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중증장애인 ‘권리생산’하랬더니 ‘권리철폐’ 중 / 김상희

[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생산’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최중증장애인 우선 고용 서울시, 올해 직무에서 ‘권익옹호’ 삭제하고 ‘불법 집회’로 몰아가

2023-06-13     김상희

- ‘권리를 생산’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올해 내가 활동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에서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다른 센터에서 진행되는 모습만 봤지, 이 일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몰랐던 나는 센터 활동가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알아나갔다.

사실 처음 이 사업에 선정됐을 때, 기쁨보다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고 혼자 투덜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나의 투덜댐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반성하게 됐다.

면접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활동지원사 없이는 스스로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운 최중증장애인이었다. 나 역시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이들도 노동시장이 확 뒤엎어지기 전에는 노동하기 어려운 몸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만난 그들은 당당해 보였다. 이미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참여했던 분들은 자신이 노동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활동을 해 왔고, 이 일자리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각자의 언어로 말했다.

면접을 진행하는 내가 오히려 면접을 보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나는 면접에서 만난 최중증발달장애인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를 면접보는 게 아니라 마치 그가 나를 면접보는 것처럼 입장이 역전됐다. 바로 이것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말하는 ‘권리 생산’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면접을 진행하는 사람을 도리어 긴장하게 만드는 면접을 통해 채용된 12명의 최중증장애인이 현재 노동을 하고 있다.

한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권리’가 무너지고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세 가지 직무로 나뉜다.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 활동이다. 내가 속해 있는 센터에서는 권익옹호 활동을 중심 방향으로 잡고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올해 서울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수행기관 협약체결을 알리는 공문에서 ‘권익옹호’ 직무를 ‘생활편의 및 권익개선’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하더니, 급기야 최근 들어선 권익옹호 활동을 ‘불법 집회‧시위’로 규정하면서 엄청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실 작년부터 시의원과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들로부터 오래돼서 찾을 수도 없는 센터 사업 자료까지 내놓으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며, 특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메일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나는 중증장애로 인해 손에 장애가 있어 오른손 한 손가락으로만 키보드 타이핑이 가능하다. A4 용지 한 장 작성하는데도 몇 시간 혹은 하루가 꼬박 걸리는 업무 속도 때문에 매일 야근해도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미 서울시에 정기적으로 보고했던 서류를 다시 작성해서 보내라는 자료 요청 메일이 쏟아지고 있으니, 이메일 울렁증이 생길 판이다. 센터 사업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궁금하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는 누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현장에 직접 와서 보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현재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압박은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앞서 썼듯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대부분 최중증장애인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수용시설에서, 가정에서 갇힌 채 살아온 사람들이다. 내가 가족으로부터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규정 받아왔듯이 그들도 나와 같이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치열하게 일상을 공유하고 활동하며 사회 안에서 존재의 역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게 현장에서 고민해서 만든 일자리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이 일자리의 노동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고 비장애중심사회에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로 읽힐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가 하는 활동(노동)이 어떠한 과학 기술 발전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투쟁’을 외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 사진 하민지

- 다양한 장애인 직무 개발? 그래서 더욱 필요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하지만 지금 서울시는 우리의 노동이 불법이라고 단정 짓는다. 권익옹호 활동을 권리중심 일자리 직무에서 제외하라고 하면서 캠페인 활동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5일 조선일보에는 “서울시는 집회 참여 외에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를 이달 중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발굴할 계획이다”라면서 “호스텔 객실 관리, 책 정리, 마트 물품 정리, 캠핑장 관리, 재래시장 안내, 홀몸 어르신 안부 확인, 문서 파기 등이 검토 중”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여기에 나온 업무 모두 신체 움직임이 필요한 노동이다. 추측건대, 이중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기사에 제시된 업무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러한 업무가 가능한 장애인이라면 애초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선발되지도 않았다. 기사에서 언급한 직무를 생각한 서울시 관계자는 인생에서 최중증장애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일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서울시가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업무를 장애인이 하기 위해 되레 권익옹호 활동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사에서 언급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파견될 곳이 필요한데 언어장애가 있고 전동휠체어를 타서 편의시설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낯선 환경에 불안감을 느끼는 최중증발달장애인에게 일할 공간을 내줄만한 사업장이 과연 현재 있기나 한가? 장애인 직원이 한 명도 없는 사업장에 찾아가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한 시간 한다고 한들 그곳이 중증장애인을 환영하며 채용하려고 할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결국 다른 공공일자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공공일자리는 사회시스템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면서 노동자의 노동은 가린다. 하지만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중증의 장애를 가진 존재가 이렇게 사회에 버젓이 살아 숨 쉬고 배제된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사회에 요구하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 질서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이 사회의 질서 안에 장애인은 없었다.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누군가 배제된 사회질서와 시스템에 대한 균열이 필요하다’고 권익옹호 활동(노동)을 통해 알리고 있는 것뿐이다.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이 자신도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상상하고 증명해 낼 수 있는 일자리이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권리’가 빠진 채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한 일자리로 변질하지 않도록 우리는 또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