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도우’를 아십니까 / 최한별
[칼럼] 최한별의 못다 한 이야기
최근 국제 인권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씨도우’가 화두다. “그 단체에서는 씨도우 준비하세요?” “요즘 씨도우 분위기는 어떻대요?” “이번 씨도우 정말 중요할 텐데, 투쟁입니다!” 장안의 화제 씨도우, 대체 뭘까?
‘씨도우’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영문명의 두문자 약어다. 한국은 이 협약에 1984년 가입했고, 올해 5월 9차 심의를 앞두고 있다. 여성 의제는 다양한 인권단체에서 다루고 있는 만큼, 많은 단체들이 심의 대응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열심히 준비 중이다.
올해는 유엔 인권기구 심의가 풍년이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시작으로, 7월에는 고문방지협약 본 심의, 9월에는 사회권규약 사전 심의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의 인권 상황이 올 한해만 무려 세 차례나 유엔 인권 기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 유엔 인권조약, CRPD 외에도 여덟 개 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유엔 인권조약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일 것이다. 유엔에는 장애인권리협약 외에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이주노동자권리협약’, ‘강제실종방지협약’ 등 여덟 개의 인권조약이 더 있다. 한국은 아직 이주노동자권리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강제실종방지협약에는 2023년 1월에 가입했다.
유엔 인권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조약 이행 현황에 대한 심의를 받는데, 심의는 해당 의제에서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받은 전 세계의 인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약별 위원회에서 진행한다. 조약 기구마다 다르지만, 통상 1년에 2차례 심의를 진행한다. 조약마다 적어도 100개 이상의 가입국이 있다 보니, 한 국가에 대한 심의는 최소 5년, 길면 10년이 넘어서야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들으면 심의가 굉장히 간소한 절차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한 번의 심의에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투입된다.
심의를 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해당 국가의 조약 이행 현황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사전 심의(pre-session) 기간 동안 당사국 정부가 조약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궁금한 점을 정리한 ‘쟁점 목록(List of Issues)’을 정부에 발송한다. 정부는 이 쟁점 목록에 답변하는 형태로 이행 현황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본 심의(session) 기간 동안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기반하여 당사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추가 질문을 하고, 이렇게 확인한 현황에 대해 긍정적 평가, 우려, 권고 등을 담은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를 제시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위원회와 당사국 정부 외에도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한국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나 시민단체들은 위원회가 쟁점 목록이나 최종 견해를 작성할 때, 정부가 제공하지 않으려 하는 정보나 인권침해 사실들을 별도 보고서로 제출할 수 있다. 또한 정부 보고서를 검토하여 사실과 다르거나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즉, 한 번의 심의를 위해 위원회는 물론 정부, 국가인권기구, 시민사회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수년에 걸쳐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코앞으로 다가온 ‘씨도우’ 심의가 단연 화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2024년 유엔 인권조약기구 심의, 주요 장애 쟁점 톺아보기
2023년에는 여성차별철폐협약 사전 심의와 자유권규약 본 심의가 있었고, 그 전해인 2022년에는 장애인권리협약 본 심의가 있었다. 장애 의제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긴 하지만, 장애가 범분야(cross-cutting) 의제인 만큼 다양한 인권조약에서 꾸준히 질문과 권고가 나오고 있다. 2022년 9월에 발표된 장애인권리위원회의 한국 정부에 대한 2, 3차 최종 견해는 한국의 다양한 장애인권 의제를 다루고 있고, 그중에서도 특히 장애여성과 탈시설-자립생활 문제에 대한 긴급한 조치를 요청했다. 지난해 진행된 자유권위원회 심의에서도 장애인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장애인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과도한 탄압을 우려하며, 경찰 등 공권력 집행기관이 이러한 권리에 대한 인권 교육을 받는 등 시민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올해 예정된 세 개 조약의 심의에서도 장애인 권리가 중요한 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내용이 있을지, 핵심 쟁점은 무엇이 될지 미리 살펴보자.
