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고문방지위, 시설수용 피해자 구제 권고… 국회 “최종견해 이행하라”
유엔고문방지위, 유엔고문방지협약 심의 최종견해 발표 ‘과거사 및 시설수용 피해자 구제 권리’ 최초로 명시 여야 6개 정당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 발의
유엔고문방지위원회(아래 고문방지위)가 ‘국가 폭력으로 인한 과거 부랑아시설을 비롯한 시설 피해생존자들이 공식적인 진정 없이도 구제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고문방지위의 최종견해를 알리며 정부에 이행을 촉구했다.
31일 오전 11시, 제6차 유엔고문방지협약 심의 대응을 위한 한국시민사회모임(아래 대응모임)은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5개 정당의 국회의원들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유엔고문방지위 “시설 수용된 모든 피해자 구제 권리 보장해야”
유엔고문방지협약 제6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대한 최종견해가 지난 26일에 발표됐다. 지난 10일~11일 양일간 제네바 유엔사무소에서 진행된 심의의 결과물인 최종견해는 한국 정부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고문방지위의 우려사항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포괄적인 권고들을 담고 있다.
특히 고문방지위는 ‘과거사 및 시설수용 피해자 구제 권리’ 보장을 최종견해에 처음으로 권고했다. 최종견해에는 “국내법 개정 등을 통해 사회복지시설, 고아원, 기타 폐쇄형 시설의 피해자를 포함한 과거 국가 폭력과 시설 수용 경험이 있는 모든 피해자들이 공식적인 진정 제기 없이도 보상, 만족, 재활 서비스를 포함한 효과적인 구제 및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대응모임은 “고문방지위가 심의 전 쟁점목록에 포함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권고하는 것은 이례적인 만큼, 이번 권고는 시설수용과 과거사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고문’임을 명확히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 “정부는 최종견해 이행하라”
고문방지위의 한국 심의 기간에 맞춰 유엔에 직접 방문해 자신의 피해를 증언한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은 정부에 적극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손석주 영화숙·재생원 생존피해자협의회 대표는 “60년이 지나도록 한국에서는 받지 못했던 위로와 지지를 고문방지위 두 위원으로부터 받았다”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내년 5월에 종료된다고 한다.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고 호소했다.
손 대표는 “정부가, 국회가 지체하는 동안 피해자는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고문방지위의 권고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구제에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시설 자체를 없애야만 한다는 나의 말에 고문방지위원은 ‘당연하다’고 동의했다”며 “고문방지위는 시설수용이 고문의 하나라고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활동가는 “고문방지위는 시설수용 피해생존자의 피해 구제를 위해 한국 정부가 법도 바꾸고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시설수용 피해를 겪고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더 이상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없는 사회로 바꾸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 국회 ‘유엔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촉구 결의안’ 발의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에 여야 6개 정당, 38명의 의원들과 함께 ‘유엔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유엔고문방지협약은 국제적으로 고문 및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막기 위해 1987년에 발효됐다. 한국 정부는 1995년에 가입했다. 이후 2006년, 유엔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가 발효되었으나 한국 정부는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는 유엔고문방지협약의 목적과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채택된 협약 부속 문서다.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면 ‘고문방지소위원회’와 ‘국가예방기구’ 등 독립적인 국제 및 국내기구가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구금장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고문방지위는 이번 최종견해를 통해 유엔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를 조속히 비준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서미화 의원은 “내년이면 한국 정부가 유엔고문방지협약을 비준한 지 30주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선택의정서에 대한 비준을 미루고 있다”며 “고문방지위의 최종견해를 정부가 받아들여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고,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고문예방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고문방지위의 최종견해에는 이외에도 정신보건시설 강제입원 방지, 이주구금 제도 개선 및 아동구금 금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임명 절차 개선, 국가보안법 폐지, 난민신청 권리보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