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야생의 꿈, 세상의 끝에서 장애 정의를 꿈꾸다 ②

[기획연재]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2023-09-11     레아 락시미 피에프즈나-사마라시냐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이 이미지는 카카오브레인의 이미지 생성 AI ‘칼로2.0’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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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꿈꾸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기: 우리는 항상 서로를 발견해왔다

“단지 옳은 일이라는 이유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다른 장애인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장애인을 아시나요?” 한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물론 알죠. 말은 하지 않지만 바로 그가 나에게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예전에 토론토에 살 때, 우리 동네에서 그와 나의 집에만 경사로가 있었다.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이 닥치지 않은 가난한 동네였다. 지금의 장애 정의 운동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그의 집은 다인종, 성소수자, 빈민, 장애인들이 어울려 서로를 지지하고 작당모의하던 공간이었다. 그는 수년간 금요일 밤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치킨 파티를 열었다. 그는 나에게 항상 다른 미친 사람들도 피해 다닐 만큼 미친, 괴팍하고, 분노에 차 있고, 대하기 어려운 가장 인기 없는 장애인들을 중심에 두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커뮤니티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편안하게 느끼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비장애중심주의가 고립을 통해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 전화가 오기 몇 주 전, 나는 지역의 QTPOC(Queer and Trans People of Colour) 커뮤니티 센터에서 장애인들이 필요한 돌봄을 주고받는 상호 지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법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의 전반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급으로 돌봄 노동을 하는지, 아프고 장애가 있고 유색 인종인 사람들이 돌봄을 요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했다. 우리가 그 일을 공짜로 하도록 강요받아왔기 때문에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자책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지었다.

“좋아요. 그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과,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브레인스토밍해보세요.” 내가 말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방 안의 온도가 10도쯤 떨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죄송한데, 뭘 해야 할지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들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나는 퍼실리테이팅을 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들은 자신이 받은 돌봄은 늘 모욕적이었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상호 돌봄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장애인들이 서로를 위해 나선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동화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슬프고 분노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너무나 슬프고 무력했다. 이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어떻게, 많은 장애인에게 물건처럼 다루어지지 않고 돌봄을 받아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걸까? 사실 나 자신도 완전히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이끌어내야 했다. 당신이 푸드스탬프[미국에서 저소득층에 식비를 지원하기 위해 식품 구입용 바우처나 전자 카드를 지급하는 제도] 사무소에 줄 서 있을 때 담배를 건네준 사람은 없었나요? 아플 때 먹을 걸 갖다준 사람은요?

나 역시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장애 정의라는 개념이 소수의 상호교차적이고 급진적인 장애인들에 의해 발명된 이래 지난 15년간 이 영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생각하는 동시에, 그러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면 우리는 얼마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내가 운 좋게 경험할 수 있었던, 장애인들이 만들어낸 돌봄 사례들을 생각했다. 돌봄 콜렉티브, 집이나 장애인용 밴을 사기 위한 자금 모금 등. 비장애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지원받기 어려운 자원을 모으기 위해 우리 스스로 나섰던 사례들. 그리고 모금이나 조직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우리가 서로를 ‘바로잡으려’ 들지 않고 어울렸다는 점이다. 요양시설에 있는 친구를 방문해 보드게임을 하며 우정을 나눈 것이야말로 장애인들이 서로의 삶을 구한 방식이었다.

우리는 종종 필요 이상으로 눈에 띄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장애인들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하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어디에도 당신이 회비를 내고 가입할 수 있는 장애 정의 단체는 없다. 장애 정의는 두 사람의 장애인이 만나는 바로 그 장소에 존재한다. 부엌 식탁,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속삭이는 침대의 온열 매트 위 같은 곳에. 우리의 혁명적인 무명성(revolutionary obscurity)과 그 덕분에 가능한 수평적인 조직 방식은 우리의 취약성인 동시에 힘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숟가락, 몸과 마음, 커뮤니티로부터 관계를 조직해냄으로써, 장애 정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많은 재단은 장애 정의야말로 펀딩하기에 좋은 힙한 이슈임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돈을 사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돈이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영리 산업-재단이 운동에 투자한 돈이 결국 운동을 와해시키고 조직들을 대립시킨 사례가 많다. 가장 타협적이고 백인 중심적이며 고학력의 구성원이 많은 501(c)(3)[미국 세법상 분류 코드 중 하나로 종교, 자선, 과학, 학술, 문화, 문학, 교육 등 공공복리를 목표로 한 비영리단체들을 이른다. 이들 단체는 정치적 활동이 제한된다.] 조직에 돈이 몰리기도 한다. 나는 게릴라전을 공부한 급진적인 젊은 시절부터, 우리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적의 약한 곳을 공략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우리는 타협하거나 우리의 크립 정체성(cripness)을 희석하지 않아야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외부의 돈이 있든 없든, 이해를 받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쌓인 장애인의 앎으로 뭔가 멋진 일을 벌여보자.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울 때,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한 언어를 가지기 전부터도 서로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친구의 집에서, 경사로에서, 가난한 동네에서, 요양원과 교도소, 정신병원, 심지어 수용소에서조차 말이다. 나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서라도 우리가 서로를 찾아낼 것임을 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항상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발견하고는 응시하고 있다. 이 이미지는 카카오브레인의 이미지 생성 AI ‘칼로2.0’으로 제작했다. 

