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일기] 선전전 300일, 혐오하는 시민분들 안녕

2023년 3월 13일 300일 차 혜화역 선전전

2023-03-13     하민지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승강장 벽에 스티커가 떼어진 자국이 있다. 한 스티커 조각 귀퉁이에 “오세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오전 8시 2분, 일찍 온 사람들이 혜화역 승강장을 지키고 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박채달 작가, 황나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활동가가 먼저 와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8시 5분, 전장연의 박철균·정다운 활동가가 수레를 끌고 도착했다. 박철균이 박채달에게 인사를 건넨다. “내일 프랑스로 떠나시는 거예요?” 박채달이 맞다고 대답하자 박철균이 아쉬워한다.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가 300일 차 선전전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8분, 박철균의 사회로 선전전이 시작된다. 박철균이 말한다. “오늘은 지하철 선전전 300일이 되는 날입니다. 삼백! 삼백! 삼백!” 황나라가 박철균에게 환호를 보낸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의 휠체어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15분, 자서전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나의 이동권 이야기’ 출간을 앞둔 이규식이 첫 번째로 발언한다. 이규식이 발언하는 동안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이규식 앞을 천천히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러 간다. 이규식은 1999년, 혜화역에서 리프트를 타다 추락했다. 이규식은 다른 장애인과 함께 투쟁으로 혜화역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그 엘리베이터를 곧 타게 된다.

김선이 송파행복드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26분, 김선이 송파행복드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말한다. “지난한 투쟁 과정이지만 시민 모두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경찰분들도 같이 협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채달 작가가 선전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0분, 박채달이 발언하러 앞으로 나온다. 박채달은 내일(14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일주일간 매일 아침 선전전에 참여하면서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나의 투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젠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함께 싸울 것입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투쟁!”

황나라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환하게 웃으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3분, 황나라가 말한다. “저는 이렇게 발언하는 일은 잘 없고요, 보통 라이브(온라인 생중계) 하거나 음향 장비를 다룹니다. 현장에 있다 보면 무섭고 슬픈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함께 재밌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전장야협은 이번 달에 장애인평생교육법 국회 공청회를 여는 게 목표입니다. 모두 함께해 주세요.”

이정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38분, 이정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가 시를 읊는다. 전라남도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로 활동하는 사람이 쓴 시다.

“제목, 퇴근. 매일 매일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규칙적이고 소소한 활동들이 이어진다.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꼭 해내고 싶다. 오늘도 보람되게 퇴근하고 싶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 목에 리본을 걸어주고 있다. 사진 하민지

8시 40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러 나오는데 지하철 안내방송이 나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박경석이 말한다. “3월 23일까지 시위를 하지 않고 있는데도 안내 방송이 나오네요.”

박경석이 계속 발언한다. “오늘이 아침 지하철 선전전 300일이 되는 날이네요.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나올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됩니다. 일찍일찍 퇴근하시고 아침마다 여기 오세요. 그럼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서는 겁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선전전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이 앞으로의 일정을 공지한다. “내일이죠? 3월 14일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납니다. 이다음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면담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면담 성사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만약 총리가 (장애인권리예산을) 약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하철을) 탑니다. 욕을 또 열심히 먹겠죠. 욕먹어도 함께하실 거죠?” 그때 이규식의 휴대전화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삽입곡으로 된 벨소리가 들린다. ‘오징어게임’은 빈곤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경쟁하며 서로를 죽인다는 내용의 넷플릭스 드라마다.

박경석이 이어 말한다. “우리의 권리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이런 걸 미래의 권리라 합니다. 미래의 권리를 쟁취하는 길로 함께 갈까요?”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동그랗게 주먹을 쥐고 “네”라고 대답한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이 마저 공지한다. “3월 23일에 우리는 지하철 탑니다.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탈 거예요. 오후 2시예요. 미리미리 알려 드려요. 전장연 유튜브 ‘전장연과 달 보기 운동’ 코너에 박채달 작가님 인터뷰하기로 해서 오늘은 일찍 마무리합니다.”

8시 56분, 박철균이 페이스북 생중계 중인 카메라를 쳐다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 혐오하는 시민분들도 안녕!”

박명훈 다큐인 감독이 선전전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송파행복드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