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투표용지 만들어달라!”… 발달장애인 1054명, 탄원서 제출

22년 1월, 국가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 제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만들어라”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각하’ 판결 11월 6일 오후 2시, 2심 선고 예정

2024-10-29     김소영 기자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 등 투표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국가에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한 발달장애인들은 11월 6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에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2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문 앞 삼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들은 직접 그린 그림 탄원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전시하고 그림 투표용지 보장을 촉구했다. 이후, 그림 탄원서를 포함한 발달장애인 1054명의 탄원서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했다.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2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문 앞 삼거리에서 발달장애인 그림 투표용지 보장 차별구제청구소송 탄원서 전시 및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김소영
발달장애인이 직접 그린 그림 투표용지 탄원서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전시돼 있다. 사진 김소영

- “그림 투표용지 도입 통해 발달장애인도 당당한 유권자로 존중받아야”

대선을 50일 앞둔 2022년 1월, 발달장애인들은 국가에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알아보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 투표용지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3년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6부(이원석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에 그림 투표용지 규정은 없다. 공직선거법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들이 낸 소를 ‘각하’했다. ‘소송의 요건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판결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은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며 바로 항소했다. 그 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박 활동가의 뒤로는 “후보자 사진, 정당 로고, 넓은 기표칸 그림 투표용지 제작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김소영

이날 기자회견에서 원고 중 한 명인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해달라는 소송을 위해 3년째 법원에 다니고 있다. 이 재판을 받으러 다니며 너무 힘들었다. 재판 날짜를 잘 맞춰 다니는 것도 힘들고 판사가 이야기하는 소송 내용을 알아듣는 것도 발달장애인에겐 어렵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건 대한민국 정부가 발달장애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인도 이 사회의 당당한 유권자로서 존중받기 위해 힘든 여정을 이어오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박 활동가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에게는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수어 통역, 보조도구 등이 제공된다. 발달장애인에게도 그림이나 사진, 정당 로고 색깔 등이 들어간 그림 투표용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1054명의 발달장애인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탄원서를 작성했다. 발달장애인도 소중한 유권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주먹을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투표보조’ 제공 판결 취지, 그림 투표용지 도입까지 확대 적용돼야”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지난 10월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발달장애인에게 ‘투표보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나아가 헌법을 고려하는 등 넓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라며 “해당 판결은 발달장애인의 그림 투표용지 도입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의 발언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이다영 피플퍼스트광진센터 활동가는 “그림 투표용지를 만들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것까지 법원이 막아서 너무 속상하다. 그림 투표용지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림 투표용지를 만들어달라”고 간곡하게 이야기했다.

이다영 피플퍼스트광진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이 활동가의 왼쪽에는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의 유권자이다!”라고 적힌 피켓이, 오른쪽에는 “후보자 사진, 정당 로고, 넓은 기표칸 그림 투표용지 제작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 참가자가 그림 투표용지의 예시가 그려져 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문석영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그림 투표용지가 있어야 발달장애인도 쉽게 투표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도 함께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초현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도 그림 투표용지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활동가는 “알아보기 쉬운 선거공보물이 있더라도 선거할 때 투표용지가 글로만 되어 있으면 내가 원하는 후보를 찍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소송 원고 중 한 명인 임종운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와 박초현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전시된 그림 투표용지 탄원서들을 보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국피플퍼스트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들이 발달장애인의 그림 투표용지 보장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