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일기] 시설에 들어가 살래요?
2023년 3월 14일 301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들어가니 역에서 지하철 시위가 예정돼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헤드셋을 쓴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한다.
오전 7시 52분, 혜화역 승강장엔 이미 사람들이 7명이나 있다. 보안관과 경찰들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안전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걸어 나간다. 내리지 않고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곳 승강장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마치 정해져 있는 시간의 텔레비전을 보는 느낌이다. 문이 닫히면 전철은 떠난다. 다음 열차는 한성대입구역에 있다고 전광판이 알려준다. 도시 땅 밑의 아침은 매우 분주하다.
7시 59분, 선전전 물품이 담긴 수레와 앰프가 도착한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와 조은소리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는 앰프 자리에 앰프를 두고, 커다란 피켓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피켓의 자리는 사람들의 목과 손인 것처럼.
8시가 되니 다시 승강장에는 지하철 시위가 예정돼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조아라와 조은소리는 수레 옆에서 속삭인다. 조아라가 아무래도 10분 늦게 시작할 것 같으니 본인이 다녀오겠다고 한다. 무엇을 놓고 온 모양이다. 하지만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온다. 포기한 것 같다.
8시 6분,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아무래도 미리 정했던 사회자가 오지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앰프 옆으로 등장한다. “활기차게 시작해보겠는데요~ 센터가 어디 어디 왔나요?”라고 말하며, 단체 이름을 부르고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동대문가치이룸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가치이룸센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노들센터),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성동센터), 마을이신나는장애인야학에서 온 사람들이 손을 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곳의 이름이 불리면 손을 들었고, “와~”, “깔깔깔”하는 기분 좋은 소리도 함께 했다.
8시 9분, 이규식은 이윤재 가치이룸센터 활동가를 부른다. 재미있게 말하라는 당부도 전한다. 이윤재는 전장연 유튜브 채널에서 이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욕을 하지 말고 장애인이 왜 지하철에 있는지 들어달라고 당부한다. 이규식은 “성동센터 (발언) 누구 하실래요? 빨리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웃는다. 발언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지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규식은 빨리 방향을 튼다. “그럼, 노들센터!” 김민재 노들센터 활동가가 종이를 들고 앞으로 나온다. 책 낭독을 하기로 해서 준비해 왔다고 한다. 책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의 한 대목을 읽는다. “비장애인들에게 이동권이란 마치 공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공기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책 91쪽의 내용을 조금 더 읽어 내려간다.
연윤실 전장연 활동가가 도착하고, 조은소리와 함께 라이브 방송 준비를 한다. 박명훈 다큐인 영상활동가가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꺼내서 이규식을 촬영한다. 그 사이 한성희 성동센터 활동가는 장애인평생교육법이 반드시 꼭 제정돼야 함을 강조하며 발언한다.
8시 19분, 이규식이 질문을 던진다. “20대 때, 남성은 군대 다녀오시잖아요. 왜 가나요?” 갑자기 군대라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군대 다녀오신 분?” 여기저기, 보일 듯 말 듯 손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 나와보세요.” 승강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누군가 앞으로 나온다. “군대를 어떻게 가게 되었고, 몇 년 있었는지, 짧게.” 앞으로 나오라 해놓고 짧게 이야기하라는 이규식.
“가치이룸센터 허태간 입니다. 군대 제대하고 왔고, 그 이유로 나왔어요. 10년 전쯤 징병으로 나라에서 오라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2년 안 되는 동안 어딘지 모르는 강화도에 다녀왔어요. 좋은 점은 (평생) 전혀 모를 수도 있는 사람들과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나랑 맞지 않는 사람, 원치 않는 상황들도 많았습니다.”
이규식이 또 묻는다. “지금도 군대 가고 싶어요?” 허태간은 답한다. “그… 질문이 잘못된 것 같은데. 가고 싶지 않아요.” 단호하다. 이규식은 “네, 감사합니다”로 즉흥 인터뷰를 마친다. 정말 짧다.
그리고 다음 인터뷰를 진행한다.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가신 (경험이 있는) 분, 나와 줄래요?” 잠시 조용하다. 이규식이 마주 보고 있던 이수미 노들센터 권익옹호활동가에게 나와 달라고 한다. 이수미가 말한다. “나밖에 없다니!” 그리고 자기소개를 한다. 활동 내용이 상당히 많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준) 회원이자, 노들센터 권익옹호활동가이자, 노들장애인야학의 학생이다.
“40(살) 넘도록 집안에만 있었어요. 집이 2층이라 집에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은 시설뿐이었어요. 15년 시설에서 살았고, 개인 시설이었는데 그곳이 폐쇄되면서 나오게 됐어요.” 이규식이 또 감사하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연윤실이 “진짜 들어가요? 수미 님도 인생사가 있는데, 들어가요?”라고 질문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굉장한 속도감이다. 이쯤 되니 다음은 누구를 부를지 궁금하다.
