 오후 7시 여러 반빈곤운동 단체들과 홈리스 당사자가 모여 사는 공동체 공간 ‘아랫마을’에 열린 ‘여성홈리스 증언대회’ 발제를 맡은 홍수경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왼쪽 첫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노숙할 때 여자로서 불편한 게 많죠. 어디 안 보이는 데 숨어야 하고, 사람들 눈에 안 띄어야 하고… 어느 노숙인한테 들었는데 짐승들은 자기가 자는 곳을 안 가르쳐준대요. 나중에 자기한테 불리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어디서 자는지 아무한테도 안 알려줘요.” (여성홈리스 당사자 로즈마리 씨)

‘여성홈리스’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는 남성을 피해 만화방, PC방, 기도원, 요양병원 등에서 생을 보내는 여성홈리스가 여전히 많다. 이들은 복지정책에서 빠져 있거나, 통계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홈리스 문제는 줄곧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한 중고령 남성 가장의 이야기로 여겨져 왔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린 19일 오후 7시, 여성홈리스 5명이 서울시 용산구 아랫마을에 모였다. 이들은 ‘여성홈리스 증언대회’에서 질병과 장애, 가정폭력을 통과한 자신들의 생애를 직접 세상에 알렸다.

‘2022 홈리스 추모주간’에 진행된 이번 증언대회는 매년 겨울 꾸려지는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서 올해 신설한 ‘여성팀’ 주최로 열렸다. 이들은 “그동안 가시화되거나 설명되지 않았던 여성홈리스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젠더 관점을 반영한 여성홈리스 지원체계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첫 번째 증언자로 나선 여성홈리스 당사자 로즈마리(가명)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여성홈리스, 안전한 생활공간이 필요하다

홈리스는 주로 중고령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거리나 광장 같이 공개적인 장소에 머무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홈리스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여성홈리스는 찜질방, PC방처럼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여성홈리스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1만 4,404명) 가운데 여성은 23.2%(3,344명)로 5명 중 1명꼴이다. 그럼에도 여성홈리스를 위한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저도 시설 입소가 주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2017년 기준 전국의 여성 홈리스 자활·재활시설은 서울 7곳, 인천 2곳, 부산·대구·광주·경북 각각 1곳이다.

보호받을 곳이 없는 여성홈리스는 안전을 위해 남성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도 한다. 김영숙(가명‧46) 씨는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자지 않기 위해,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다른 남성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켜주는 ‘아는 삼촌’을 동네마다 대여섯 명씩 알아두고 있다. 남성과 친해지기를 택한 그의 생존 전략은 여성홈리스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로즈마리(가명‧66) 씨는 여러 시설을 전전하다 한 복지관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영등포역, 공덕역, 고속버스터미널을 돌아다니며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얻어먹거나 길 위에서 한뎃잠을 잤다. 그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어디를 가든 ‘주변에 여자가 있나’, ‘여기 나 혼자 있나’ 살피며 주위를 먼저 확인한다.

그는 “어디를 가도 여성홈리스는 자기뿐이다”고 말했다. 서울시립 노숙인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나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참좋은친구들’을 찾아가면 여자라는 이유로 타박을 맞거나 눈총을 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홈리스를 위한 안전한 공간으로 ‘분도이웃집’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요새 분도이웃집에 자주 가요. 여성홈리스만 올 수 있게 만든 공간인데, 거리에서 지낼 때 여성이 곁에 있으면 든든해요. 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먹고 자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로즈마리)

분도이웃집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지난해 9월 동자동에 개설한 여성홈리스 쉼터다. 거리노숙을 하거나 쪽방촌에 사는 여성홈리스가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 폭염과 한파를 피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와 빨래를 하고, 옷가지 등 필요한 물품을 챙길 수도 있다. 규제와 통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와 달리 이곳은 한 끼를 먹어도 집밥처럼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다.

두 번째 증언자로 나선 여성홈리스 당사자 사계절(가명)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와 가정폭력에 달라붙은 홈리스 생활

사계절(가명‧46) 씨는 어른들의 무시와 가정폭력을 피해 15살에 가출한 이후로 여성홈리스의 삶을 살았다. 두 번의 결혼 생활 끝에 세 아이를 낳으며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혼자서 감당했다.

사계절 씨에게는 세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집다운 집이 필요했다. 뇌전증 장애가 있는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부천역, 서소문 공원, 남대문 쪽방촌을 옮겨 다녔다. 그럼에도 그는 안정된 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용산2가동 반지하 단칸방에 살 때 위층 남자가 보일러 가스관을 두드리고 욕을 하며 사계절 씨 가족을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사계절 씨는 장애와 가난 때문에 결국 모든 양육권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현재 청파동의 한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유일한 바람은 아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내 집’을 갖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에 신청한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불안정한 곳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몸도 아프고 못난 엄마지만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무리 없는 형편이라도 숨 쉬고 잘 수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다시 데려와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사계절)

발달장애가 있는 김영숙 씨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9살에 가출했다. 그는 ‘불안정 주거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지난 40년간 사우나, 지인 집, 쪽방 등을 옮겨 다니며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생활을 모두 겪었다.

잦은 이사는 인간관계의 단절감을 키웠다. 그는 5년간 살던 쪽방을 떠나 고시원으로 옮겨가면서 “작별 인사를 하면 눈물이 나고 발이 안 떨어질 것 같다”며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조용한 이별’을 택했다.

김영숙 씨의 증언을 대독한 여름(가명) 홈리스뉴스 편집위원은 “불안정한 주거 환경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식,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영숙 님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고, 머무르고 싶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지낼 수 있도록 국가가 여성홈리스 지원체계를 탄탄하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여성홈리스 당사자 김영숙(가명) 씨가 여름(가명) 홈리스뉴스 편집위원의 대독을 듣고 있다. 사진 복건우

- 여성홈리스 지원은 생리대 정도가 전부

같은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홈리스는 거리에서 노숙하게 된 계기로 실직(21.3%), 질병 및 장애(17.0%), 가정폭력(15.2%)을 택했다. 실직(45.9%), 사업 실패(13.5%), 이혼 및 가족해체(11.0%)를 택한 남성홈리스와는 차이가 있다. 홍수경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질병과 장애, 가정폭력을 계기로 홈리스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요인은 여성이 홈리스가 되는 주된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성홈리스를 위한 법과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2012년 시행된 노숙인복지법에는 ‘여성홈리스’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성별 특성을 고려해 노숙인 등을 위한 지원사업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2019년 신설됐지만, 보건위생물품(생리대)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구체화된 내용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홈리스의 생존은 사실상 각자의 몫이다. 정부와 인권단체에서 여성홈리스 규모를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수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홍 활동가는 “여성홈리스를 가리는 장막을 걷어내려면 여성홈리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여성홈리스를 아우르는 포괄적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젠더 관점을 반영한 홈리스 복지 지원체계와 성별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