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꼭 가고 싶습니다”… 교육청 회의서 긴급행동 벌인 성인장애인들

전장야협, 시도교육청 협의체에서 긴급행동 방송통신고 특수교육과정 적용 촉구 성인장애인들, 고등학교 진학 대책 직접 요구 교육개발원 “교육부 소관의 일”

2024-11-07     김소영 기자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가 7일 오후 2시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을 촉구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에서 긴급행동을 벌였다. 15여 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회의장에서 피케팅을 하며 발언권을 얻어,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의 필요성을 강력히 호소했다.

전장야협이 7일 오후 2시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을 촉구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에서 긴급행동을 벌였다. 활동가들은 피케팅을 하고 있고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들이 방송통신고등학교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장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작은 현수막에는 각각 “교육부는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이행하라!”(왼쪽), “방송통신고 특수교육과정 적용하라!”(오른쪽)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중학교 졸업해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성인장애인들

대구에 거주하는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진 이상근(54) 씨, 지적장애를 가진 김태완(57) 씨와 이정모(47) 씨는 긴급행동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서울로 향했다. 세 사람은 모두 성인장애인을 위한 학교인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학생이다.

상근 씨는 초등학교, 태완 씨 그리고 정모 씨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각자의 우연으로 대구시 최초의 장애인야학인 질라라비야학을 만난 이들은 새로운 삶을 맞이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지난 8월 31일에는 질라라비야학에서 중학학력인정 문해교육 기본교육과정을 졸업했다. 인생의 절반쯤 살아온 지금, 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의 경우,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성인장애인들에게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다.

상근 씨, 태완 씨와 정모 씨를 비롯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중학과정 졸업생 10명은 모두 고등학교 진학을 희망했다. 검정고시를 보면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할 수 있지만, 중증장애인이 이를 치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이곳저곳 알아봤지만 모두 거부… ‘방송통신고’마저 진학 어려워

그렇다고 배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구 지역의 특수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교육청은 나이가 많아 특수교육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특수교육법에서 규정하는 특수교육대상자는 만 3세에서 만 17세까지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대구에 1곳 있는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로의 진학을 고려해 봤지만, 해당 시설은 장애인이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중증장애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사립으로 운영되고 있어 교육청은 해당 시설로의 중증장애인 진학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중학교 졸업 학력을 인정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는 방송통신고등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국무총리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운영하는 학교이다. 그러나 방송통신고등학교에도 특수교육과정과 장애인 지원 서비스가 없었다.

지난 9월 초, 전장야협은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을 요구하기 위해 교육부 학생맞춤통합지원과, 한국교육개발원 방송통신중·고 운영센터와의 협의를 진행했다. 교육부는 현재 특수교육과정 신설 계획이 없으나 11월에 진행될 방송통신중·고 17개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에서 해당 내용을 논의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전장야협은 해당 회의에 참관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질라라비야학 학생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이날(7일) 해당 회의 자리에 찾아왔다.

전장야협 활동가들이 방송통신고등학교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장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작은 현수막에는 각각 “교육부는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이행하라!”(왼쪽), “방송통신고 특수교육과정 적용하라!”(가운데), “방송통신고 특수교육과정 고시 제정하라!”(오른쪽)라고 적혀있다. 사진 김소영

- “고등학교 갈 수 있는 방법 찾아달라”… 교육개발원 “교육부 소관”

회의 시작 30분 전,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과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은 방송통신중·고 사업운영위원회 위원장인 하광호 울산교육청 장학관과의 면담을 가졌다.

전장야협은 협의체에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고시 제정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 △장애인 편의제공 의무 이행을 요구했다. 하 위원장은 “요구안을 검토해 보겠다. 당장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학사들과 논의를 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을 했다.

박경석 전장야협 이사장과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이 방송통신중·고 사업운영위원회 위원장인 하광호 울산교육청 장학관과 면담을 가지고 있다. 사진 전장야협 제공

면담을 통해 전장야협은 회의의 첫 번째 안건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 특수교육과정 적용을 논의하도록 했으며, 논의 전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상근 씨, 태완 씨 그리고 정모 씨는 장학사들 앞에서 자신의 요구를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고등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 꼭 방법을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하며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인 이정모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조민제 교장은 회의 자리에서 “등록장애인이 260만 명인데 140만 명 이상이 중학교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다.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질라라비야학은 중학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이 고등과정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있어 별도의 과정을 급하게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계속 고등과정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이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준비 과정만 되풀이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조 교장은 “지적장애인 분들이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회의에 찾아오는 게 불편하실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성인장애인의 교육권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수학교 진학이 됐든, 방송통신고등학교가 됐든 성인장애인이 고등과정을 진학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들을 모두 모색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조 교장은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회의 이후 김수진 교육개발원 방송통신중·고지원센터 총괄기획팀 박사와 통화한 내용을 전했다. 김 박사는 조 교장과의 통화에서 “이번 계기를 통해 시도교육청에서 성인장애인의 고등과정 진학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 반면 “방송통신고등학교의 특수교육과정을 고시하는 것은 교육부의 권한”이라고 이야기했다.

조 교장은 “성인장애인의 교육과정 진학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학령기에 기회를 박탈당한 장애인을 냉대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교육부에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책임을 계속 회피한다면 직접적인 투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장야협 활동가들이 방송통신고등학교 시도교육청 협의체 회의장 앞에서 작은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