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시위, 서울역에 80분간 고립

59차 출근길 지하철행동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 공사와 경찰, 취재기자 양팔 제압하며 현장에서 끌어내 “퇴거당하지 않고 81분간 지켜낸 현장, 우리의 힘”

2024-02-29     강혜민 기자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절단기를 들이대면서 폭력적으로 진압하자, 이형숙 서울장차연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지르고 있다. 그의 목에는 사다리와 쇠사슬이 걸려 있다. 공사와 경찰은 기자의 취재를 막으며 강압적으로 끌어냈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행동’이 예고된 29일 오전 8시, 1호선 서울역 승강장. 5~6번 칸이 있는 승강장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비장애인 활동가 백여 명이 주황색 몸피씨를 입고 알록달록한 피켓을 머리 위로 힘껏 치켜들고 있다. 이날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등에 맞서 장애인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제5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했다.

연대 온 시민들의 힘으로 강제퇴거는 당하지 않았으나, 백여 명의 참가자들은 80여 분간 승강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고립되었다. 취재진의 접근을 막을 뿐만 아니라 물리력을 이용해 기자를 강제로 끌어내는 취재 방해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 공사와 경찰, 취재기자 양팔 제압하며 현장에서 끌어내

집회 참가자들이 모인 장소를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두세 겹으로 단단하게 에워쌌다. 지하철행동에 참여하러 온 사람도, 취재진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로막혔다. 기자가 “취재하러 왔다”고 밝혀도 공사와 경찰은 못 들은 척하며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돌고 돌아 틈새로 겨우 들어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비장애인은 휠체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틈으로 발을 내디뎌 겨우 움직일 수 있다. 반대편에서 공사와 경찰의 진압으로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나도 이동할 수가 없으니 취재를 할 수 없다.

경찰이 기자회견 현장을 두세 겹으로 에워쌌다. 취재진의 접근도 가로막았다. 사진 강혜민
제59차 출근길 지하철행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연대단체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휠체어 탄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장애인이 이동하며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현장에서도 장애인은 이동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이크를 이용해 외치는 것만이 가능하지만, 공사와 경찰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와 엠프를 매번 빼앗아 갔다. 다니주누 전장연 활동가는 “2021년 처음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승강장이 혼잡하지 않았다. 지금 공사는 감금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날도 취재 방해는 극심했다. 오전 8시 15분경, 이형숙 서울장차연 대표가 지하철에서 하차하면서 자기 목에 감고 있던 쇠사슬을 지하철 손잡이에 걸려고 하자, 갑자기 공사와 경찰이 절단기를 들고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비마이너 기자가 사진 촬영을 하려고 다가가자 공사는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고, 기자의 양팔을 제압한 채 백팩을 뒤에서 잡아당기며 3미터가량 끌고 갔다. 기자가 “취재 방해”라고 항의했지만 공사와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않은 채 현장 진입을 계속 막아섰다. 장대 끝에 매달린 경찰의 시커먼 채증카메라만이 CCTV처럼 일제히 현장을 찍고 있었다. 열 대가 넘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를 막아서고 있다. 공사가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원래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안전한 탑승을 지원하기 위해 제작된 발판이다. 사진 강혜민

- “퇴거당하지 않고 81분간 지켜낸 현장, 우리의 힘”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은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장애인도 인간임을 선언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경찰은 왜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소박한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가”라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평화적 시위에 대한 어떠한 폭력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당국에 경고한다”고 엄중히 말했다.

박지호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AAC(보완대체의사소통)를 이용해 발언했다. 박 활동가는 “우리는 2년 넘게 출근길 지하철행동을 하며 매일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공사의 폭력은 더욱 심해졌고 매일 우리는 불법 퇴거당한다”면서 “공사는 법을 내세우며 불법 퇴거시키는데, 그 법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명호 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폭력을 썼나, 고성방가를 했나”라고 규탄했다. 그는 “우리의 요구는 늘 하나다. 자유롭게 이동하고 안전하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거다”라면서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우리가 정말 범법자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정 소장이 말하는 중간 중간에도 명랑한 알람음과 함께 지하철 역사엔 반복해서 강제퇴거를 지시하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승강장 상선 6-1, 6-2, 6-3이 매우 혼잡하오니 옆 칸으로 이동해 승하차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역내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경찰이 방패를 이용해 이형숙 서울장차연 대표를 막아서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형숙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잠겨 있었다. “열차 타고 오는데 어떤 시민이 제게 ‘장애인이니깐 이렇게 다녀라’고 했습니다. 비장애인보다 이동 시간이 두세 배 더 걸리고, 광역이동은 할 수 없는 장애인의 현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며 노동하지 못한 채 거주시설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사회. 동지들, 이게 당연한가요? 정부가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9시 21분,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빽빽한 공사 직원들 틈을 비집고 나타나 겨우 마이크를 쥐었다. “오늘 우리는 퇴거 당하지 않고 1시간 21분을 지켜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시간은 우리의 권리이고 목소리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힘이고, 역사입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당당하게 이동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갑시다.”

9시 28분경, 박 대표의 발언을 끝으로 집회가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이 몸피씨를 벗고, 피켓을 내린 후 각자의 일터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공사와 경찰은 비켜서지 않았다. 또다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안전한 지하철 이동을 위해 발판을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말에 박진용 공사 고객안전지원센터 부장이 소리쳤다. “역사 밖으로 나가라고 했잖아요! (지하철 타고 싶으면) 그럼 집회를 하지 말았어야지!”

그 시간 동안 지하철은 단 한 번도 정시성을 잃지 않은 채 매끄럽게 지나갔다. 승하차를 위해 잠시 멈춰 선 열차 안 시민들은 열차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곧 문이 닫히고 열차가 떠났다. 그 지하철에 장애인은 없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는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이 서 있다. 사진 강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