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지원가 사업, 복지부 이관 후 일자리 잃은 발달장애인들

동료지원가 사업, 복지부 이관 후 고용승계 안 돼 기존 서울시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 3곳 탈락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 우대가점 부여 안 한 서울시 장애계 “고용 유지 위해 추가 선정하라” 요구에 서울시는 “고려 중”

2024-05-28     김소영 기자
지난 4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동료지원가 고용승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남태준 씨가 무거운 표정으로 서울시에 제출할 면담요청서를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3년간 ‘동료지원가’로 일해온 남태준(25) 씨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지난달 26일,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서울시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맨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살다가 나도 다른 사람을 지원하고 똑같은 직장인이 된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동료들을 만나서 서로 얼굴 보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저를 장애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주는 일자리라서 좋았습니다. 지금 만나는 동료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는 남태준 씨의 첫 직장이었다. 2021년 학교를 졸업한 후,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동료지원가로 일해왔다.

남 씨에게 동료지원가라는 직업은 단순한 ‘일자리’ 그 이상이었다. 동료상담을 통해 여러 발달장애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취업을 도왔다. 더 많은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해왔다.

갑작스러운 해고 소식에 서울시의 설명을 듣고자 그는 서울시에 전화도 해봤다. ‘자신이 왜 잘려야 하는지’ 궁금했다. 남 씨는 “서울시는 ‘이미 심사는 끝났고, 발표한 결과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며 답답해했다. 서울시는 올해 예산 7억 2300만 원을 들여 총 63명을 고용한다.

2023년 9월 18일 오전 7시경,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충무로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 점거했다. 사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 ‘동료지원가 사업’이 복지사업?… 고용노동부에서 보건복지부로의 이관

‘동료지원가 사업’의 본래 명칭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연계사업’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사업으로 2019년에 시작됐다. 중증장애인(동료지원가)이 다른 중증장애인을 만나 취업 정보를 제공하고, 정서적 지지를 통해 취업의지를 끌어올려 일자리를 연계해 준다. ‘비경제활동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중증장애인의 취업의욕 고취 및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2023년 8월, 고용노동부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23억 원이 전액 삭감됐다. 사업 폐지 이유는 ‘실적 부진’과 ‘보건복지부의 동료상담가 사업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 187명이 해고 위기에 처했다. 이들 상당수는 성인 발달장애인이다. 사업 폐지를 막기 위해 발달장애인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점거, 국정감사 출석을 비롯해 국회,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에서 수많은 기자회견을 열며 항의했다. 그 결과, 국회에서 사업 예산이 전액 복구됐다. 대신 2024년도부터 사업이 고용노동부에서 복지부로 이관되고, ‘중증장애인 동료상담 사업’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사업이 이관된 배경에는 기획재정부의 영향이 컸다. 기획재정부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복지 차원에서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보니 사업 성격상 고용노동부보다는 복지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사업 이관 이유를 밝혔다.

- ‘고용 단절 없다’는 약속 지키지 않은 복지부

갑작스러운 사업 이관에 장애계에선 고용승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올해 초 고용단절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지난 1월 5일, 복지부는 동료지원가 사업운영 민간단체와의 간담회에서 고용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존 수행기관 위주로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2024년도 중증장애인 동료상담 사업지침’에 ‘최근 3년 이내 기존 동료지원가 사업 등 유사사업 수행경험이 있는 기관 등에 우대가점을 부여한다’는 문구로 명시됐다. 2월 1일에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기존에 근무하던 동료지원가가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자체에 고용승계를 요청’했다고도 알렸다.

