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 장애인’ 김진수 떠나는 날
2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시민장 엄수
2일 오전 8시 30분, 장례식장을 나선 김진수는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는 혜화역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 선전전이 열리는 혜화역 5-3 승강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선전전 646일 차의 아침을 함께하며 ‘열차 타는 사람들’ 노래를 불렀다. 그가 예의 그 포즈로 턱을 괴고 흐뭇하게 웃으며 동지들을 바라보았다.
62일의 농성을 한 마로니에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2009년 6월 4일, 모기가 들러붙던 초여름 날이었다. 그날도 김진수는 동지들과 함께 이렇게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날 김진수는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파란 하늘을 뒤로하고서, 살짝 올라간 그의 입꼬리에 그가 꿈꿨을 미래가 어렴풋이 스쳐 지났다. 그의 미래를 품은 과거가 마로니에공원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그때도, 지금도 오세훈이 서울시장이다. 그때도, 지금도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시청이 바로 보이는 국가인권위원회(금세기빌딩)에서 농성하며 오 시장에게 탈시설제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 성과로 2024년 오늘, 제법 많은 탈시설 장애인들이 김진수가 떠나는 날을 함께 마중했다.
2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 탈시설제도의 초석을 마련한 ‘마로니에 8인’의 맏형 고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의 장애시민장이 엄수됐다. 찐득한 더위에 표정이 녹아내리고, 땀과 눈물이 뒤엉켜 흘러내렸다.
그는 활동가들이 “이 일은 도저히 못 할 것 같다”며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을 때면, 중절모 아래로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그까짓 거 하면 되지, 뭐” 그 말은 마법 같아서, 무겁고 어려운 일을 제법 할 만한 크기로 줄여 주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어려운 말이 있었다. 활동가들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마다 “그래도 좀 더 계속 같이 해보자”며 옷소매를 붙잡는 말이었다.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매번 어려운 마음으로 붙잡고자 했던 그를 사람들이 속절없이 붙잡지도 못한 채 떠나보낸다. 다시는 재연할 수 없는 그의 모습을, 그의 따뜻함을, 그의 농담을, 그의 어려움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복기하며 사람들은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