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에서 현수막 펼쳤다 해고된 생태학자 / 손가영

[‘기후 반란’ 과학자들 ②] 동료들의 동참 호소하는 청년과학자 로즈 “보고서만 쓰는 과학계 방법은 실패”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의지다”

2024-04-01     손가영

[편집자 주]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 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이 운동에 결합하는 과학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후 재앙을 당장 막아야 한다며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벌인다. 도로와 공항을 점거하고, 정부 건물에 붉은 페인트를 뿌리고, 화석연료 기업의 벽을 과학 논문으로 도배한다.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정의 단체들이 늘 해온 일이나, 과학자들도 적극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일견 과격하게 보이는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유기고가 손가영 씨가 흰 가운을 입고 거리로 뛰어든 ‘과학자반란’ 구성원 8명을 지난 2월 한 달간 인터뷰했다. 이 내용을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생태학자 로즈 아브라모프(Rose Abramoff, 36세)는 2023년 1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oratory)에서 해고됐다. 내규 위반이 이유였다. 출장 중 개인행동으로 정부의 공적 자원을 남용하고 연구소의 명예 등과 관련한 행동강령도 어겼다는 것이다.

- “실험실 밖으로 나와 거리로”

로즈의 개인행동은 무대에 올라 20초 동안 “실험실 밖으로 나와 거리로(OUT OF THE LABS & INTO THE STREETS)”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친 것이었다. 장소는 미국지구물리연맹(American Geophysical Union, 아래 AGU)의 정기 가을 학술대회장. 매년 100여 개국 이상에서 2만 5,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세계적 규모의 학술대회다. AGU는 미국 내 지질·대기·해양·천문·수문학 등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 6만여 명이 가입된 연합 학회다.

2022년 12월 15일, AGU 2022 정기 가을학술대회가 열리던 중 피터 칼무스와 로즈 아브라모프가 무대에 올라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Rose Abramoff

로즈는 “더 많은 과학자들이, 특히 우리 모두에게 기후가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를 아는 기후과학자들이 더 행동에 나서길” 바랐다. 과학적 연구가 드러내 주는 심각성에 비해 과학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래서 본 대회에서 행사 소개가 끝나고 첫 번째 강연이 준비되던 짧은 막간의 시간에 또 다른 과학자 활동가 피터 칼무스(Peter Kalmus)와 같이 무대로 달려 나갔다.

“우리 과학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끔찍합니다. 모든 게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우리는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요. 이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터)

“제발, 제발, 제발 행동할 방법을 찾읍시다.” (로즈)

두 사람은 말을 끝내자마자 현수막을 빼앗겼고 직원들의 제지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AGU는 그 가을 학술대회에서 두 사람의 참가 자격을 박탈했고, 향후 발표가 예정된 이들의 발표문도 삭제했다. 학술대회장에 다시 돌아오면 그땐 체포한다는 경고도 전했다. AGU는 두 사람의 고용주, 오크리지국립연구소와 나사(NASA)에도 직접 항의했다.

그리고 2주 후 로즈는 해고됐다. 로즈는 기후정의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첫 번째 과학자반란 활동가로 기록됐다. “AGU는 신진과학자, 권한이 적은 연구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위축시키는 나쁜 선례를 낳았다. 과학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인터뷰가 당시 기사에 실렸다.

로즈가 거리 시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William Dickson(@stills.will)

- 패션쇼장 찾아가 “기후위기 책임 부자들 세금 내라!”

로즈는 산림생태학자다. 2015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금까지 미국과 프랑스 등의 다양한 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로닌 연구소(Ronin Institute) 연구원으로 일한다. 그는 “식물과 토양에 초점을 맞춰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가 육상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고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해고된 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체포된 횟수만 7번이다. 그가 처음 시민불복종 행동을 시작한 곳은 백악관이다. 2022년 4월, 백악관 울타리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바이든 행정부에 “지금 당장 기후 비상상태를 선포하라”고 요구하며 과학자반란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1월엔 “슈퍼리치 전용기 폐지”를 말하기 위해 샬럿 더글라스 공항의 개인 전용기 터미널을 봉쇄하다 체포됐다.

