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6년… “장애인권리 정치가 책임져라”

장애등급제 폐지 6년… 바뀌지 않은 장애인 현실 “22대 국회, 1년 내 7대 장애인권리법안 제정하라” 박경석 대표 “입법 불발 시, 다시 지하철 멈출 것”

2024-07-01     김소영 기자
1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제6회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주먹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1일 오후 3시, 장애인들이 국회 앞으로 모였다. 850여 명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이 이동권, 탈시설권, 교육권 등 장애인권리를 책임지고 보장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하며, 제6회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2019년 7월 1일, 31년 만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됐다. 1842일간 이어진 광화문역 지하농성의 결실을 맺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새로운 싸움을 결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복지서비스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며 6개의 장애등급은 중·경증으로 이원화되고, 활동지원시간을 판정하는 도구는 인정조사에서 서비스지원종합조사로 바뀌었다. 그런데 종합조사를 받은 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되거나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자격이 박탈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가짜 폐지’라 명명하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또 다른 투쟁을 시작했다.

전동휠체어의 행진, 이른바 ‘전동행진’.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앞으로(前) 나아가는(動)” ‘전동(前動) 행진’이라는 이름의 행진은 그렇게 시작됐다.

- “국회는 이동권‧탈시설권 보장 위한 법안 제정하라”

전동행진에 앞서 진행된 결의대회에서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4%이다. 60%가 넘는 곳을 장애인은 버스로 이동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는 전국의 버스 10대 중 7대는 여전히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정 대표는 “비행기, 여객선은 어떠한가.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를 이용할 때 항공사 직원에게 짐짝처럼 업혀서 비행기에 타야 한다. 비행기는 업혀서라도 탈 수 있지만 여객선은 그럴 수도 없다. 내가 타고 있는 차를 통째로 실어야만 배에 승차할 수 있다.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권을 시혜와 동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더 이상 짐짝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 교통약자법 전부개정을 통해 이동권을 완전히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애준 탈시설장애인당 전남도당 위원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 권리로 천명하고 있음에도 서울시가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한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지적했다.

문 위원장은 “22대 국회는 탈시설지원법과 수용시설폐쇄법을 제정하고,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권리예산을 편성하라”고 촉구했다.

- 박주민 의원 “필요한 법 신속하게 제정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권영국 정의당 당대표, 송치용 사회민주당 대표대행이 참석해 연대를 표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영상을 통해 지지를 전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박주민 의원은 “장애인권리에 대한 제도는 아직도 많이 미비하다. 법은 통과됐지만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현실이 바뀐 법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필요한 법은 신속하게 제정하고 제정된 법은 실질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국회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권영국 대표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뙤약볕 밑에서 투쟁해야 하는 현실이 분통스럽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누구나 차별 없이 활동지원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예산을 마련하지 않고, 종합점수표를 통해 활동지원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규탄했다.

- “1년 내 7대 장애인권리법안 제정하지 않을 시, 다시 지하철 멈출 것”

김미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김미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은 해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부모가 자살하는 ‘발달장애인 참사’가 발생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왜 발달장애인 가족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 지부장은 “2008년 특수교육법이 시행됐다. 특수교육대상자가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나, 장애학생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법만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제도와 인프라, 예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달장애인법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발달장애인 아이를 끌어안고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특수교육법과 발달장애인법 전면 개정을 해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박명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투쟁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투쟁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이 똑같다.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인들이 자신감을 갖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의 터전이 마련되어야 한다. 22대 국회는 반드시 장애인평생교육법을 제정하라”고 외쳤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올해 4월 20일까지 총 61차례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61차례 지하철을 타니 세상이 난리가 났다. 장애인이 부모에게 맞아 죽고 그 부모가 자살해도 아무 관심 없다가 장애인이 출근길 지하철에 나타나니 세상이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내년 4월 20일까지 7대 장애인권리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다시 지하철을 멈출 것”이라고 선언하며 1년 내 장애인권리법안을 제정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노래로 물들다’의 문화공연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편, 전장연은 결의대회를 마친 후 오후 4시 30분부터 ‘7대 장애인권리법안 1년 내 제정’을 촉구하며 전동행진을 했다. 전동행진 참가자들은 국회에서 출발해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역까지 행진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공덕역과 마포역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선전전을 진행하며 국회 앞 ‘한국판 T4 농성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후 8시 30분부터는 ‘장애시민권리 회복 장애인권리약탈 고발 파리패럴림픽 투쟁 결의 문화제’를 열었다.

[22대 국회, 1년 내 제‧개정 촉구 장애인권리 7대 입법 과제]

1.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2.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전면개정(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제정)
3.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지원법 제정
4. 발달장애인법 전면개정
5.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지역사회자립생활권리보장법 제정)
6.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7. 장애인등특수교육법 전면개정

[22대 국회, 탈시설권리 실현 3대 입법 과제]

1.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2. 장애인수용시설폐쇄법 제정
3. 시설수용피해생존자보상법 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