‘2024년도 중증장애인 동료상담 사업지침’에 ‘최근 3년 이내 기존 동료지원가 사업 등 유사사업 수행경험이 있는 기관 등에 우대가점을 부여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에서 기존에 동료지원가 사업을 2년 이상 운영하던 피플퍼스트성북센터,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3개 기관이 탈락한 것이다. 중증장애인 1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 우대가점 부여 안 한 서울시

그 배경에는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에 불리하게 작용한 ‘수정된 선정 심사표’가 있다. 비마이너가 작년과 올해 선정 심사표를 비교해 보니 동료지원가 사업을 수행한 기관이 받을 수 있는 가산점이 작년보다 대폭 줄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경우엔 아예 가산점을 주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2023년 중증장애인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지침’의 수행기관 선정 심사표(위)와 ‘2024년 중증장애인 동료상담 사업지침’의 수행기관 선정 심사표(아래)

선정 심사표의 총점 100점 중 20점이 ‘과거 유사사업 수행 경험 여부’다. 작년 심사표를 보면, 최근 3년 이내 동일사업 수행 시엔 20점, 유사사업 수행 시엔 10점, 무경험은 5점이 책정됐다. 여기서 ‘동일사업’이란 고용노동부 소관의 동료지원가 사업을 가리키며, ‘유사사업’이란 지자체 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위탁받는 사업을 지칭한다. 즉, 과거엔 동료지원가 사업을 수행한 기관은 유사사업을 한 기관보다 ‘최대 10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선정 심사표엔 이러한 점수 구분이 사라지고 ‘유사사업’으로 분류된 기관이 모두 동일한 점수를 받았다. 비마이너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가 분류한 ‘유사사업’에는 고용노동부의 동료지원가 사업,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일자리 관련 사업 등이 모두 포함된다. 김승원 서울시 장애인일자리팀장은 “복지부의 사업 지침에 동료지원가 사업 수행기관과 그 외 기관에 대한 가산점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 점수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임연희 서울시 장애인일자리팀 주무관은 “복지부로부터 동료지원가의 고용승계를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바가 없고, 복지부의 사업지침에도 고용승계를 하라고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비마이너는 취재 과정에서 복지부가 2023년 12월 말에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에 동료지원가의 고용승계를 협조 요청한 공문을 발송한 것을 확인했다.

- “행정 부처의 몰이해와 무책임, 지금 사태 만들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기재부, 복지부 등 관련 행정 부처들의 동료지원가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행정 처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중증장애인을 노동자가 아닌 복지의 수혜자로만 바라보며 ‘복지 차원에서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복지부로 동료지원가 사업을 이관했다.

송효정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무국장은 “복지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복지부는 사업의 의미와 방향을 고민하고, 지자체에 고용승계의 맥락을 잘 전달했어야 하나 지자체와의 협의 등이 매우 미흡했다”며 복지부의 ‘무책임’한 행정 처리를 지적했다.

송 사무국장은 “동료상담 사업이 복지부의 신규사업이기 때문에 고용승계가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동료상담 사업은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를 막기 위한 투쟁의 결과로 생겨난 사업이다. 고용노동부 소관일 때의 동료지원가 사업지침과 복지부 소관의 동료상담 사업지침은 부서 성격상 변경되어야 하는 사업목적, 용어 등을 제외하고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면서 두 사업의 연속성에 대해 짚었다.

올해 서울 외 다른 지역에서도 기존 사업 수행기관이 탈락한 것으로 발견됐다. 그로 인해 충북장애인부모연대 충주시지회에서는 발달장애인 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부산, 광주, 대전, 경기, 전북, 충남 등에서는 상반기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아직 사업 수행기관조차 선정되지 않았다.

지난 4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동료지원가 고용승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박경인 활동가가 국정감사에서 “동료지원가 일자리가 축소되지 않도록 살피겠다”고 한 추경호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장애계 “고용 유지 위해 기관 추가 선정하라” 요구에 서울시는 “고려 중”

동료지원가 사업을 지키기 위해 사업 수행기관과 동료지원가 개인이 모인 연대단체인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고용승계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남태준 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남 씨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최소 20년간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히 믿었는데 해고당했다”고 말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 발달장애인은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지난 16일, 공동행동은 서울시와 동료지원가 사업 선정결과와 관련해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는 “사업 수행기관 추가선정을 고려 중이다”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선정된 기관들에 대해선 5월 이내에 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동행동 측은 “사업 수행기관 추가선정 여부를 지켜보며 이후 결과에 따라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