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경찰 ‘최종 출석 통보’ 거부 “승강기 설치 계획 밝히면 출석”
전장연 “경찰서 편의시설 설치 계획 밝혀야 출석”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6개월 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 경찰 최후 통보에 박경석 “국가부터 법 지켜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의 최종 출석 통보를 거부했다.
전장연은 20일 오전 9시, 서울시 종로구 4호선 혜화역 5-4 승강장(동대문역 방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경찰청의 최종통첩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박 대표는 △서울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의 장애인편의시설 전수조사와 이행계획을 발표하고 △김 청장 이행계획에 대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예산 반영을 약속한다면, 3월에 경찰서에 자진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광호,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 윽박… 엘리베이터 설치 계획은 응답 無
지난해 6월 20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취임 뒤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장연 시위를 두고 “국민 발을 묶어서 의사를 관철하는 상황이다.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한 법질서 확립이 시대적 과제”라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전장연은 크게 반발했다. 당시 박 대표는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에는 관대한 채 우리를 흉악범으로 낙인찍는 김 청장에게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과받겠다”고 성토했다.
이후 서울지역 6개 경찰서(혜화, 종로, 용산, 남대문, 영등포, 수서)는 전장연 활동가들 앞으로 출석요구서를 매일 같이 발송했다. 이에 지난해 7월 14일 활동가들은 혜화경찰서 앞까지 갔지만 이내 출석을 거부했다. 혜화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들이 3층 조사실까지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같은 달 용산경찰서, 종로경찰서에서 차례로 기자회견을 열고 ‘출석 거부’를 밝혔다. 두 경찰서에도 장애인편의시설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서울시 내 31개 경찰서 편의시설 전수조사를 하라는 전장연 요구를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가 있는 남대문경찰서에서 지하철 시위 관련 사건을 병합해 조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 대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활동가들은 김 청장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출석할 것이라고 거듭 밝혀왔다. 지난해 8월 29일, 김 청장을 피고인으로 한 국민참여모의재판을 열면서 “김 청장이 모의재판에 참석하면 남대문서에 출석하겠다”고 밝혔지만 김 청장은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모의재판 결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벌금 3천만 원이 선고됐다. 전장연은 “벌금을 내거나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계획을 밝히면 출석하겠다”고 했지만 김 청장 답변은 없었다.
- 박경석 “국가는 왜 법 지키지 않나. 국가부터 지켜라”
전장연이 김 청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똑같다. 31개 경찰서의 장애인편의시설을 전수조사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을 준수하기 위한 이행계획을 밝혀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면 남대문서에 자진 출석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고 한 발언은 우리에겐 협박이었다. 우리는 법을 어겼다며 수많은 처벌을 받았다. 처벌을 피해 간 적도 없고 앞으로도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가는 법을 지키지 않나? 국가는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데 왜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나?”라고 성토했다.
또한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된 지 26년이 됐다. 공공기관인 서울경찰청은 이 법을 어겨왔다. 이제라도 ‘지구 끝까지 장애인등편의법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달라. 장애인은 26년을 관용의 마음으로 기다렸으니 더는 ‘정당한 편의시설’ 설치를 미루지 말고 이행계획을 밝혀라”라고 요구했다. 김 청장이 이행계획을 밝히고 추 장관이 3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행계획에 대한 예산 반영을 약속하면 3월에 남대문서로 자진 출석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당장 엘리베이터 다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걸 알고 있다. 예산도 들 것이고, 법률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걸 고려해서 계획만이라도 발표해 달라는 것”이라며 “김 청장은 지금까지 경찰서 장애인편의시설에 관심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그 의지를 보여 달라. 그러면 남대문서에 출석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박 대표 설명대로 장애인등편의법 6조에는 국가가 장애인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행령 별표 2에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시설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사, 파출소, 지구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같은 대상시설에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 설치는 의무”다.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위급상황에 장애인은 경찰서에 갈 수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사받을 때 급한 용무가 있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법에 없어도 해야 하는 게 국가의 의무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명시돼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많이 늦었다. 김 청장은 지금이라도 경찰서 내에 장애인편의시설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6개월 넘게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김 청장을 규탄했다. 권 대표는 “우리는 경찰에 편의시설 갖춰지면 자진 출석하겠다고 충분히 전달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서울경찰청은 무엇을 계획했는지, 예산은 짰는지 묻고 싶다. 공공기관이 (장애인 권리를) 먼저 지키고 책임지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남대문서는 지난 17일, 박 대표에게 최후로 출석을 통보하며 ‘20일까지 출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경찰이 박 대표를 체포하면 박 대표는 48시간 동안 경찰서에 구금돼 강제 조사를 받게 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체포영장 신청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를 제외한 모든 전장연 활동가 26명은 경찰 조사를 마쳤고, 이 중 24명은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됐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공무집행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재물손괴, 일반교통방해, 철도안전법 위반, 기차교통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2022년 7월 경찰서 장애인편의시설 점검 현황표’에 따르면 31개 경찰서 중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은 총 10곳이다. 점검표 상 14개 장애인편의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12곳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