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루브르 박물관 / 서한영교

[칼럼] 서한영교의 시,의적절 불시: 들이닥치는 순간

2024-09-13     서한영교

파리 패럴림픽 개막식 날, “지금 저희는 프랑스 파리 더불어 박물관에서, 아니다… 아니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급하게 라이브 중계를 시작한 한 활동가가 말했다. ‘paralympic’(패럴림픽)에서 ‘para’는 그리스어 전치사로 ‘더불어, 나란히, 함께’를 뜻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이 더불어 박물관으로(para-museum) 발음되는 순간, 꼭 알맞은 이름인 듯 했다.

“Stop 오세훈! New Citizenship! Against Ableism!(오세훈은 장애인 권리 약탈을 멈춰라! 새로운 시민권을 위해! 비장애중심주의에 반대한다!)를 외치며, 프랑스 파리 더불어 박물관에서, 아니 루브르 박물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 아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파견한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아래 파리특사단)은 불시에 다이-인(die-in) 직접행동을 펼쳤다.

- 비상사태와 호박스프

루브르 박물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앞에서 ‘리포스테 알리멘테르’(riposte alimentaire. 식량 대응)라는 환경단체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riposte alimentaire 인스타그램

파리특사단의 다이-인(die-in) 직접행동이 있기 약 3개월 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 앞에서 또 다른 예고되지 않은 시위가 불시에 있었다. 2024년 5월 8일, 프랑스의 ‘리포스테 알리멘테르’(riposte alimentaire, 식량 대응)라는 환경단체는 “저항은 필수적이다”(Résister est vital)라는 구호가 적힌 스티커를 작품 주변에 붙인 뒤, 지속 가능한 식량과 농업을 위한 사회보장의 필요성에 대해 외쳤다. “단결하고 저항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시민 저항에 나섭시다! 소수 특권층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지 맙시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단체는 2024년 1월 28일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그림에 호박스프를 뿌리고 “기후 비상사태다! 자본주의는 위험하다!”를 외치며 전 세계를 움찔하게 한 그 단체이기도 하다.

- 미래 비상사태들의 안팎

루브르 박물관은 매일같이 3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장소이다 보니, 세상이 ‘듣지 않으려는’ 목소리를 가진 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심지어 루브르 박물관 안내원, 경호원, 노조원들도 수차례 “모나리자가 파업한다”, “루브르가 파업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관람객 입장을 막아 세우며 ‘미래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STOP OIL’ 활동가들이 새로운 석유와 가스 추출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있다. 사진 출처:위키커먼스

박물관 밖에서 관람객을 막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박물관 안에서도 세상이 ‘듣지 않으려는’ 목소리를 가진 자들은 불시에 모였다.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그리스 조각상 ‘사모트라케의 니케’(일명 승리의 여신상) 아래에 석유 강을 상징하는 검은 천을 깔고 석유 사업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고, ‘메두사호의 뗏목’(테오도르 제리코) 작품 앞에 재생에너지 활용을 촉구하는 다이-인(die-in) 행동을 펼치며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루브르 박물관 안팎으로 두른 저항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직접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듣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으므로 끝까지, 즉 승리할 때까지 싸우는 것 외 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 권리 비상상태

비장애중심주의 사회 속 “듣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 외 다른 해결책”이 없는 대한민국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8월 28일 파리 패럴림픽 시기에 맞춰 40명의 파리특사단을 꾸려 한국의 장애인 권리 약탈 상황을 알리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서울시와 정부는 올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을 부당 해고하며 ‘노동권’을 약탈해갔고,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며 ‘탈시설 권리’를 약탈해갔다. 시민불복종 행동을 펼치는 활동가들을 불법 연행하고 강제 퇴거하며 ‘저항권’을 약탈했고, 추가 활동지원 시간 중단 및 삭감을 통해 ‘생존권’을 약탈했으며,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와상장애인의 지원주택 입주를 거부하며 ‘주거권’을 약탈해갔다. 파리특사단이 다이-인(die-in) 직접행동을 펼친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 민중들도 왕정의 ‘권리 약탈’에 맞서 봉기해 혁명을 일으켰다.

