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4시간 지원 필요한 와상장애인, 지원주택 입주 안 된다”
‘주거와 지원서비스를 함께’ 최중증장애인 탈시설 촉진해 온 지원주택 서울시, 최근 지원주택 입주 공고에서 ‘와상장애인 제외’ 장애계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정책” 인권위 진정
최근 서울시가 장애인지원주택 공고에서 ‘와상장애인 등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입주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계는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정책”이라며 16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를 진정했다.
서울시는 2018년 5월 ‘서울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2019년부터 장애인지원주택을 운영해 왔다. 지원주택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와 함께 주거를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기존에 주거만 제공하는 것과 달리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는 지원주택이 도입되면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부족한 중증장애인들도 지원주택에 입주해 독립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장애인지원주택은 전국에서 서울시가 가장 먼저 도입한 제도로, 탈시설이 불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온 최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데 필요한 모범적 제도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 들어 분위기는 바뀌었다. 오세훈 시장은 노골적으로 최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을 반대하고 있다. ‘제3차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23~2027)’도 1년 넘게 발표가 미뤄지고 있으며, 지원주택 도입 취지에 반하는 이번 서울시 공고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장애계는 지적한다. 문제의 조항은 서울복지포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가기)
발바닥행동은 “지원주택은 장애인거주시설을 벗어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인데, 입주 대상에서 중증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이들의 거주지 및 주거형태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거주시설 수용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중증장애인을 입주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로 인정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의 공고는 탈시설과 자립생활 권리를 명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도 위배된다. 협약 19조를 구체화한 일반논평 5호에서는 “필요한 지원서비스의 종류와 양을 포함하여 어떤 이유로든 장애인의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 “서울시 공고는 ‘와상장애인은 서울시 행정지원을 받을 자격 없다’는 뜻”
서대문구의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이원재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해 서울시의 공고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입주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한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와상장애인’이다. 이 씨는 한평생 시설에서 살다가 2022년 7월에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이 씨는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최중증장애인들도 저처럼 자립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며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지금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시설에 있을 때는 소화가 잘 안 돼 먹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 소화가 잘 안되어 응급실 가는 일은 없어졌다. 내 이름으로 계약한 집(지원주택)에서 살며 활동지원사와 같이 동네 마트에 가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내 돈으로 살 수 있게 됐다. 휴대폰을 사고 인터넷 쇼핑도 하며, 얼마 전엔 목욕침대도 샀다. 한 달에 한 번 장애인 주치의가 집으로 와서 건강을 챙겨 준다. 저에게 맞춰 하나하나 보살펴 주는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지금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발달장애자녀를 둔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 또한 분노했다. 백 활동가는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 지원을 서울시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원주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 들어서 후퇴하고 있다. 갈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박새롬 한국작업치료사협회 서울지부 이사는 “누구는 탈시설이 가능하고, 누구는 가능하지 않다는 서울시의 판단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라면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고 하는데 그 현장은 대체 어떤 현장인가. 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내용이다”라면서 규탄했다.
김재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는 “이번 서울시의 공고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와상장애인은 서울시의 행정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 이유는 이들을 지원할 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면서 “이러한 지원주택 선정기준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들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인 중에는 고령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와상중증장애인도 있다. 발바닥행동은 해당 진정인은 “자립을 위해 서울시 장애인지원주택에 입주하고 싶지만 중증장애인을 배제하는 조항 때문에 지원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