① 여성차별철폐협약(5월)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지난 2023년 2월 사전 심의를 진행했다. 이 사전 심의를 통해 채택된 쟁점 목록에는 장애여성을 특정한 부분도 있었다. 위원회는 특히 장애여성과 소녀가 젠더 기반 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나가지 못하고 쉼터가 거주시설화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들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지침, 예산 배정 계획을 질문했다. 그리고 올해 본 심의에서 이 쟁점에 대한 심의가 다시 이뤄지고, 위원회의 구체적인 권고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 최종 견해와 더불어 한국 사회 내 장애여성의 권리를 위한 의미 있는 권고가 나올 수 있도록 장애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② 고문방지협약(7월)
고문방지협약 제1조는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도 고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고문방지협약 일반논평 1호는 당사국이 “아동, 노인, 정신장애인,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문과 학대를 금지, 예방, 구제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15문단).
실제로 지난 2021년에 고문방지위원회는 슬로바키아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창살 침대(cage bed)’ 사용이나 강제 투약이 고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거주시설 등 다양한 복지시설 내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 고문방지협약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권고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문방지협약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고문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이다. 고문방지협약 일반논평 제3호는 바로 이 배·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2015년 고문방지위원회는 뉴질랜드에 대한 6차 최종 견해에서, ‘레이크 앨리스 병원’에서 일어난 가혹행위(ill-treatment)를 빠르게 조사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구제와 책임자 처벌을 권고했다. 레이크 앨리스 병원은 장애인, 특히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감금과 강제치료, 학대, 폭력 행위가 만연했던 곳으로, 마치 한국의 형제복지원같이 수용시설의 폭력성을 대표하는 곳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시설 수용 생존자 배·보상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등 관련 논의가 시작되었고,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수용시설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배·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배·보상 및 회복을 위한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한 만큼, 이러한 사실을 잘 알리고 국제 기준에 따른 해석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③ 사회권규약(사전 심의, 9월)
장애인권 의제의 상당 부분이 사회권이므로, 사회권규약 심의를 위한 쟁점 목록이 작성되는 사전 심의부터 잘 챙겨야 한다. 이동권, 탈시설-자립생활, 교육권, 노동권, 문화예술 향유권, 생명 및 건강권 등을 두루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5호는 장애인 역시 사회권의 담지자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보장할 당사국의 의무와 구체적 지침을 담고 있다. 사회권규약은 무려 1966년에 만들어졌고 한국은 1990년에 가입했다. 조약 채택이 반세기가 훌쩍 넘었고, 한국이 가입한 지도 30년 넘게 지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생활할 권리를, 가족들에게 죽임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권리를 매일 아침 지하철 승강장에서 외치고 있다. 이번 사회권규약 사전 심의에 이러한 상황을 잘 전달하여, 한국 사회의 현실에 부합하는 구체적 쟁점 목록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2024년 2월 현재 상황에 기반해 있으며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심의 전에 더욱 다양한 의제가 제시될 것이다. 이 의제들을 얼마나 폭넓게, 그리고 심도 있게 유엔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는 시민사회의 역동에 달려있다. 쟁점 목록을 잘 도출하고 권고를 잘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 권고를 잘 이행하도록 하는 것 역시 시민들의 역할일 것이다. 권고를 받은 후 실천적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다면 5년 후, 10년 후 동일한 권고를 다시 받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토양에서 권고를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다음 심의를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씨도우’를 비롯한 유엔 인권규약의 심의 과정, 낯설고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나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사안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권리가 빠르게 후퇴하는 듯한 깜깜한 시간일수록, 더욱 준엄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살이 거셀수록 닻을 더 단단히 내려야만 배가 떠내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닻에 더 많은 힘이 실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기대해 본다.
* 필자 소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국내외 장애계를 연결하는 단단한 다리가 되고 싶어 한국장애포럼(Korean Disability Forum, KD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계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며 못다 한 말을 여기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