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희망하고, 희망하는 자는 꿈꾸라 / 전근배

[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2024-06-28     전근배

“어릴 적 동생들이 학교 가고 나면 저는 혼자 남아서 방안에 갇혀 지냈습니다. 학교를 가고 싶어도 저는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처음 다닌 학교가 질라라비장애인야학입니다.” (박경화)1)

“2학년 됐을 때, 친구가 저를 때린 적이 있었거든예. 와 때렸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학교 가는 것이 무서웠어예. 선생님은 때린 친구 이야기만 들어주고 내 이야기는 안 들어줘서… 억울했지요. 내한테 학교는 즐거운 곳이 아니라 무섭고 억울한 곳이 되어 버렸어. (이제) 학교 다니면서 진짜 많은 거 배웠거든예.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고 이렇게 공부하니깐 좋은 게 많은데…. 내처럼 집이나 시설에서 아직까지 공부 못 배운 장애인들이 많잖아예. 그런 사람들한테 도움 주는 사람 되고 싶고. 그게 내한테는 장래 희망이라예.” (이상근)2)

“학교에 가면/ 공부할 때마다/ 선생님이/ 자, 인숙 씨, 한번 읽어볼까요? 라고 하고// 자, 인숙 씨/ 칠판에 적힌 글을 써 볼까요? 한다// 한글을 모르던 나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며/ 읽고 쓰는 그 순간/ 자유롭게 펼쳐지는/ 나의 세상// 한글자 한문장/ 나를 표현하는 나만의 언어로/ 익숙해질 때까지/ 오늘도 공부하고 있다” (김인숙의 시, 「읽고 쓰고」)3)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내게 선배들이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조금 생뚱맞은 노래였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나중에서야 그것이 간디학교의 교가인 걸 알았다. 학생회실에서, MT에서, 때로는 술을 먹는 자리에서, 감성에 젖은 사범대생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이 노래를 불렀고, 그럴 때면 나도 마냥 ‘참 스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느 교가처럼 특정 지역, 산, 강, 꽃, 나무, 동물과 같은 이름을 이어 붙여 그 역사적 전통과 장엄한 정기를 내뿜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 시절의 나는 ‘꿈’, ‘별’, ‘길’, ‘사랑’, ‘희망’을 이어 붙인 노랫말에 마음 떨었을까.

5월 24일 ‘성인장애인 고등학교 과정 진학 방안 마련 요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들과 조민제 교장. 사진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얼마 전, 내게 이 노래를 알려주었던 선배 한 명이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교장 조민제가 학생들, 교사들과 나란히 ‘기자회견’이라는 현장 체험학습의 자리에 섰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어릴 적 학교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 했던 우리 학생분들이 적게는 40대, 많게는 60대에 접어들어 100일 뒤면 이제 중학과정을 졸업”한다며, 전국 최초로 장애성인을 위한 학력인정 과정을 개설한 강은희 교육감에게 감사를 전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졸업을 100일 앞둔 시점에 그가 새삼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교육청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정작 8월 말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없다는 것이 그 자리에 선 진짜 이유였다.

5월 24일 ‘성인장애인 고등학교 과정 진학 방안 마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경화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중학과정 졸업 예정자. 사진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어릴 적 동생들의 학교 가는 뒷모습만 방 안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박경화도 그 중 한 명이다. “매일 매일 학교 오는 날”만 기다린다는 그녀가 기자회견에서 말하기 위해 적어온 발언문에는 ‘꿈’, ‘세상’, ‘자신감’과 같은 낱말이 떨리고 있었다. 노래와 같은 그녀의 발언이 새어나왔을 때, 시설에서 살아온 그녀가 “이제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꿈이 생겼다”며 “저의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강은희 교육감에게 말했을 때, 나는 오래전 곡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후 그녀의 꿈이 “자립생활하며 내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꿈은, 다시는 멈추지 않고 계속 꿈꾸는 것인 셈이다.

