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 61세, 66세, 55세… ‘복직 투쟁’ 삭발하는 초로의 중증장애인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노동자 4인, 삭발 투쟁 오세훈 시장, 사업 폐지로 중증장애인 400명 일자리 잃어
염색한 머리카락을 거둬내니 새하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색의 대비는 또렷했다. 뿌리는 새하얗고, 그 아래는 붉다. 시설에서 나온 후, 원하는 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였다. 시설에 있을 때는 허용되지 않던 행위였다. 염색한 머리카락이 바리캉에 의해 조심스레 밀려 나간다. 색을 벗겨내니 하얗고 검은 머리카락만이 짧게 남았다.
초로의 중증장애인들은 생애 처음으로 노동자가 됐다가 이제는 해고노동자가 되어 복직투쟁으로 삭발을 한다.
이영애(1966년 11월 5일), 이수미(1962년 7월 4일), 구용호(1957년 9월 5일), 김탄진(1968년 5월 25일).
나이를 셈해보자면, 57세, 61세, 66세, 55세다.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온 이들은 한평생 집 혹은 시설에 갇혀 살았다. 중증장애인이니 갇혀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시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와서 ‘장애인도 인간이다.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배움은 존재를 흔들었다.
2020년 7월, 서울시에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생겼다.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그림과 춤(문화예술)으로, 또 어떤 이는 권익옹호활동(집회 등)으로, 또 다른 이는 장애인권강사가 되어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하며 협약을 소개했다. 협약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집과 시설에서 한 평생 갇혀 살았던 이들이 자기 삶을 꺼내 이야기할 때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은 힘있게 살아났다. 자본의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노동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생산력이 없다’며 밀쳐진 이들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가치를 생산하는’ 일을 해냈다. ‘이것도 노동’이었다. 이윤을 추구 하지 않는, 공공성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만이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을 없앴다. 중증장애인 400명이 해고됐다. 이영애, 이수미, 구용호, 김탄진은 해고노동자가 됐다. 57년 동안 어머니랑 같이 살던 이영애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돈을 모아 자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용호는 은행 적금을 붓고 있었다. 해고는 미래를 뒤흔들었다.
삭발하는 동안 다른 해고노동자들이 그 뒤에서 피켓을 들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권리중심일자리 노동자 해고를 철회하라.” 작년에 탈시설장애인상을 받은 박만순은 입술을 앙다물고 잘려 나가는 동료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그도 해고노동자였다. 노들야학에서 그들과 함께 공부하는 또 다른 이는 손수건으로 눈물과 땀에 범벅진 얼굴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자꾸 무언가가 얼굴을 적셨다.
생애 처음 가진 일자리였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해보지 않던 것을 시도하며 사는 삶은 제법 설레고 재밌었다. 매일 나갈 곳이 생겼고 ‘직장 동료’가 생겼다.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뻑뻑한 삶에 숨통이 트였고 ‘나도 노동자’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올라갔다. 사는 것이 당당해졌다. 그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그 삶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너무 쉽게 빼앗아 갔다. 바리캉에 밀려 나가는 머리카락처럼. 오세훈 시장이 잘라냈다. 일자리를, 어떤 자유를, 미래를, 일상을.
2024년 4월 19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서울시청 앞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삭발 투쟁한 현장을 사진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