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과 거리에서 살다 간 432명을 기억해 주세요

열흘간의 ‘2022 홈리스 추모 주간’ 일정 마무리 올해 22번째인 추모제… 홈리스 사망자 432명 추모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기다리다 사망 코로나19 확진됐다고 쪽방서 쫓겨나기도… 홈리스들 “우리 이름을 기억해 달라”

2022-12-23     하민지 기자
2022 홈리스 추모제 현장. 추모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서울역 광장 계단에 앉아 있다. 계단 아래에는 하트 모양으로 놓인 초 수십 개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하민지

12일부터 22일까지, 열흘간의 ‘2022 홈리스 추모 주간’ 일정이 22일 오후 7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홈리스 추모제’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2022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기획단)은 ‘코로나 종식을 넘어, 홈리스 차별과 배제가 종식된 세계로!’를 올해 슬로건으로 정하고 △주거제공 우선 홈리스 정책 실행 △홈리스 차별 금지, 권리기반 정책 시행 △홈리스의 평등한 의료접근권 보장 △여성홈리스 존재 인정, 젠더 관점 기반 정책 시행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의 애도받을 권리, 애도할 권리 보장 등 다섯 가지 요구를 중심으로 12일간의 추모주간을 보냈다.

영하 15도 한파 속에서 진행된 홈리스 추모제에서는 올해 사망한 홈리스 사망자 432명을 추모하는 추모발언과 위령무, 연대공연 등이 이어졌다. 작년 집계 395명보다 37명 늘었다. 이는 기획단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숫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전수조사는 진행된 바 없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이 추모 합창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자동 쪽방주민 김정길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김 씨 뒤로 432명의 얼굴 없는 영정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쪽방과 거리에서 살다 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동자동 쪽방주민 김정길 씨는 22년간 매해 동짓날에 진행된 홈리스 추모제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동짓날이 돌아올 때마다 내년에는 제발 돌아가시는 분이 없길 기원한다. 그런데 올해엔 작년보다 더 많은 홈리스가 돌아가셨다. 동자동 쪽방촌은 저희가 파악한 것만 서른두 분”이라며 “무연고자 공영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시립승화원에 갈 때면 얼마나 허망한지 모른다. 슬프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애도했다.

김정길 씨는 특히 동자동 쪽방 이웃이자 친동생처럼 절친하게 지낸 아우 ‘관석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씨는 관석 씨를 향한 추도사를 읊고 동자동 쪽방촌에서 돌아가신 서른두 분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내가 최고 좋아하는 내 동생 관석이를 기억해 주십시오. 올해 2월 2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래 왼쪽 눈이 안 보였는데, 점점 몸이 안 좋아지더니 오른쪽마저 안 보이게 되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향년 52세로,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습니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이 되면 쥐 없고, 바퀴벌레도 없고, 따뜻한 방에서 살다 가면 좋았을 텐데 공공개발이 2년째 미뤄져서 너무 속상합니다. 답이 안 나옵니다. 저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텐데 얼른 공공개발 돼서 하룻밤이라도 좋은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관석이를 기억해 주세요. 쪽방촌에서 살다가는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김정길)

거리홈리스 박천석 씨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거리홈리스 박천석 씨도 동료 홈리스에 대한 추모를 이어갔다.

박 씨는 “65년생 신규식, 최근에 갑자기 죽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집안이라고 자랑했던 친구였다. 7남매를 낳은 어머니가 남편과 사별하고 어렵게 자신을 키웠다고 했다. 오는 설 명절에 어머니 찾아뵐 거라고 했는데 찾아뵙지도 못하고 갑자기 떠났다”며 “동자동 공공개발 소식을 듣고 깔끔한 집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쪽방도 하나 얻어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는 이어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하나씩 불러가며 추모했다.

“3번 출구 쪽 지하도에서 사는 김대성, 서울 최고 대학 나온 친구입니다. 동사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와서 후두암 말기로 떠난 사람, 길 건너 뽀뽀치킨 근처에서 폐지 주우며 살다가 뇌출혈로 떠난 사람…

이 생에 못다 한 걸 다음 생에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거리와 쪽방촌에 있는 홈리스 형제자매들. 아팠던 날, 기뻤던 날, 슬펐던 날, 서러웠던 날 모두 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기셔서 편히 쉬소서. 우리, 하늘에서는 행복하게 지냅시다.” (박천석)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가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코로나 걸렸다고 쪽방서 쫓겨나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강신환 씨를 추모했다. 돈의동 쪽방주민인 강 씨는 지난해, 쪽방촌을 휩쓸고 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일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

“강신환 어르신은 쪽방 건물 안쪽에 항상 멍하니 계셨습니다. 저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수급비 신청을 하신 후에는 살 길이 보인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지난해 11월, 어르신은 확진자란 이유로 쪽방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방에 전화해 봤지만 어르신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감염된 지 5일이 지나고 어르신은 갑자기 호흡이 약해지셨습니다. 응급실에 모시고 갔지만 이틀 후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강신환 어르신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가졌어야 할 집다운 집이 없어서 돌아가셨습니다. 누구의 생명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강신환 어르신을 끝까지 기억해 주세요.”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

서울역 실내 대합실을 행진하는 기획단. 현수막에 “고단한 삶이셨습니다. 2022 홈리스 추모제”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역의 홈리스 퇴거를 규탄하며 바닥에 누운 기획단. 사진 은석

기획단은 추모제를 마치고 서울역 실내 대합실을 행진했다. 이곳은 홈리스가 자주 머무르는 곳이지만, 자주 퇴거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획단은 대합실을 약 30분간 행진하고,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01년부터 시작한 홈리스 추모제는 올해로 22년째를 맞았다. 기획단은 올해 특별히 홈리스 추모제의 22년 역사를 기록한 누리집을 개설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을 기억을 추모하며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올려드립니다”는 애도와 함께 지난 1년간 목숨을 잃은 홈리스 432명의 이름을 나열했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 홈리스추모제 누리집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