- 들불처럼, 더 야성적으로

나는 계속해서 자생적이고 급진적인 장애운동을 이야기해 왔고, 아마도 이런 것들이 다음의 과제가 될 것이다.

네트워크, 사람들, 콜렉티브 그리고 문화적 모임들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더 느슨하게 조직된 소통 체계를 원하게 될까? 재단이나 권력의 구조가 우리를 경쟁시킬 때 서로 연대해 대응하는 원칙을 마련할 수 있을까? 불가피하게 피해와 권력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할 수 있을까?

급진적인 장애인들, 특히 BIPOC(Black, Indigenous People of Color)[흑인, 유색 인종, 원주민 등 백인중심주의에 저항하는 정체성을 지닌 비백인 인구를 통칭한다.], 퀴어와 트랜스 등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창작하고 예술을 해나갈 것이다. 우리가 협업하기 위해 어떤 구조를 만들어야 할까?

소셜 미디어는 지난 10년 넘게 우리가 고립을 넘어 연결되기 위해 써온 거대한 도구였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가 점점 더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게시물 업로드와 노출을 방해하거나 계정을 차단하는 일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장애인도 죽지 않기를 원한다. 만약 백인 중심의 장애 연구와 인권 논의의 고루한 인종차별적 측면을 종식시킬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기존의 장애운동 진영은 우리 장애 정의 활동가들이 장애라는 상태(being disabled)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화가 나 있다.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고, 정책 업무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집(home)을 만드는 데에,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이상한 소모임과 행동, 프로젝트, 해시태그, 미디어 네트워크, 이야기, 경사로, 화학물질 과민증 툴킷을 대여하는 도서관, 주거와 성 관련 프로젝트 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우리가 기존의 자립생활센터와 장애 연구 프로그램들을 장악한다면, 혹은 이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립생활센터(Centers for Independent Living)가 아닌 ‘연립과 자립센터(Interdependence and Independence Center)’를 만든다면?

미국에서 BIPOC 인구가 다수가 되기까지는 25년이 남았다. BIPOC 중에서도 젊은 세대는 장애인으로 정체화하거나 장애를 자신들의 운동과 결합하는 것을 점점 덜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장애 정의 운동의 밝은 미래를 점치게 한다. 이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극단적인 젠트리피케이션과 해수면 상승 때문에 해안 도시에서 밀려나면, 우리는 교외와 황무지에 어떤 장애인 거주지와 커뮤니티를 지을 수 있을까? 한때 플로리다였던 섬, 러스트벨트와 원주민 보호구역에 우리가 짓게 될 크립 홈스페이스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그린 뉴딜 정책을 크립하게 만든다면(crip the Green New Deal) 어떻게 될까? 정책이 약속하는 그 모든 녹색 인프라와 일자리가 애초부터 장애 정의 원칙에 따라 설계된다면?

우리는 메디케이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지금의 돌봄 노동 구조는 너무나 저임금이고, 노동자와 이용자에게 모욕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콜렉티브 형태의 돌봄 구조를 확산시키려고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고립, 자신의 엉덩이를 친구가 아닌 타인이 닦아주기를 바라는 욕구, 친구나 사회적 자본의 부족, 혹은 아무리 조건이 갖추어졌다 해도 사람들이 지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꿈꾸는 콜렉티브 형태의 상호 지원 네트워크란 무엇일까? 자유롭고 정의롭고 문턱 없는 장애인 주도적 돌봄이 모두를 위한 인권이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만약 우리가 장애 정의 원칙에 기반한 전 사회적인 상호 지원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노동조합이 생산의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나키즘] 달나라 같은 곳을 상상한다. 주택, 일자리, 의류와 생필품이 모두에게 제공되는 사회 말이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돌봄에 접근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돌봄과 접근성에 대한 권리가 헌법에 포함된다면 어떨까? 연방정부, 시나 주 단위, 동네와 생태권역별로 적용되는 ‘돌봄 법’이 있다면 어떨까?

내 사랑하는 동지 스테이시 밀번은 주택 구입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 정의를 향한 꿈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고, 앞으로도 나는 그 꿈에 기대어 나갈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산불의 연기가 지구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5년 안에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도 우리가 총체적 난국을 뚫고 살아왔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항상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애도하고, 기도하고, 견디는 법.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저항을 시작하는 법.
서로를 찾아내고, 혼자 혹은 함께 집을 만드는 법.
슬픔과 분노로 길 한복판에 누워 교통을 막는 법.
장애인만의 방식으로 크립하게 바꾸는 법.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해내는 법.
기존 체제하에서 예상하지 못한 급진적인 일을 해내며 계속 나아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