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결국 탈시설조례 폐지… 자립생활조례 개악안도 통과

서울시의회, 이의 없이 15분 만에 ‘탈시설지원조례’ 폐지 가결 ‘탈시설’ 용어 전면 부정한 자립생활조례 개정안도 통과 25일, 본회의 통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 최종 결정

2024-06-17     김소영 기자
17일, 강석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 제324회 정례회 제3차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서울시의회가 결국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을 가결했다. ‘탈시설’ 용어를 전면 부정한 ‘서울특별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아래 자립생활조례) 개정안 또한 가결됐다.

17일 오전, 보건복지위원회(아래 복지위) 회의는 예정보다 1시간 40분 늦은 11시 40분경 개회했다. 이날 복지위에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조례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서울시의회 앞에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둘러싼 서로 다른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별관 1동 앞에서는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멈추라”고 외치고 있었으며, 본관 앞에서는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 이의 없이 15분 만에 가결

11시 51분,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이 발의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이 강석주 서울시의회 복지위 위원장(국민의힘)에 의해 안건으로 상정됐다. 복지위 위원들이 질의를 하기 전,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의견을 발표했다.

정상훈 실장은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은 2만 7천여 명의 주민이 청구하여 발의된 조례안으로, 현재 탈시설 찬성 측과 반대 측이 폐지 여부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의회의 고민과 논의를 통해 결정된 것을 충분히 존중할 예정”이라면서도 “거주시설을 안락하게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가정하는 발언을 했다.

17일, 이소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이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에게 탈시설지원조례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이에 이소라 복지위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탈시설지원조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의 탈시설이 명시된 상징적인 조례”라면서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됨으로써 예상되는 부작용은 없는가”라고 질의했다.

정 실장은 “현재 탈시설지원조례를 유지하며 자립생활조례를 개정하는 옵션,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고 이를 기존 자립생활조례에 병합하며 개정하는 옵션 등 두 가지 옵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더라도 일부 단체가 주장하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은 자립생활조례에 담으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유만희 복지위 부위원장(국민의힘)은 “탈시설지원조례가 없어진다면 그 후의 서울시 탈시설 정책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정 실장은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의견 대립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는 이 대신 ‘자립지원’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서울시는 시설에 거주하든, 지역사회에 나오든 장애인들의 주거선택권을 존중하여 균형 있게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유정 위원(국민의힘)은 “협약에 따라 만들어진 자립생활조례가 있는데 탈시설지원조례를 별도로 두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며 “원래 있는 것(자립생활조례)에 필요한 내용을 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조례를 두 개 둠으로써 지금과 같은 혼선이 발생했으니 바로잡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밝혔다.

세 위원의 질의가 끝나고 강석주 위원장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에 이의를 제기할 위원이 있는지 물었다. 복지위 소속 위원 여덟 명 중 이의를 표한 위원은 아무도 없었다. 15분 만에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은 가결됐다.

17일, 유만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이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에게 탈시설지원조례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 ‘탈시설’ 전면 부정한 자립생활조례 개정안도 통과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되고 유만희 부위원장이 발의한 자립생활조례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이 또한 어떠한 논의도 없이 빠르게 통과됐다.

자립생활조례 개정안은 애초에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가정하고 발의된 안이다. 제안 이유에 따르면 “탈시설조례 폐지조례안이 발의되어 자립생활조례를 일부 개정하여 자립지원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면서 조례명도 ‘서울특별시 장애인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로 수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존 조례명에서 ‘지역사회 정착 지원’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문제는 이 개정안이 ‘자립지원’을 앞세워 ‘탈시설’ 용어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제안 이유에 “‘탈시설’ 용어 대신 실질적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지원’ 용어로 대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정의를 담은 조항이 신설됐다. 이는 ‘지역사회의 자립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 조례 개정 이유와 모순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정상훈 실장은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을 나갔던 장애인이 20% 이상이다”면서 “본인 의사에 따라 시설을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시는 지속해서 탈시설을 ‘장애인 거주선택의 자유’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에 장애계는 거듭 “‘시설 거주를 선택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가이드라인과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한 협약에 위배되는 행태”라고 비판해 왔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 소식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즉각 규탄에 나섰다. 이들은 당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내에서 포체투지로 규탄 행동에 돌입했다. 오는 18일 오전 11시에는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조례 개정안은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최종 가결 여부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