- 장차, 혁명의 맛

프랑스 대혁명(1789)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제2조에서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있다. 그 권리란 […] 압제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규정하며 저항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천명했다. 이러한 혁명을 짓밟고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1814), 루이 18세가 해외 도피 생활을 마치고 복귀하며 시작된 왕정복고 시기(1814~1830)에 헌법을 무시한 권리 약탈이 시작되었다. 교육 담당 기관을 국가에서 다시 교회로 환원시키며 교육권을 약탈하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며 표현의 자유를 약탈했다. 7월 칙령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의회를 거듭 해산시켜 참정권을 약탈하고 마침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장차, 혁명의 맛을 봐야 할 때였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사진 출처: 루브르 박물관

‘권리 약탈’에 분개한 프랑스 민중들은 비상계엄령에 맞서 7월 27일 역사상 가장 많은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일제히 “진정한 비상사태”(발터 벤야민) 들어갔다. 민중 반란의 상징으로 후대에 널리 알려진 바리케이드가 본격화된 혁명이었다.1) 왕정은 사흘을 버티지 못했고, 민중들은 왕을 끌어내렸다. 일명 바리케이드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부제인 ‘1830년 7월 28일’은 7월 혁명의 둘째 날을 그린 것이다.

- 3차원 바리케이드

8월 28일 오전 11시(프랑스 현지 시간),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이 루브르박물관에서 기습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

파리특사단의 다이-인 행동은 1830년 7월 파리의 바리케이드를 떠올리게 했다. 쇠사슬로 단단히 연결된 휠체어와 휠체어 사이,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휠체어에 건 수갑, 목에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 뿌려진 듯 어지럽게 박물관 바닥에 붙여진 스티커. 민중 저항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사물과 인간의 동맹체로서의 바리케이드를 떠올리게 했다. 금빛 액자 속 2차원 평면의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바리케이드가 3차원 입체감을 지닌 작품으로 되살아난 듯 했다.

또한 비장애인중심의 혁명 속에서 “‘동정과 과학’ 그리고 ‘호위와 권위’가 혼합된 채 일탈을 통제하기 위한 제어장치”인2) 대병원, 치료원, 신체불구자 재활시설, 구제원, 요양시설, 수용소에 갇혀 혁명의 현장 밖으로 유폐된 채 드러나지 않던, 200년 전 장애민중들이 액자 밖으로 쏟아져 나와 드러누운 듯 했다. 2차원이던 작품이 파리특사단에 의해 3차원 증강현실로 실감나게 완성되었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두고 “그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황폐, 학살, 전란일 뿐입니다. […] 그 작품 전체가 요컨대 숙명과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에 바쳐진 끔찍한 찬가와 흡사합니다”라고 말했다.3) 나에게 파리특사단의 다이-인 직접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에 바쳐진 끔찍한 찬가”이자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민중 저항에 바쳐진 발칙한 찬가처럼 느껴졌다.

-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사진 출처: 프랑스 패럴림픽 스포츠 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

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프랑스 파리 곳곳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Game is not over) 문구가 붙여졌다. 올림픽 뒤 또 다른 올림픽, 패럴림픽이 펼쳐진다는 뜻이었다. 토니 에스탕게 2024 파리 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은 왕의 목을 쳤던 콩코드 광장에서 패럴림픽 개막 연설을 했다. “오늘 밤엔 바스티유 습격도, 단두대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선수들의 혁명이 시작됩니다. […] 우리는 열광적인 순간을 다시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의 혁명이 오늘 저녁 시작합니다”며 패럴림픽 개막을 알렸다.