8시 25분, “재가장애인 나오세요.” 이규식의 목소리가 거침없이 흐른다. 함께 있는 모두가 계속 웃는다. 박성준 가치이룸센터 활동가가 나왔다. “재가장애인이 된 지 2년, 가족과 함께 지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게 됐습니다. 이제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
이규식이 말한다. “시설에 들어가고 싶어요? 시설에 같이 갈래요?” 이런 황당한 질문에도 박성준은 열심히 답한다. “혼자 사는 거 힘듭니다. 그렇다고 남과 함께 시설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고, 먹고… 제 요즘 화두가 다이어트인데요. 1일 1식 하고 있는데, 그리고 1일 1주(酒)는 해야 해서 시설에서는 절대 살 수 없어요.” 1일 1주(酒)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규식이 또 묻는다. “그럼 군대 좀 가실래요?” 박성준은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이내 대답한다. 군대를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군대 간 조카를 보며 쉽지 않을 것임을 추측해 보는 박성준. 이규식이 다시 묻는다. “그럼, 시설에 가실래요?” 박성준이 단호하게 답한다. “시설도 싫습니다.”
이규식이 “군대에 꼭 가고 싶은데 못 가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다. 박성준은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군대도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 나라에서 가라고 하니 가죠. 시설도 원해서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사회가 날 떠밀어서 시설로 갑니다. 군대나, 시설이나… (비슷합니다) 나는 시설에 가고 싶지 않아요! 가라고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한다. “네, 감사합니다.” 이규식은 마무리하려고 할 때 항상 감사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박수와 웃음과 환호성을 보낸다.
8시 38분, 조아라가 앞으로 나온다. 오늘(14일) 있을 일정을 정성껏 알린다. 11시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 서울시가 탈시설장애인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강압 조사하는 걸 진정하는 내용이다. 조아라가 말하는데 앰프가 자꾸 쾅쾅 소리를 낸다. 앰프도 속이 터지나 보다.
조아라가 말한다. “개인정보를 적어 보내는데, 왜 최중증인지 이유를 적으라고 했대요.” “쾅쾅쾅” “현장 조사 나와서는 탈시설 할 때 본인이 선택했냐, 절차를 거쳤냐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쾅쾅쾅” 한쪽에서 재채기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시설에 갈 거면 다시 갈 건지, 지금 지원은 충분한지 물었대요.”
서울시에서 물었다는 질문들은 마치 ‘다시 시설에 들어가 사는 것은 어때요?’라는 질문들처럼 들린다. 장애인의 삶은 시설이 기본값이다. ‘비장애인도 시설을 기본값으로 두자!’라고 말하면 맞는 수식이 되는 것일까? 적어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지역사회가 기본값이 될 수 있게 하자!’라고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오후 2시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건물 앞에서 ‘영화숙, 재생원 등 수용감금복지시설에 대한 직권조사 촉구 피해생존자 기자회견’을 한다. 조아라가 한 분이 평생 거쳐온 시설 이름을 나열한다. “서울시립보호소, 형제복지원, (…) 서울마리아소년의집, 선감학원.” 너무 많아서 다 받아 적지 못했다. 앰프가 또 말썽이다. 조아라는 마이크 없이 외친다. 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그 삶에 같이 아파하고 분노하자고. 그리고 기자회견도 같이 가자고.
8시 49분, 이규식이 음악을 요청한다. 조은소리가 음악을 틀기 위해 앞으로 나온다. 갑자기 음악이 나온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이규식이 김광석의 목소리에 자신의 음성을 얹는다. “시설에 가는 날~” 김광석의 목소리가 조금 더 크다.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웃던 사람들이 잠시 고요해진다. 보안관도, 경찰들도 같이 노래를 듣는다. 이렇게 오늘의 선전전은 마치는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자 이규식이 앞으로 초대한다. 어제 선전전도 함께했다는 달연 씨. 자신이 읽은 책에서 본 문구를 소개한다. “우리가 살아온 경험들만 상상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는 힘을 길러야… 죄송해요. 말하는데 재능이 없어서…” 하지만 발언 말미에선 힘차게 ‘투쟁’을 외친다.
8시 57분, 이규식이 “다음 주에 제 책이 나옵니다. 꼭 봐주세요”라는 말로 오늘의 선전전을 마무리한다. 연윤실이 북콘서트 언제 하냐 묻고, 이규식이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다. 알뜰살뜰하게 1분 1초를 사용하는 혜화역 승강장 선전전이다. 사람들이 피켓을 걷는다. 연윤실이 “컴온! 컴온!”이라 외치고, 오늘 참여한 단체 이름을 부른다. 이곳에서 다들 사진 한 컷씩 찍고 가라며 “컴온! 컴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