2022년 11월 샬럿 더글러스 공항 전용기 터미널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통로를 막은 로즈. 그의 오른편 현수막에는 ‘개인 전용기 폐지(BAN PRIVATE JETS)’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William Dickson(@stills.will)

2023년 3월에는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며 JP모건 체이스은행 앞을 점거했다. 5월엔 뉴욕 ‘멧 갈라’를 봉쇄해 “기후위기를 초래한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라”고 외쳤다. 멧 갈라는 매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자선행사로, 입장료만 5만 달러(약 6,500만 원)가 넘는 부자들의 행사다. 로즈는 메사추세츠주 정부의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중단하라며 주 의회를 점거했고,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미국 마운틴밸리 송유관 건설 현장에 찾아가 송유관에 직접 몸을 묶기도 했다.

-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묻자…

“내 일은 단지 세상의 종말을 조용히 기록하는 것만이 될 수는 없습니다.” (2024년 2월 21일, 『네이처』 인터뷰)

그가 기후위기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각성하게 된 때는 2019년이다. 그때 로즈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동료 평가(peer review)하고 있었다. 생태학이란 학문 특성상 로즈의 일은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로즈는 기후위기가 지구 생태계와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예의 바른 과학자였다. 나는 알래스카 우트치아그빅(Utqiagvik)의 녹고 있는 영구 동토층에 조용히 서서 얼마나 많은 온실 기체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지를 측정했다. […] 동료들만이 내 논문을 읽었는데, 여기엔 어떤 가시적인 효과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다가올 기후변화의 재앙을 직접 봤음에도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들이 기후 비상사태에 대해 계속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 과학 기관들이 정책 입안자, 정부 관료, 언론 및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탄소 배출이 계속 증가하고 기후가 계속 뜨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1월 10일, 로즈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중)

그래서 로즈의 결론은 “이것으론 안 된다”였다. “불충분하다. 과학계는 수십 년 동안 충실한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다.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다. 정치적·경제적 의지다.” 로즈가 ‘예의 바른’ 과학자에서 행동하는 과학자로 변해 간 이유다.

바이든 정부를 향해 화석연료 기반 산업 체제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는 기후정의 단체들의 시위 모습. 과학자반란 활동가들도 함께 했다. 사진 William Dickson(@stills.will)

- “과학이 객관이라는 말은 허구죠”

“과학의 장에 편향과 편견이 없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오히려 과학자의 연구 내용은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에 의해 선택되며, 일반적으로 지정학적 목표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달에 가기로 한 미국과 러시아의 선택은 순수한 발견이 아니라 지정학적 지배력을 위한 경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연구의 대부분은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 내 요점은 우리가 무엇을 연구할지, 어떻게 연구할지, 누구를 고용할지,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등 이러한 주제 중 어느 것도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로즈)

로즈는 행동하는 과학자를 향해 ‘객관성을 잃었다’고 비난하는 말이 되레 객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비판엔 정말 할 말이 많다”며 “먼저, 우리는 기후위기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인데, 우리가 비상사태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대체 어느 누가 지금을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과학자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의견을 갖고 있지 않은 척하는 것은 나이브하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자 투표도 하는 시민으로, 모두 이 사회의 이해관계자”라는 것이다. “과학자 누구나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과학계의 방법론은 작동하는데, 그건 우리가 상호 비판적인 동료 평가를 실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은 가시적 효과를 위해 항상 흰 실험복을 입고 집회와 시위에 나선다. 사진은 전용기 폐지 캠페인을 하고 있는 로즈(가운데)와 동료 활동가들의 모습. 사진 William Dickson(@stills.will)

로즈는 더 나아가 연구 대상과 연구자, 생태계와 지구과학자,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 사고하는 서구 산업사회 중심의 과학도 비판했다. 그는 “이런 원자화된 세계관에선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우리의 연구 질문도 (환경 파괴에) 취약한 생태계 및 이에 의존하는 공동체들의 요구와 관련성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중립주의’가 팽배한 자신의 업계를 향해 말했다.

“내 자신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연구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지 말라고 요구하는 중립주의에서 어떤 이점도 보지 못합니다.” (로즈)

로즈는 2년 전 강제 퇴장을 당했던 AGU 가을 학술대회에 지난해 12월엔 무사히 참석했다. 학술대회가 열린 곳은 로즈가 거주하는 보스턴에서 4,060km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최대 탄소 배출원 중 하나인 비행기를 가능한 한 타지 않는 로즈는 80시간 동안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갔다. 로즈는 올해도 “미래 세대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료 과학자들과 활동가들을 더 많이 조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필자 소개

손가영 8년간 언론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기상과 기후 공부를 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고 좀 더 나은 기록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rockyrkdu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