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일상 속 투쟁입니다 / 주재영

[기고] 장애인 이동권: 포체투지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기까지

2024-10-31     주재영

[편집자 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월 3일부터 10월 30일까지, 100일간 출근길 지하철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지난 25일, 주재영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도 정부와 지자체에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포체투지에 나섰다.

그러나 포체투지를 마친 후, 주재영 활동가는 또다시 답답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가는 길마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에 대한 참담함을 느껴야 했던 그날의 경험을 담아 주재영 활동가가 비마이너에 직접 쓴 글을 보내왔다.

지난 25일,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시간, 백정 활동가의 메시지가 내 휴대전화에 진동을 일으켰습니다. “신도림역에서 용산역으로 이동해볼까요?”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불안의 파도가 일었습니다. 신도림역은 1호선과 2호선의 환승역으로,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도림역의 복잡한 승강장을 떠올리며, 엘리베이터 하나로 지하에서 지상, 그리고 이동하기에 복잡한 육교까지. 이 그림들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대기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상황을 상상하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저로서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투쟁과 실천은 필요하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두려움은 뒤로 하고, 백정 활동가와 만날 장소를 정한 후 급행 승강장으로 향했습니다. 나의 결심은 단단했습니다.

급행열차가 도착하고, 저는 자리를 잡으며 신도림역으로 출발했습니다. 구로역을 지나며, 열차에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습니다. '다음이 신도림인데, 못 내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익숙한 걱정이 밀려왔지만, 내릴 준비를 하며 마음을 또 잡았습니다. 나는 신도림역에 도착했고, 오늘의 포체투지 출발 장소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습니다.

역에는 나와 동행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서로가 포체투지를 시작할 준비를 하며, 누군가는 현장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사진 촬영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바닥을 기며, 권리 목소리를 외칠 마음의 준비를 하며 계속해서 마음을 잡았습니다. 잠시 후,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탑승해 포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AAC(보완대체의사소통)에 담긴 나의 권리 목소리가 열차 내에 울려 퍼졌고, 온몸을 바닥에 놓고 기어가며 시민불복종 행동에 나섰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애인 권리 약탈 행태를 고발합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의 권리에 연대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을 해고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책임지고 복직을 약속하십시오!”

어느새 도착한 용산역. 오늘도 사고 없이 내가 세 번째 참여한 포체투지 행동은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 투쟁은 언제나 계속됩니다. 포체투지 후 커피 한 잔을 마시기까지도 말입니다.

주재영 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용산역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기 위해 안내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전장연

용산역에서 커피 한잔을 하려고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다닌 용산역인데 이렇게 헤매본 적은 없었습니다. 역 안내도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지만,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표식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커피 마시기 참 힘든 나라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역 안내도만으로는 찾을 수 없어 근처에 있던 종합안내소로 향해 안내 직원에게 문의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가 4층 카페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찾고 싶어요." 안내 직원은 말했습니다. “용산역 내부에는 4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2대 있지만, 현재 수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어요. 테이스트 파크 입구로 들어가 그곳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셔야 합니다.”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수리 중에는 이용을 못 하니 연결된 쇼핑몰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거였습니다.

주재영 활동가가 용산역과 연결된 테이스트 파크 CGV 건물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다. 사진 전장연

동행하는 활동가와 함께 용산역 내부를 돌고 돌던 우리는 용산역과 연결된 테이스트 파크 CGV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막상 4층에 도착하고 보니, 영업 중인 곳이 적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가고 싶던 카페는 가지 못하고, 마침 영업 중이었던 롯데리아에 들어갔습니다. 힘들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눈 후, 역과 연결된 아이파크몰 엘리베이터로 향했습니다. 아이파크몰이 아닌 용산역이라는 공공시설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순 없는 걸까요? 참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에 현장에서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저는 인천으로 내려왔습니다.

포체투지 후 내가 원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이 여정은 이 사회가 저의 이동권과 접근성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다루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체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편리한 이동 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정치인들은 특히 더 노력해야 합니다.

 

* 이 글은 신지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의 지원을 받아 정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