5월 24일 ‘성인장애인 고등학교 과정 진학 방안 마련 요구 기자회견’ 사회를 보고있는 황보경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사무국장. 사진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들과 한참 밝게 웃던 야학의 사무국장 황보경은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이내 울었다. 대구시교육청이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더 기다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상 특수교육대상자는 만 3세에서 17세까지이므로, 평균 나이가 54.4세인 이들은 의무교육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 둘째, 평생교육법상 초·중학교 학력인정 이외에 고등학교 학력인정은 교육감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 셋째, 평생교육법상 고등학교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대구에 한남미용정보고등학교가 있지만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진학할 수 없다는 것. 교육청은 향후 법이 만들어지면 여건에 맞춰 지원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황보경이 운 이유도 단순했다. 교육청의 통계에서처럼 학생들은 이미 오래 기다려 왔고, 이제 기다릴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써 2명의 학생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원하여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내가 원하여 나이 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차별이 먼지처럼 반백 년 동안 쌓이고 쌓이자 어느 순간 그것은 합법이 되어 있었다. 그녀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야학에 초등학교 학력인정 과정이 시작된 2018년 무렵부터 학생들과 함께 줄기차게 정부와 국회를 찾아다녔다. 면담, 세미나, 토론회, 방송, 기자회견, 집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다. 하지만 장애성인의 학력인정을 위한 학교 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을 규정한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은 끝내 21대 국회를 넘지 못했다. 자기 나이만큼의 세월동안 차별을 겪어온 질라라비야학의 학생들은 성인이란 이유로 특수교육대상자에서 제외되었고, 장애인이란 이유로 다시 꿈꿀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현행법이 멈춘 곳에서 강은희 교육감의 ‘선의’도 ‘재량’도 멈춘 것일까. 교육 관료들은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법적 사실(즉 차별 현실)과 함께 질라라비야학이 얼마나 많은 예산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듯 ‘2억 8천 4백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음을 굵게 표기했다. 2024년 대구시교육청 본 예산 4조 851억 원의 0.007%에 해당하는 수준임을 그들이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희망’을 말하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일종의 모멸감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주니 이제 고등학교도 달라는 이들에게 배은망덕한 감정이라도 느낀 것일까.

사실 올해는 전국 최초로 중학교 학력인정 장애인 졸업생이 배출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강은희 교육감이 주입식 교육이 아닌 탐구와 토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한다며 처음 도입한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 내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첫 졸업생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 그 시작도 2018년으로 같다. 객관식 평가가 아닌 서술 및 논술식 평가를 취하는 IB교육 역시 초·중등교육법 개정, 국가 교육과정의 전면 개편, 대학입시 체제 개편과 같은 상당한 제도적 장벽에 놓여 있다. IB교육이 교육감의 바람대로 공교육 혁신의 길이 될지 또 다른 경쟁‧능력주의 교육의 전형이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나, 교육감은 적어도 IB교육에 대해 꾸준히 ‘희망’을 말해왔다. 장벽을 해결해 나갈 방향과 과제에 대해 말했지, 학교나 학생에게 그 탓을 돌리지 않았다.

강은희 교육감은 8월 말 열릴 질라라비야학 중학교 과정 학생들의 졸업식에 오라. 교육감으로서 인사하고 인사 받으러 오지 말고, 교육자로서 오라. 고 백기완 선생의 말처럼 ‘잠자는 해를 깨우는 목청 큰 닭’이 되어버린, 그래서 과거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해방을 향해 퍼덕거리는 질라라비들을 만나러 오라. 여기에서 법적 한계도, 행정적 한계도, 재정적 한계도 솔직히 말하라. 대신 아무에게도 사과 받지 못했던 이들의 못 배운 한에 대해 사과하고, 장애성인의 고등학교 교육을 위해 교육청, 졸업생,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차라리 토론하라. 배우는 사람들이 이제 가르치고, 가르쳐온 사람들이 다시 배워야 할 시간이라고, 이제 꿈꾸는 자는 희망하고, 희망하는 자는 꿈을 가져야 할 시간이라고 손이라도 잡으라. 그리하여 졸업식이 끝이 아니라 없던 길을 열어가야 할 새 시작임을 알리라.

 

1) 조정훈, 「“고등학교 가고 싶은데 갈 학교 없다”는 성인 장애인들, 왜?」, 『오마이뉴스』, 2024. 5. 24.

2) 질라라비야학,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4)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_이상근 이야기①」, 『뉴스민』, 2024. 6 .12.

3) 박종식, 「배움으로 쌓아 올린 나의 꿈, 나의 세상… 여기서 멈추지 않기를」, 『한겨레』, 2024. 6. 3.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