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일기] ‘전장연 죽이기’에 팔랑이는 오세훈
2023년 3월 21일 306일 차 출근길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21일 오전 8시, 오늘은 1호선 시청역이다. 1호선 시청역 청량리 방면 승강장 10-4. 2호선으로 환승하는 곳과 연결되는 통로인 이곳이 오늘 기자회견 장소다.
뻥 뚫려 있다가 지하철에서 하차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는 현상이 3~4분마다 반복된다. 매일 혜화역에서 보던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도 전장연을 따라 시청역으로 옮겨 왔다. 그들은 ‘방패’를 들고 전장연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 ‘방패’의 본래 용도는 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를 지원하는 이동식 발판이다. 그런데 이렇게 들고 있으니 마치 경찰 기동대가 들고 있는 방패를 닮았다. 보안관은 전장연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부쩍 경찰 흉내를 많이 낸다. 그러나 이들에겐 사법권이 없다.
승강장에선 10여 명의 전장연 활동가들이 아담하게 기자회견을 한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이 기자회견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요즘 두더지게임을 하듯 전장연을 꽝꽝꽝 때리고 있다. 전장연은 이러한 행태에 대해 ‘전장연 죽이기 작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소속 센터들은 서울시와 자치구로부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 사업계획서와 정산보고서(2012~2022), 거주시설연계사업의 사업계획서 및 정산보고서(2019~2022),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지원금과 지원내용 일체(2011~2023)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 뒤에는 국민의힘이 있다. 이종성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이종성 의원실의 선임비서관 출신인 김종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13년 치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들은 전장연 산하 기관인 서울시협의회에 탈시설 관련 사업만 콕 집어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장애인자립생활주택사업과 거주시설연계사업이 대표적인 탈시설 관련 사업이다. 장애인자립생활주택은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자기 집을 마련할 때까지 2~5년가량 거주하는 주택이다. 센터는 이 주택을 서울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면서 자립생활주택에서 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거주시설연계사업은 센터들이 서울시 내 거주시설과 짝을 지어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생활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센터들은 시설에 찾아가 거주인들에게 자립생활에 관해 소개하고 자립의사가 있는 거주인의 탈시설을 지원한다.
이러한 자료 제출 요구와 함께 서울시는 최근 전장연 회원단체 명단을 요구하고 탈시설장애인 1천 명에 대한 전수조사,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 실사, 서울시 활동지원 추가지원 대상자 전원에 대한 일제조사를 강행하고 있다.
8시 11분,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승강장에 등장한다. 그의 손에는 기자회견 현수막이 들려 있다. 보안관의 ‘방패’가 열리면서 박경석이 무리 안으로 들어오고 동시에 현수막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지면서 ‘죽이기’라는 붉은 글자를 노출시킨다.
현수막을 쫙 펴니 “서울시 전장연 죽이기 규탄 기자회견” 글자가 세 가지 스프레이를 이용해 알록달록 쓰여 있다. 서울시와 전장연 사이엔 오세훈 서울시장 캐리커처가 붙어 있는데, 아침이라 피곤한지 오세훈 얼굴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져 꾸벅꾸벅 인사한다. 현수막 맨 밑에는 마치 누끼를 딴 것 같은 오세훈 얼굴 사진도 세 개 붙어 있다. 여러모로 아기자기한 현수막이다.
정다운이 계속 말한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애인에게 다시 시설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현수막에 붙은 오세훈 얼굴이 밉상스럽게 끄덕인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1월 3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월 2일 전장연과의 면담에서 지속해서 탈시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선명히 내비쳤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 또한 지속해서 “활동지원 예산은 탈시설 예산”이라고 왜곡하면서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가니 이들은 거주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모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다.
8시 21분,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말한다. “우리 센터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열여덟 분이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 전 너무 속상한 표정으로 출근했습니다. 바로 서울시에서 난데없이 이들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한 날입니다. 중증장애인이 그 몸으로 어떻게 시설에서 나왔는지, 시설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은지에 관해 물었다고 합니다. 시설이라는 단어조차 듣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그런 조사를 한 것입니다.”
