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어도 네가 평등히 살길”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외침
지난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아 557명 삭발 올해도 4월 20일 도래했지만 변하지 않은 현실 발달장애인과 가족, 아직도 거리에서 외친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
지난해 4월 19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그날, 발달장애인과 가족 557명은 당시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삭발했다. 557명의 얼굴에서 눈물과 머리카락이 동시에 떨어졌다.
그들이 동시에 삭발하며 외친 것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다. 국가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촘촘히 구축해, 발달장애인이 자립생활 권리,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등을 보장받으며 지역사회에서 혼자서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1년이 지나 올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 도래했다. 삭발한 이들의 머리는 이미 곱슬곱슬하게 자라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아직도 거리에서 “내 자식을 절대 장애인거주시설에 보낼 수 없다. 발달장애인 전 생애주기 지원체계 구축하라”고 외치고 있다.
달라진 건 장소와 구호뿐이다. 지난해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외쳤다면 올해에는 대통령실 청사 근처 삼각지역에서 외쳤다. 또한 지난해, “내가 없어도 네가 평등히 살길 바란다”던 부모들은 올해에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도 네가 평등히 살아야 한다”고 외쳤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20일 오후 1시 30분,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었다. 2500여 명이 집결한 이번 결의대회는 22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 본대회 1부로 치러졌다.
-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오전 9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통합돌봄, 입원, 경조사 시 최대 일주일간 24시간 돌봄을 제공하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등의 지원 사업을 통해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은 24시간 돌봄에 조건이 붙었다. 보호자인 가족이 입원, 경조사 등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돌봄을 제공하지 못할 때만 최대 일주일까지 24시간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부모연대는 “윤석열 정권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강력 규탄했다.
정순경 부모연대 교육권위원회 위원장의 자녀는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최중증 중복장애인이다. 정 위원장은 “24시간 옆에서 돌보지 않으면 이 아이는 그대로 굶어 죽는다.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모든 일상생활을 옆에서 지원해야 한다”며 정부의 땜질식 정책을 비판했다.
김신애 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자녀 또한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와 난치성 뇌전증이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사회가 도대체 엄마에게 뭘 요구하는 것인가? 왜 부모가 모든 돌봄을 떠맡아야 하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라며 “자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끝까지 투쟁해서 지역사회 서비스를 만들어 내자”라고 강조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중증 발달장애인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지원체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내자. 내 자녀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만들자”며 “내가 없는 세상에서 자녀가 평등히 살길 바라지만, 내가 살아 있어도 자녀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투쟁하자. 그래서 장애인과 가족이 처참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독려했다.
- 부모연대 “‘탈시설’ 삭제한 정부, 무책임하고 야만적”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투쟁으로 지역사회 지원을 쟁취한 김미하 씨의 연대발언이 영상으로 송출됐다.
김 씨는 부모연대 경기지부 의왕지회 회원이다. 유방암 4기 시한부 선고를 받고, 중증 발달장애인인 두 자녀의 주거유지돌봄체계를 위해 경기도·의왕시와 싸워왔다. 항암치료와 병행한 투쟁 끝에 경기도로부터 체험홈과 24시간 공백 없는 돌봄, 경기도형 지원주택 모델 도입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김 씨는 자녀를 절대 장애인거주시설에 보낼 수 없어서 지방자치단체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같은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9일 발표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에서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부모연대는 “기본권을 박탈당한 채 평생을 형벌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존재, 한국 사회의 수치스러운 단면들을 현 정권은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기조다. 무책임하고 야만적”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현재 부모연대는 24시간 지원체계를 요구하는 화요집회를 34차례 전개했다. 지난 7일부터는 전국순회투쟁을 선포했다. 경상남도를 시작으로 전국에 걸쳐 아동기 조기개입부터 성인기 지역사회 주거지원까지, 발달장애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정책 요구를 하고 있다.
부모연대는 정부를 향해 △장애 영유아 조기개입 및 지원체계 구축 △차별 없는 교육, 모두가 함께하는 통합교육 보장 △발달장애인 자립과 주거권 보장 △발달장애인 전 생애주기 지원체계 구축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온전한 삶 보장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