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돌봄의 달’로 / 전근배

[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2024-05-23     전근배
2022년 5월, 삼각지역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의 모습. 사진 하민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1) (2023년 10월,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의 법정 최후 진술 중)

“피해자가 본인을 불러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한 번씩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하는 등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예 피해자 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 피고인은 피해자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2) (2021년 5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B씨의 1심 판결문 중)

“안방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묻어주세요.”3) (2024년 1월, 아버지를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C씨의 유서)

지난 정부에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현장에서 우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읍·면·동과 시·군·구가 중심이 되어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방향은 뭉툭했지만, 꽤나 큼직한 메시지였다. 더군다나 인구 추이와 사회 여건에 맞추어 장애인만이 아닌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민 대다수의 보편적 문제로 돌봄의 위상을 설정했다는 점은 탈시설-자립생활이 더 이상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반가운 신호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가 아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을 찾아 서비스와 연결해야 할 지자체의 권한과 예산은 부족했고, 연결하게 될 기존 제도의 보장성은 형편없었다. 연결시킬 제도의 대상자는 부처 간 칸막이에 여전히 막혀 있었고, 급여 판정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의 각 지사들에 분절적으로 내맡겨져 있어 책임성이 모호했다. 판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게 될 주체들 대다수는 열악한 돌봄 시장의 민간 기관이어서 운용상 관리가 쉽지 않았다. 읍·면·동이 아무리 ‘찾아가는 복지’와 ‘접수창구 확대’를 이야기하더라도, 시·군·구가 아무리 ‘사례관리’와 ‘커뮤니티 케어 회의’를 이야기하더라도 정작 ‘줄 것’이 없었다. 적극 행정을 펼치면 펼칠수록 빈약하고 무기력한 국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마저도 사실상 실종됐다. 취임 이후 지역사회 통합돌봄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고, 관련 시범사업은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간의 장애인 대상 시범사업이 종료되면서 중앙정부 예산은 사라졌고, 주거서비스 제공을 위한 주택과 인력을 운용하던 지자체들은 큰 예산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장애인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의 빈자리는 ‘독립형 주거서비스’,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와 같은 새로운 이름의 장‧단기 입소 시설이나, 자신의 활동지원서비스 급여를 떼어내 필요한 보조기구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예산제 시범사업과 같은 것들로 대체되었다. ‘줄 것’을 더 개발하기보다 ‘보낼 곳’과 ‘빼 쓸 곳’을 더 찾기로 한 것이다. 이제 적극 행정을 펼치면 펼칠수록 지역사회가 아닌 시설에 기반을 둔 삶의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하는 참사를 멈춰달라고 윤석열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 600여 명이 2시간 동안 1km를 기었다. 2023년6월14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 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용산역부터 대통령실청사 인근 삼각지역까지 오체투지 투쟁을 진행. 사진 하민지

올 5월도 ‘가정의 달’이란 말은 무색했다. 대구의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는 2023년 10월 지적‧뇌병변 장애를 지닌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씨를 위해 탄원서를 부탁하며 5월을 보냈다. A씨는 뇌출혈 이후 혼자서 움직일 수 없게 된 지적장애인 자녀를 40년간 홀로 돌봤다. 그러다 몇 년 전 화물차를 운전하는 자신마저 교통사고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 진단을 받았다. 아들을 위해 찾아오는 복지는 월 90시간, 하루 3시간 남짓의 활동지원서비스가 전부였다. 아들의 목숨을 앗은 후 그 역시 극단적 선택으로 중상을 입었지만, 계획과 달리 그는 죽지 못했다. 법정에 선 그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장애인부모들이 ‘장애인 살해를 두둔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죄인이 된 그의 곁에 죄인의 심정으로 섰다. 그러나 충북 청주의 지적장애인 일가족 3명이 세상을 떠난 부고가 전해지면서 탄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추모가 시작되었다.

장애인부모 활동가 김미범의 말처럼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래도 좀 살아보지’, ‘어떻게 좀 해보지’라고 이야기한다.4) 그러나 동일한 참사가 수년간 동일한 맥락에서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이것이 개인적 ‘의지’나 국가적 ‘무지’의 영역이 더 이상 아님을 보여준다. A씨와 아들이 살아온 지역은 대구 남구로 장애인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지역이었으며, 충북 청주의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가구로 매월 생계급여와 장애인연금으로 생활해 왔다. 따라서 지자체가 해당 가구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 이 두 참사는 모두 행정이 소극적이었거나 부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이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들어 온 행정의 결과물이다.

2022년7월1일.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T4 장례식에서 이삼헌 씨가 국화 다발을 든 채 추모굿을 펼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국가의 부재가 아닌 국가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은 시설 수용과 가족 책임이라는 큰 두 전제하에서 움직여왔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결말은 밝지 않다. 돌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설에 고립됨으로써 가정이 해체되거나,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겠다는 이유로 집 안에 고립됨으로써 가정이 붕괴된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행정의 적극성은 언제나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가령 한 장애인의 삶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활동지원서비스의 절대량을 주장할 때 행정은 적극적으로 부정(不正) 수급의 논리를 펼치지만, 이미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 10명 중 4명이 ‘입소 부적격’ 상태라는 점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말이다.5)

이쯤 되면 아무리 오월이 사회의 기본 단위라는 가정과 국가의 기본 토대인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는 달이라지만, 그 ‘기본’에 장애인이 있었나 싶다. 오월의 저편, 그것이 사회이든 국가이든, ‘가정’이든 ‘민주주의’이든, 우리가 만들어 온 평화와 화목의 상징 저편에, 인간의 존엄을 수탈당한 사람들의 민주주의 없는 나라, 유대를 빼앗긴 사람들의 가정 없는 존속(尊屬)이 있다. 오월이 화려할수록, 오월이 거창할수록, 그 그늘에 가려지는 존재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제 오월의 저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근본이 되는 일을 다시 생각하고 기본을 잘 다져야 한다. 오월을 허황된 ‘가정의 달’이 아니라 ‘돌봄의 달’로 바꾸어 부를 때가 되었다. 이 정도의 장례를 치른 사회라면, 적어도 열두 달 중 한 달 정도는 국가와 가정,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돌봄에 대해 안부를 묻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법도 하다.

 

1) 이효상, 「‘돌봄 살인’ 아버지의 뼈저린 참회…과연 그만의 죄일까」, 『경향신문』, 2024. 5. 18.

2) 고한솔, 「‘간병살인’ 청년, 끝내 징역 4년형」, 『한겨레21』 1407호, 2022. 4. 1.

3) 백경서, 「또 간병 살인 비극…“안방에 아버지 있다” 숨진 아들의 유서엔」, 『중앙일보』, 2024. 1. 20.

4) 백민, 「“3개월 만에 또” 반복되는 발달장애인 가정 참사에 ‘망연자실’」, 『에이블뉴스』, 2024. 5. 14.

5) 현재 장애인(성인)의 시설 입소 자격은 신체의 기능제한 점수(서비스지원종합조사의 X1값)를 기준하고 있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은 240점 이상, 장애유형별거주시설은 120점 이상이어야 입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2020년 정부가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 전수 조사의 원자료에 의하면 시설 입소의 최소 자격이 되는 120점 이상자는 62.7%(11,005명)였다. 즉 현행 시설 입소 자격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시설 거주 장애인 약 10명 중 4명은 ‘입소 부적격’ 상태에 있는 것이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