문애린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된다. 그의 목소리 끝에 대여섯 개의 느낌표가 찍히는 듯하다. “여러분들은!!! 교육도 하지 말고!!! 이동도 하지 말고!!! 시설에서만 살아가라고 하면!!! 살아가겠습니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린다. 2호선으로 환승하려는 이들이 이곳을 한 번씩 스윽 훔쳐 보고 지나간다.
8시 31분,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말한다. 그는 어제 김종길 서울시의원을 만나 면담했다. “김종길 의원이 전장연이 탈시설을 주장해서 탈시설 예산을 들여다보려 했다고 합니다. 3년이면 너무 짧고, 5년이면…”
갑자기 시청역장의 목소리가 등장해 이형숙의 목소리를 덮는다. 역장이 ‘불법부착물’을 붙이는 이들에게 경고 방송을 한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현장을 다시 보니 활동가들이 바닥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직원 허락 없이 부착물을 부착할 경우, 철도안전법, 옥외광고물법, 경범죄처벌법 등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에 질세라 이형숙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렇게 탈시설이 궁금하고 예산이 궁금하면!! 탈시설 가이드라인 공청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김정길)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당탕탕. 갑자기 보안관들이 활동가들을 덮친다. 활동가의 손에 든 스티커를 뺏으려고 한 것이다. 어느새 문애린은 보안관들에게 둥그렇게 둘러싸서 고립됐다. 문애린이 움직이자 ‘방패’를 든 남성 보안관이 “으아아아악!!!” 매우 크게 소리 지르며 뒤로 나자빠질 듯 과하게 뒷걸음질 친다. 헐리우드 액션이다. 문애린은 그냥 지나갈 뿐이다. 그 사이 현수막은 내동댕이쳐져 있고 바닥에는 구겨진 스티커가 동글동글 굴러다닌다.
박경석이 상황을 정리한다. “불법스티커가 아닙니다. 서울시가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권리를 붙이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보장하지 않아서 장애인권리를 붙이고 있는 것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박경석의 말에 오세훈 얼굴이 팔랑팔랑 끄덕인다.
박경석이 이형숙에게 마이크를 다시 건네주고, 잠시 흥분했던 이형숙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언을 이어간다. 박경석의 손엔 다시 스티커가 쥐어진다. 그가 다시 벽에 스티커를 붙이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사 직원이 바로 확 떼어낸다. 박경석은 바닥에 스티커를 붙인다. 이번엔 오른쪽에 있던 보안관이 달려와 잽싸게 떼어내 손으로 구깃하고는 박경석을 향해 던진다. 이 행위가 두세 차례 반복된다. 박경석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진다. 박경석은 스티커를 떼어 바닥에 붙이고 보안관은 떼어낸다. 박경석은 스티커가 떼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느릿하게 스티커를 붙인다.
8시 46분,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말한다. “꽃 피는 봄이면 꽃구경 가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고 싶습니다.”
8시 48분, 박경석의 손에 스티커 대신 마이크가 쥐어진다.
“오늘 보시듯 서울교통공사는 보안관을 통해 우리를 매우 폭력적으로 막아서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법스티커라는 이유인데요, 불법스티커가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스티커입니다. 저들은 불법과 좀비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합니다. 이 현실을 잘 보십시오. 그런데 저들(보안관)하고 싸울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오세훈 서울시장님, 서울교통공사 사장님, 당신들이 약속 지키지 않고, 장애인들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은 것에 대해서 사과하십시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장연 죽이기가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3월 23일 이곳에 올 겁니다. 그때는 천 명이 올겁니다. 이곳에서 지하철을 탈 겁니다. 23일과 24일, 1박2일 동안 이곳에서 싸우겠습니다. 그 전에 오세훈 시장이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기를 촉구드립니다.”
8시 58분,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안관 뒤에 있던 환경미화원이 파란색 플라스틱 통을 들고 종종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스티커를 떼는 스크래퍼가 쥐어져 있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빠지고 환경미화원과 서울교통공사 직원 너덧 명이 바닥에 앉아 스티커를 떼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