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일기] 우아하게 죽고 싶은 사람들

2023년 4월 28일 334일 차 혜화역 선전전

2023-04-28     양유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혜화역 승강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김정하 활동가. 사진 양유진

오전 8시 3분, 혜화역 직원의 확성기에서 “삐루루룩, 삐룩삐룩” 소리가 난다.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 형사는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상임대표에게 “오늘은 스티커 안 붙이죠?”라는 질문을 하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멀리서 다른 형사와 대화를 나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한 손에 책을 들고, 하품을 이기지 못한다.

8시 6분, 어디선가 이학인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나타났고, 2분 후에는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선전전 물품이 담긴 수레를 끌고 온다. 박미주는 이규식 옆으로 곧장 앰프를 가져가 세팅하고, 화끈한 하울링이 퍼진다. 이학인은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고, 이정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사람들에게 피켓을 나누어 준다. 이규식이 마이크를 쥐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커다란 카메라도 등장하고,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도 도착했다. 이것이 모두 4분 만에 이루어진 일들.

박지호 활동가. 사진 양유진

8시 12분, 박지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노들센터)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발언한다.

“부끄럽지만 저는 저 스스로를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권리들을 나는 권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피했습니다. ‘중증장애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고 중증장애인일자리에 참여하며 박지호가 변했습니다.

전동휠체어 탄 저를 보고 어디 가냐고 물어봅니다. 직장에 간다고 하면 우리나라 참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 말이 나오면 저는 나라에서 알아서 일자리를 준 게 아니라 20년 동안 장애인들이 싸우고 요구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저도 노동 속에서 주변에 영향을 미쳐 세상을 변화할 수 있는 생산의 주체로 바뀌었습니다. 중증장애인을 생산의 주체로 만드는 공공일자리가 전국에 100만 개가 만들어지는 날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박지호)

문애린 소장 얼굴에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 양유진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이음센터) 소장 “발언 쩐다(잘한다)!”라는 말이 크게 울려 퍼진다. 박지호의 발언에 큰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이음센터에서 새로 활동을 시작한 신주희 활동가와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3년 동안 활동한 김현지 활동가도 마이크가 어색하지만 이야기를 나눈다.

김정하 활동가가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낭독 중이다. 사진 양유진

8시 20분, 이규식은 맞은편에 있는 사람 중 발언할 사람을 물색하다 마음을 정했는지 김정하를 부른다. 다음 ‘코너’로 이동한 것이다. 혜화역 선전전에는 책 낭독 시간이 있다. 김정하는 피곤이 담긴 하품을 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던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펼쳐 든다. “장애인의 죽음은 똥이라 시설에서 몇백 명이 죽어도 기사 한 줄 안 나는 건가? 왜 장애인의 죽음엔 침묵하는가!”

낭독을 마치고 김정하는 책에 담긴 내용을 발언으로 덧붙인다. “정부에 ‘등록된 통계상’으로 대구시립희망원에서 309명, 형제복지원에서 (12년 동안) 513명의 죽음이 있었고, 작년에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가슴띠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혀 질식사 할 때까지 휠체어에 매달려 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양쪽에 휠체어 이용자가 있다. 가운데에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양유진

8시 23분, 멀리서 수동휠체어를 탄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온다. 반대편에서는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옆 사람의 부축을 받는 한 노인이 지나간다. 잠시 후 이규식이 김정하에게 묻는다. “옛날에 탈시설 시도한 사람들, (지역사회로) 나올 때 (지역사회에) 아무것도 없는데 왜 나왔나요?” 김정하는 ‘꽃님 언니’ 이야기를 꺼낸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잘해주고 보호해 준다는 인터뷰를 했던 꽃님. 그런데 ‘당장’ 시설에서 나와야겠으니 ‘당장’ 만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발바닥 활동가들이 전라남도 영광까지 간 사연. 사실은 신분증도 시설에서 가지고 있고, 휴대전화도 마음대로 만들지 못했던 상황. 활동가들과 함께 만든 핸드폰이 시설에 알려져 원장이 추궁하며 휴대전화를 던져버린 것. 그리고 꽃님이 지역사회로 나오게 된 과정. 짧지만 그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렵다’는 말이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박지호 활동가 뒤에 “시설수용은 선택이 아니라 차별이다”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양유진

