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대중교통에서 존엄을 위해 싸우기 ②
[기획연재]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당장 길에서 그 엉덩이 치워!” 운전사가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버스가 다가오는데 서둘러 길을 건너고 있던 한 여자를 향해서였다. 버스는 급정거했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간신히 차를 피한 여자가 운전사를 노려봤다.
“그래서 당신 엉덩이가 길거리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운전사가 다시 소리치고는 우리를 향해 사과했다.
나는 민권 변호사로서 개인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운전사들이 괴팍하고, 짜증 나게 하고, 부적절하거나 불안하게 행동하더라도 가능한 한 액세스-어-라이드에는 제도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개별 운전사의 행동이 규정 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말이다. 많은 운전사들이 내가 제안한 시스템 개선안에 공개적으로 동의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가는 길에는 운전사가 하품을 하며 나에게 하루 종일 운전을 해서 피곤하다고 토로했다.
“법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까지 운전할 수 있나요?”
“열 시간이요.”
“오늘은 몇 시간이나 운전하셨는데요?”
“열다섯 시간이요.”
나는 대체로 운전사 개개인의 성격이나 습관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내 목숨을 쥐고 있는 낯선 사람과 왜 언쟁을 벌이겠는가?) 가끔 운전사와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그들이 의식하든 아니든, 운전사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내 외모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는 민감하게 느낀다. 나는 키가 150센티미터인데다 목발을 짚은 흑인 여성이다. 내가 입을 연 후 열여섯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어느 날 아침, 맨해튼의 금융 지구를 지나 내 직장으로 향하던 중에 운전사가 짜증을 냈다. 그는 이 길을 처음 오는 게 분명했다.
“맨해튼에서 운전하는 건 너무 싫어요.” 그가 말했다. “정장을 빼입고는 차도를 마구 건너다니. 아마 변호사들이겠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지도 않는 사기꾼들 같으니. 당신도 변호사 싫어하죠?”
“네, 어떨 때는요.” 내가 대답했다.
어떤 운전사들은 흑인 ‘소녀’가 길을 가르쳐주면 절대로 듣지 않는다.
“아가씨, 나도 내 일을 할 줄 알아요. 당신 목적지에 제대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내가 경로를 이야기해주자 방어적으로 쏘아붙인 남자 운전사도 있었다. 나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차 스피커에 블루투스로 연결한 채 너무나도 사적이고 긴 통화를 하는 수많은 운전사들을 견뎌냈다. 토크쇼나 드라마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봐요, 당신은 그냥 그와 헤어지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잖아요.” 나는 차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낯선 사람의 고민 상담에 끼어들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전화할게요, 승객이 있어서요.” 마침내 운전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런가 하면, 내게는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시끄러운 음악 방송을 틀었다가 백인이나 나이 많은 승객이 탈 때만 소리를 낮추는 운전사도 있다. 운행 중간에 아침을 먹기 위해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들른 운전사도 있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사주지 않았다.) 나는 이런 미세공격(microaggression)[특정 집단 및 개인을 향해 미묘하고 사소하게 행하는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을 의미하는 말로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체스터 피어스가 흑인이 겪는 모욕과 배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썼다. 최근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빈곤층 등 다양한 소외 집단을 향한 혐오와 차별 양상을 가리키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런 사건들은 더 큰 문제의 징후라고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 * *
우리는 브루클린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의 집으로 가는 동안 운전사는 도로며 허공, 다른 운전자들, 듣고 있는 모두를 향해 무작위적으로 욕을 해댔다.
“욕해서 죄송해요.” 그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몇 분 후, 승객 한 명이 내렸다. 우리 집은 거기서부터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곧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효율적인 경로에 대해 조용히 기뻐하고 있었다.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일까, 혹은 내가 열심히 문제 제기를 해서일까 생각하면서. 버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섰을 때 사위는 조용했고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헤드폰을 벗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짐을 챙겼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더니, 일어나 선언했다.
“오줌 싸야겠어요.” 그가 말했다. “맨해튼에서 당신을 태운 후부터 쭉 마려웠어요.” 나는 찾은 열쇠를 목에 걸면서 그가 왜 그런 정보를 공유하는지 의아해했다.
그는 스티로폼 재질의 일회용 컵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서 목발을 건네려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냥 이 컵에 쌀게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열린 문을 지나 통로 쪽 좌석에 앉았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 집 앞이었다. 그는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는 내가 내릴 수 있게 목발을 받아준 다음에 자기가 하려던 걸 해도 됐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버스에서 뛰어내려 오줌을 누려던 참이었나? 그랬다면, 그는 왜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그는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내 눈앞에서 오줌을 싸려고 했던 것이다. 로스쿨 동기 중 한 명이 최근에 자신의 백인 동료가 “깜둥이 새끼(N - word)”[흑인을 비하해 부르는 은어 ‘Nigger’를 가리키며 이는 수위가 높은 욕이기 때문에 언급이 불가피할 경우 앞 글자만 따서 ‘N-word’라고 바꿔 쓴다.]의 철자를 물어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동료가 그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는 데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뭐라고? 그런 단어의 철자가 왜 필요했다니?”
