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의 부끄러움 / 전근배

[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2024-02-29     전근배
삭발 중인 김동예 소장의 모습.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 시민분이 내리면서 저희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시더군요.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요. 네. 그러지 않아도 저는 이미 지옥에서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도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아내야만 하는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동예 ( 「[투쟁결의문]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마이너, 2022. 6. 15.)

신중했어야 했다. 특히 사진을 더 잘 골랐어야 했다. “웃는 사진은 없냐?”고 선배가 물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졸업식에 못 와서 미안한 마음에 학교에 현수막이라도 하나 걸어주려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화장실에서 비마이너 기사를 보다가 손가락 끝에 딸려 올라오는 광고를 접하곤 머리를 뜯었다. ‘장애학 박사학위 취득’, ‘대구의 자랑’이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따라왔다. 서울시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전원 해고 사태에 항의하는 활동가들이 지하철 승강장에서 온몸에 쇠사슬을 감았다는 기사를 읽던 참이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사람들이 글을 쓰는 동기 4가지를 설명했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낱말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열정, 진실을 향한 역사적 충동, 타인과 사회를 향한 정치적 목적. 그럼 나는 왜 글만 써도 될동말동한 처지에 굳이 학위를 받고자 했을까. 때때로 비슷한 질문을 해오던 사람들에게 무슨 답을 했던 것 같은데, 정작 학위를 받고 보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거나 스스로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한 채 내뱉은 허영이었던가.

사실 나는 ‘김동예’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절함이 지긋지긋했고 그 사나움이 때로는 무서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증발하듯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1년이 흐르고 10년이 흘러도 흡족할 만큼의 비는커녕 마음이 쩍쩍 가물어갔다. 나는 다행히 지옥 깊숙이 있지 않았지만 불행히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어정쩡했다. 이윽고 결혼을 하고 식구가 생기자 갈라진 마음의 틈 사이로 막연한 조바심과 불안이 싹 텄다. ‘명분 있게’ 도망갈 궁리를 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조한진 교수님이 그즈음 대구대학교에 장애학과를 개설했다. 연옥을 찾았다.

하지만 대학원은 내게 죄를 정화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통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장애학은 천국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지옥에 관한 학문이었다. 장애학 연구들은 대부분 천국을 약속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지식을 생산하기보다, 지옥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연옥의 지식과 대결하고자 애썼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천국을 상상해 왔고, 연옥이라는 경로를 창조하여 그것을 ‘문명’이라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화의 원인과 과정, 몸과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장애학 연구는 오히려 천국을 꿈꾸며 연옥을 만들어 내는 나와 같은 어정쩡한 사람들의 지식과 믿음이야말로 지옥의 출처는 아닌지 심문했다.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하던 2022년 4월 11일, 전근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돌이켜보면 나는 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할 위협을 느낀 적이 없었고, 시골이라 조금 멀긴 했지만 그래도 집 근처의 학교를 다니며 큰일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형편이 어렵긴 했지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고, 학교생활과 수업을 하며 한 번도 화장실이나 교재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자유로운 문명사회의 동료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대학원도 그랬다. 내겐 하루 종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도 괜찮은 체력이랄 게 있었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힘이 빠지지 않는 손가락 근육이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움직여 이동에 드는 시간과 필요한 장소를 선택해 관리할 수 있었고, 통계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데 누군가의 지원을 요구하거나 필요 이상의 힘을 들일 일이 없었다. 주변 동료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으며, 나의 정체가 알려지거나 거부될까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어느 하나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지금 나의 삶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조건들이 되었다.

그것이 자연의 결과물인지 인위의 결과물인지조차 감각하기 힘들어 당연하다고 치부되는 이 세계의 많은 부분이 지옥에서 왔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는 누군가의 부자유를 통해서 구축되었고, 지금 세계에서 내가 느끼는 부자유는 그 너머에 있는 누군가의 자유를 담보하고 있었다. 연옥의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가 말한 ‘인간을 불구화하는 전문가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교묘했고, 그들에 의해 지옥은 ‘병동화’되었다. 엄밀히 말해 지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발판 삼으려 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연옥은 지옥을 등진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었다. 천국에 당도하기 위해 지옥의 사람들을 때마다 호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창출한 장소였다. 아무리 장애학이 ‘장애인’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장애화’에 관한 학문이라 하더라도, 국내 대학원에서 배출한 첫 장애학 박사가 ‘비장애인’이라는 점은 연옥에 사는 사람들이 구축해 온 그간의 문명과 지식 체계가 만든 일종의 승리다. 그리고 그것에 기대어 내가 얻은 부끄러운 위안이다. 나의 학위는 지옥의 사람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연옥의 믿음을 공고히 할 일원에게 부여되는 자격증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한국 사회의 장애화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증명서인 것이다.

또 하나의 죄를 얻게 된 나는 온전히 나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지옥을 서성거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전의 어정쩡함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장애학을 접한 6년의 과정이 새삼 지옥의 감각을 일깨워주었고 학위의 부끄러움을 부단히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