같은 날, 더불어 박물관에서, 아니 루브르 박물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작품 아래서, 전장연 파리특사단은 패럴림픽이 아닌 권리림픽(Rightslympic) 개막을 알리는 발언을 했다. “패럴림픽이 현재 장애인의 차별을 합리화하고, 배제와 억압을 숨겨버리면서, 능력 위주의, 1등 위주의 재활 의지를 이야기하는 그러한 패럴림픽이 아니라,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패럴림픽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하며, “장애인 권리 약탈을 멈춰라! 새로운 시민권을 위해! 비장애중심주의에 반대한다!”며 권리 투쟁을 알렸다.

장애 극복의 신화가 감동의 눈물 속에서 펼쳐지는 패럴림픽의 ‘혁명’과 장애인 권리를 향해 쇠사슬을 목에 두른 채 저항하는 파리특사단이 생각하는 ‘혁명’의 간극은 멀게만 느껴진다. 패럴림픽의 정신에 따른 포용적 질서 속에서 응원 받는 ‘장애’와 이질적 고유성을 기반으로 한 장애해방 투쟁 속 퇴거당하는 ‘장애’의 간극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 간극 사이에서 역사는 실시간으로 전진과 후퇴, 중단, 회귀를 반복하며 쌓여간다.

-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배경이었던 1830년 7월 혁명 이후의 역사는 민중들의 ‘승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부르주아 세력들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7월 혁명 이후의 민중들은 “아무 결실도 거두지 못할 싸움을 했다는 것 […] 영광의 사흘 이후, 파리 인민은 더 나쁜 비참 속으로 추락했고, 그들의 저녁들을 흘렸던 명예로운 꿈들과 가망 없는 봉기의 나날”을 떠올려야 했다. 그들은 “컴컴한 미궁 안에서” 다시금 “광산으로 내몰린 사람들처럼 암흑” 속에서도 다시 파업과 혁명, 봉기와 저항을 끝없이 반복했다.4) 다시 시작하는 힘, 혁명을 끝내지 않는 힘, 투쟁을 끝내지 않는 힘, 게임을 끝내지 않는 힘, 어느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금 시작하는 힘, “마르크스는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위대함”이라고 했다. “기나긴 전진과 후퇴, 중단, 회귀로 점철된 길이 사실은 승리의 길이었다”고 말이다.5)

14박 15일의 투쟁 일정을 마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파리특사단 귀국 환영식 날,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가득한 한 활동가가 긴 귀국 소감을 끝내며 너덜너덜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사단의 유럽 순회는 마무리됐지만 우리의 투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탄압에 맞서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갑시다!” 그 목소리는 위대한 힘이란 어떤 것인지, 승리의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비상사태 속, 우리의 미래가 불시에 기대되기 시작했다.

 

1) “1830년 7월 파리 혁명에서 바리케이드를 전무후무하게 무수히 많은 곳에 구축했다(사실 1830년은 바리케이드를 민중반란의 상징으로 삼았다. 파리에서의 바리케이드 혁명의 역사는 적어도 15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789~1794년에는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정도영·차명수 옮김, 한길사, 1998, 245쪽).

2) 앙리-자크 스티케, 『장애: 약체들과 사회들』, 오영민 옮김, 그린비, 2021, 253쪽.

3) 샤를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정혜용 옮김, 은행나무, 2014, 124쪽.

4) 자크 랑시에르, 『프롤레타리아의 밤』,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1, 47~50쪽.

5) 고병권, 『고병권의 『자본』 강의』, 천년의상상, 2022, 459쪽

 

* 필자 소개

서한영교 작가. 노들장애인야학교사. 시를 읽고, 번역하고, 가르치고, 쓴다. 시, 를 살아내고 있는 수상한 자들을 쫓다 보니 노들야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만났다. 이곳에서 시, 는 종이 위 단어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펼쳐진다는 것을 혹독하게 배우고 있다. poetrypunx@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