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체투지 100회 끝, 권리스티커 무료 광고 시작
장애인들 기어가며 투쟁해도 국회, 오세훈 묵묵부답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복원 안 하면 포체투지 재시작” 권리스티커 부착이 경범죄? 범칙금 폭탄 이제 권리스티커 붙이는 무료 공익광고 투쟁 전개
장애인들의 포체투지 100회가 끝났다. 지난 6월 3일부터 10월 30일까지, 장애인들은 100회에 걸쳐 출근길 지하철 바닥을 기면서 장애인 권리를 외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30일 오전 8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과의 약속대로 포체투지를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투쟁이 끝나는 건 아니다. 전장연은 “지하철 곳곳에 권리스티커를 부착해 시민의 권리를 무료 광고할 것”이라고 전했다.
- 100회 포체투지… 국회와 오세훈은 무응답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두 팔꿈치, 두 무릎, 이마 등 5군데 신체 부위를 땅에 대고 절하는 불교의 예경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은 5군데 신체를 땅에 온전히 대고 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장연은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서 투쟁하는 방식을 ‘포체투지(匍體投地)’라 불렀다. 한자 ‘포’는 ‘기어갈 포’ 자를 쓴다.
전장연은 “과거 장애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지하철에서 엎드려 기어다니며 ‘구걸 행위’를 했다. 그러나 포체투지는 ‘구걸 행위’를 권리행동으로 전환한 시민불복종행동”이라고 말했다.
포체투지 100회가 진행되는 동안 33명의 중증장애인 활동가가 지하철 바닥을 기었다. 전장연은 “포체투지를 하는 중증장애인은 ‘싸우는 신체’로서 비폭력 직접행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장연이 100회 포체투지 투쟁을 전개한 건 △장애인권리보장 7대 법안 1년 내 통과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요구안은 어떻게 됐을까. 우선 장애인권리보장 7대 법안 가운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전면 개정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원법 제정안,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아직 통과되진 않았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해고 철회에 대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묵묵부답인 상태다.
- 범칙금 쌓이고 온몸이 아파도 “또 하면 다시 기겠다”
포체투지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나눴다.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 소장은 “한번 하면 어깨가 쑤신다. 팔꿈치가 그렇게 아프더라. 창피한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더 컸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의) 방패(교통약자 안전지원 발판)가 머리 위에 있으면 되게 참담했다. 머리가 깨져도 돌파하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다”며 웃었다.
전장연에 따르면 현재 서 소장을 비롯해 14명의 활동가에게 범칙금이 부과됐다. 정식 재판을 받게 된 활동가는 9명이다.
서 소장은 “그럼에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장애인)의 권리는 아직 보장되지 않았다. 범칙금은 쌓여가고 몸은 망가져 간다. 그럼에도 (투쟁)하는 이유는 우리의 (권리가 약탈당한)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송민섭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다. 직접 포체투지를 하진 않았지만 100회 동안 포체투지하는 동료를 지원하며 우리의 권리를 외쳤다. 그런데 철도안전법 위반, 불법 광고물 부착 등의 이유로 범칙금이 부과됐다”고 말했다.
송 활동가는 “범칙금이 쌓이는 게 사실 많이 힘들지만 그만큼 우리의 권리가 정말 많이 빼앗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할 권리를 빼앗긴 장애인이) 권리를 되찾는 귀중한 일자리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되찾아오기 위해 함께 변화를 일으키자”고 독려했다.
박현 전장연 보조기기위원회 위원장은 “15년 전 이동권 투쟁했을 때 지하철 선전전도 하고, 열차도 연착시키고, 선로까지 점거했다. ‘우리가 이제 지하철에서 할 게 뭐가 있나’라고 하니 어떤 동지가 ‘기면 되지’라고 했다. 다들 ‘그건 하지 말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장애인이 기는 모습이 시민에게 구걸하는 모습으로 인식됐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박 위원장은 “나에게 포체투지를 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 잠을 한숨도 못 잤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무방비 상태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을 마주한다는 게 굉장한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세 번째 할 때는 1~2시간 정도는 자고 나갔다”고 말했다.
또한 “포체투지는 끝나지만 투쟁은 중단할 수 없다. 아직 400명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아직도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삶을 기만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5년이 되도록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복원하지 않고 400명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2025년 1월 2일부터 다시 포체투지를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동섭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다시 포체투지를 시작한다면 열심히 기겠다”고 말했다.
- 시민 여러분, 시민의 권리를 무료로 광고해 드립니다
활동가들에게 범칙금이 부과된 이유는 주로 권리스티커 부착 투쟁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활동가들이 지하철 바닥이나 벽면에 권리스티커를 붙이려 하면 거칠게 빼앗거나 이미 부착된 스티커를 뜯어내는 등 과잉진압한다. 최근에는 권리스티커 부착 투쟁을 경범죄라며 현장에서 범칙금 5만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범칙금 납부를 거부하면 재판으로 넘어간다.
이제 전장연은 권리스티커 부착 투쟁을 “‘권리스티커 무료 광고’로 부를 것”이라며 “장애인 권리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투쟁으로 다양한 의제의 권리스티커를 제작해 시민에게 광고하며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는 세월호, 성소수자, 페미니즘 등 인권 광고를 불허한 바 있다. 2018년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페미니즘 광고, 2020년 성소수자 인권 광고, 2021년 고 변희수 하사의 복직 소송 광고, 2022년 세월호 참사 8주기 추모 광고 등을 승인하지 않았다.
전장연은 지하철 안전문(스크린도어)에 권리스티커를 붙이며 시민을 향해 “모두를 위한 광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안전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부착하고 있지만 굳이 안전문을 콕 집어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안전문은 장애인의 권리 쟁취로 설치됐는데 안전문 부근에는 기업광고 위주로 유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장연에 따르면 2001년, 시각장애인이 지하철 승강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지하철엔 안전문이 없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승강기와 안전문 설치를 요구했다.
전장연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23년이 지나도록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나 안전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설치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안전문 부근에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애인의 죽음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안전문 부근에는 서울교통공사의 이윤을 위한 광고로 넘쳐나는데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광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장연은 이 자리에 기업과 서울교통공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익광고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우리는 돈 안 받고 권리스티커를 붙여서 시민의 권리를 무료로 광고해 드리도록 하겠다. 장애인 편의시설, 탈시설, 빈곤 문제, 의료급여 개악 등 다양한 스티커를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언론은 장애인들이 지하철 및 승강장 곳곳에 권리스티커를 붙여 청소노동자를 힘들게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이 스티커는 우리의 권리가 보장되면 우리가 스스로 철거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스티커에 삽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현 위원장은 “권리스티커 부착 투쟁이 포체투지보다 훨씬 빡세고(힘들고) 범칙금 폭탄이 엄청나게 떨어질 것 같다. 그래도 함께 투쟁하자”고 했다.
전장연은 31일 오전부터 수시로 수도권 지하철 및 승강장에 권리스티커를 붙이며 투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