김정하는 이야기를 잇는다. “그때 활동지원제도, 없었습니다. 집(지원주택)도 없었어요. 노들센터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한 체험홈이 있었죠. (꽃님은 시설에서 나와) 거기에 갔고, 활동가들을 포함해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활동지원 24시간 시간표를 짰어요. 언니가 ‘활동보조 제도화’를 위해 삭발을 하고 무대 위에서 펑펑 울면서 ‘나도 살아야 되겠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정하는 크게 외쳤다.

“왜 나왔냐!”

“살고 싶어서. 정말 살고 싶어서.”

꽃님의 이야기는 비마이너 기사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관련 기사: 자립생활 10년 꽃님 씨, 자립생활 꽃씨 뿌릴 '꽃님 기금' 만들다)

선전전 현장. 열차 문이 열려 있다. 열차 내 시민이 선전전 현장을 쳐다보고 있다. 사진 양유진

꽃님의 이야기 마무리 부분, 김정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떨림과 단단함 사이에서 울컥함이 전해진다. 옆에 있는 이규식을 큰 카메라가 찍고 있다. 이규식은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다 나와 살려면 준비가 언제쯤 될지 묻고, 김정하가 “나오는 건 지금! 바로!”라고 외치니 누군가 “바로, 이 순간!” 이라고 받아친다.

“시설 장애인분들이 나와서 싸우고 나와서 살면서 바꿔나가지 않을까, 어차피 죽는데 시설에서 죽나! 나와서 죽나!”라고 이규식이 말하니, 사람들은 웃다가 웅성거린다. “나와서는 잘 살아야지~”라는 말도 들리지만, 문애린의 “죽더라도 밖에 나와서 죽고 싶다”라는 외침이 승강장의 웅성거림을 “옳소!!!”로 바꾼다.

김정하가 말한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80~90%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고, 다른 나라, 가까운 일본만 해도 90%가 본인 집에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내가 살던 지역사회에서 여생 잘 보내고, 내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을 마감합시다. 그게 우리의 꿈입니다.” 이규식이 “죽을 때 우아하게 죽어야지, 맞죠?”라고 하니,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아하게 죽자~!”라고 답한다.

박경석 대표가 열창 중이다. 사진 양유진

8시 46분, 박경석의 노래 공연 코너가 시작된다. 노래를 자주 했지만, 오늘(28일) 선전전의 ‘공식 코너’로 선언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폐막식 무대에서 어깨꿈밴드가 연주하고 부르게 될 노래가 시작됐다.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를 개사한 곡이다. 키를 낮추지 않고 가수 전인권 씨가 부르는 음으로 따라 부른다.

아침 9시는 유명한 가수들도 피하는 시간이 아닌가. 역시나 박경석은 처음부터 음 이탈로 시작하여, 모든 사람을 웃게 했다. 자신도 많이 웃긴지 계속 웃었지만, 신기하게 노래를 끊지 않고 계속 부른다. 저 멀리서 “아침부터~ 아침부터~!”라는 말도 들린다. 아마 이렇게 높고 힘든 곡을 아침부터 부르다니 놀랍다는 말처럼 들린다. 웃음은 한동안 끊이지 않았고, 박경석은 인상을 쓰며 노래한다. 음 이탈로 인한 분위기 때문인지, 가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9시 12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국무총리가 약자의눈(국회의원모임)에 조속히 답을 주겠다고 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 되는 ‘5월 10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취임 1년 기념 축하 행진을 할지, 불평등과 참사 그리고 차별의 문제를 아웃 할 수 있도록 아웃 행진을 할지. 기다려 봅시다”라는 박경석의 마무리 발언으로 오늘의 선전전은 마무리된다. 사실 마무리 노래 공연이 있었지만, 9시가 넘어 노래 한 곡이 생략됐다.

박경석 대표의 발 옆에 “격리와 배제, 거주시설 반대,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양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