“모르겠어.”
“구글이나 사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야? 널 떠본 거 아냐?” 나는 화가 나서 물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
“대체 왜 하필이면 흑인 여성인 너한테 물어봐야 했대?”
“모르겠어. 너무 충격받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나는 알아야만 했다.
“철자를 알려줬지.” 그가 말했다.
친구는 즉시 자신의 대답을 후회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든 반격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뻔뻔해서 충격적이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 내 앞에서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 순간, 나는 어떻게도 반격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수백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이가 없었고 방어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한편으론, 그가 소변을 보는 것이 부적절하고 역겹긴 했지만 당장 내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민했다. 지금 당장 비명을 질러야 할까? 그게 적절할까, 아니면 불필요하게 소란을 피우는 것일까? 이웃 주민이 나와서 웬 소란이냐고 묻고 내가 그 남자가 오줌을 쌌다고 대답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애인은 다른 집단보다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낯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꺼내 소변을 볼 수 있는 남자라면 또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나는 이미 신체적으로 불리하다. 그가 뭔가 다른 시도를 할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다. 나는 맞서 싸우거나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존경성 정치’[소수 집단이나 개인에게 주류/다수자적 사회의 기준에 맞는 방식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소수자 스스로 그런 행동과 인정을 갈구하는 것도 포함해서 이른다.]가 대중적인 전문 용어가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내 인간성과 장애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게 하는 데 내 학위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유색 인종인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넘어서려면 너 자신이 두 배는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나는 내 삶에서 맞닥뜨리는 인종차별과 비장애중심주의 모두에 대처하기 위해 그렇게 해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싶었고, 고등 교육을 받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나는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로 살아온 2년간의 기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함정이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이 사회, 이 도시, 그리고 이 세상에서 흑인이자 여성, 장애인으로서 온갖 난관을 헤치며 살아야 한다. 운전사가 내 눈앞에서 소변을 보겠다고 결정한 순간, 내가 느낀 공포와 당황스러움, 충격과 불쾌함 사이에서 나는 내 의뢰인들이 마주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 힘이 없다면 자신의 권리(혹은 가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무슨 짓을 해도, 내 빛나는 아이비리그 법학 학위는 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해온 노력 따위는 그가 알 바 아닐 테니까.
나는 그가 그저 오줌만 싸고 있는 거라고 되뇌었다. 동시에, 그런 합리화로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게 분했다.
그냥 가방을 두고 도망갈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는 목발을 짚고 버스 계단을 내려갈 수조차 없다. 내가 난간을 붙잡는 동안 목발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은 운전사들이 그렇게 해줬다. 목발을 밖으로 던진 다음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가서 목발을 주워야 하나? 나는 내가 과민 반응을 하고 있는 건지, 도망치는 게 다칠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일인지 궁금했다. 집이 코앞인데도, 어디든 가려면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계산을 해야 한다는 데 좌절감이 들었다.
혹시 교통국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걸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누군가가 사무실에 앉아, 대중교통 활동가이자 개혁가 지망생이 처한 곤경을 비웃고 있는 걸까?
하지만 승객 앞에서 침착하게 소변을 볼 수 있는 사람을 공격하거나 그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그 장면을 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쾌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하루처럼 느껴진 1분이 지난 후, 그는 그 일을 마치고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걸 도와줬다. 그가 내 목발을 만지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목발의 아래쪽을 건넸다. 내가 잡는 손잡이 부분에 그의 손이 닿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지갑이나 도시락 가방도 들어줘야 할지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나는 지갑과 도시락 가방을 목과 어깨에 주렁주렁 건 채 말했다. “제가 할게요.”
그의 침착함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사람을 무시해야 그 앞에서 대놓고 소변을 볼 수 있는 것일까? 그 정도로 급했다면 왜 나를 태웠던 맨해튼 근처 스타벅스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다른 운전사들은 그렇게 하는데? 왜 버스에 우리 둘만 남았을 때까지 기다렸을까? 그가 눈앞에서 오줌을 싸기로 선택한 승객이 왜 하필 나였을까? 내가 백인이었어도 그렇게 했을까?
그는 최소한 내가 볼 수 없는 버스 뒤쪽 구석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오줌을 쌀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그가 우리 집 잔디밭에서 소변을 봤다면 덜 불쾌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러는 동안 내가 그와 한 공간에 있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그냥 운전석에서만 했어도, 내 기분이 조금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러면 소변을 보는 게 의도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비상 상황으로 여겨졌을 테니까. 만약 그랬다면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게 아니라,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그는 우리 집 문을 열어주겠다고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손을 씻고, 목발을 닦고, 교통국에 전화해 불만을 접수했다.
그리고 할머니와 삼촌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말도 안 돼.” 삼촌이 말했다. “넌 반드시 운전면허를 따야 해.”
“버스 안에 둘만 있었는데, 안 찍어놨어?” 할머니가 물었다.
“아뇨.”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저는 그걸 안 보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그럼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네.” 할머니가 말했다. “네 말뿐이잖아. 그 남자는 다르게 말할걸. 누가 그걸 믿겠어?”
모르겠어요. 나는 생각했다. 저 자신도 믿을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