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입니다 / 손어진

[전장연, 유럽에 가다: 파리 특사단 이야기 ⑥]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일정에 함께 연대해 전장연 파리 특사단 방문, 각 국가에 큰 울림 줘 전장연의 투쟁에 깊이 공감한 독일과 프랑스 활동가들 “우리가 꿈꾸는 해방이 맞닿는 곳에서 자주 교차할 수 있길”

2024-12-27     손어진

[편집자 주] 지난 8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을 파견했다. 40여 명의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구성된 특사단은 8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를 순회하며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알렸다.

특사단은 유럽 3개국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다이인(die-in) 행동 등 총 24회의 직접행동과 투쟁, 20개의 장애인권 관련 기관·단체 방문 및 면담, 2번의 장애인인권영화제를 진행했다.

특사단은 왜 유럽까지 가야 했을까.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유럽에 간 것일까. 그곳에서 무슨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을까. 특사단의 여정을 생생히 듣고 기록하고자 다양한 특사단원의 이야기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세상”을 위한 노르웨이의 장애인 교육 / 조희은
②-1 노르웨이·독일·프랑스에서 확인한 ‘자립생활’ 이념의 중요성 ① / 이정한
②-2 노르웨이·독일·프랑스에서 확인한 ‘자립생활’ 이념의 중요성 ② / 이정한
③ 나는 파리 특사단의 활동지원사 / 정윤지
④ 우리의 하루하루는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 박상호
⑤ 장애인권리약탈자 오세훈, 서울 올림픽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 이규식
⑥ 당신들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입니다 / 손어진

10년 전 베를린에 온 지 얼마 안 돼, 가까운 우반(U-Bahn, 독일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가본 적이 있다. 베를린 자치구(區) 중 하나인 슈판다우(Spandau) 구청역을 빠져나와, 구도심 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구경했다.

출신이나 종교를 짐작해 볼 법한 피부색, 언어, 옷차림이 다양한 사람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히잡을 쓴 여자,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 유아차를 밀고 가는 남자, 브래지어를 안 한 여자…. 한국에선 잘 보이지 않던 장면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길을 가는 사람, 비장애인 친구들과 대화하며 가는 사람, 수동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과 함께 가는 사람. 가다 말고 휠체어를 멈추고 단골로 보이는 가게의 일하는 사람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고 덩달아 마음이 좋았던 게 기억난다. ‘슈판다우는 참 살기 좋은 동네구나’ 집에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 전장연 파리 특사단 방문, 각 국가에 큰 울림 줘

독일의 장애인 정책을 면밀히 들여다본 것은 한국에서 전장연이 지하철 출근길 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다. 한 시민이 다른 시민과 똑같이 아침 시간대에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노동하러 가겠다는 것을 두고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이준석 씨가 ‘문명이냐 비문명이냐’ 갈라치기를 할 때, 독일은 이 ‘비문명’, 즉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일상적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야만의 시간을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 알고 싶었다.

‘68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독일의 장애 운동사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로를 봉쇄하고, 쇠사슬로 몸을 묶고, 도로를 점거한 장애 운동가들의 투쟁이 있었다. 이에 독일 시민사회가 연대했고, 정치권이 반응했다. 물론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독일 장애 활동가들은 도시철도를 비롯해 대중교통의 100% 배리어프리를 요구하며, 기차선로에 몸을 매다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1)

전 세계 장애인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중교통 100% 배리어프리는 달성했지만 독일 정부가 2008년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베를린, 전체 16개 지하철 노선 중에 14호선 단 한 개만 배리어프리 시설이 갖춰진 파리. 한국 전장연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방문은 무엇보다도 해당 국가에서 장애운동을 하는 당사자 활동가, 장애인권 단체, 한국 교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리퍼블리크 광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사진 김소영

- 전장연의 투쟁에 깊이 공감한 독일과 프랑스 활동가들

독일 장애인권단체 사회영웅(Sozialhelden) 대표 라울 크라우트하우젠(Raul Krauthausen)은 전장연의 베를린 방문을 무척 반겼다. “독일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살해, 이것은 독일 사회에 전혀 가시화되지 못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골형성부전증을 가지고 태어나 지난 20년 이상 장애인 이동권과 사회 참여, 탈시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크라우트하우젠은 한국에서 진행되는 탈시설, 이동권, 노동권 투쟁을 긴 설명 없이도 공감했다.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라울 크라우트하우젠 사회영웅 대표. 사진 김소영

프랑스 최대 장애인협회(APF) 파리-생상드니 지역 이사인 파스칼 오베르트(Pascal Aubert)는 파리 특사단이 보여주는 서울시 지하철 아침 출근길 선전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멈춰있는 프랑스 장애운동에 전장연의 투쟁이 큰 불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망과 냉소로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 프랑스 장애인권 운동가들, 특히 젊은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전장연의 투쟁 방식을 배울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에 열릴 대규모 협회 워크숍에 전장연 활동가를 초대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는 파스칼 오베르트 이사와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사진 김소영

- 당신들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입니다

“이건 승차 거부예요!” 베를린에서 만원이라 우리를 태울 수 없다는 버스 기사의 말에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말한다. 평소라면 다음 차를 기다려 타고 말았을 일을 곱씹어보니 승차 거부가 맞다. 버스에는 명백히 장애인석이 존재하고, 휠체어 사용자가 그 자리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사는 장애인석을 차지하고 있는 비장애인 승객들에게 하차를 요구해야 했다. 모두가 늦지 않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싶은 것처럼, 우리도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 도착하고 싶다.

다음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안엔 사람들로 가득하다. 기사는 또다시 기다렸다가 다음 차를 타라고 한다. 문을 잡고 우리도 약속이 있다고 말한다. 유아차를 잡고 있던 여성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내린다. 동시에 장애인석에 서 있던 비장애인 승객들이 자리를 비키고 몇몇은 내린다. 기사가 내려 접이식 발판을 준비해 준다. 전장연 활동가들의 휠체어 세 대가 버스에 오르고 우리는 함께 출발한다.

유아차와 함께 내리면서 우리에게 미소를 지은 여성은 알 것이다. 독일 장애 운동가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저상버스는 휠체어 이용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누구나 탑승하기 쉽도록 문턱을 낮추고, 유아차, 휠체어, 보행 보조기구와 함께 탈 수 있도록 넉넉하게 공간을 배치한 버스는 보행 약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유익이 된다.

베를린에서 저상버스에 탑승하고 있는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 특사단원. 사진 김소영

파리 지하철 선전전에 연대하러 나온 사샤 바로폴스카야(Sasha Yaropolskaya)는 우리의 억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는 파리 패럴림픽의 화려한 모습과 달리 프랑스의 장애인들은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빈곤 속에서 살아간다며 “당신들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입니다”라며 전장연의 투쟁을 지지했다.

지하철 14호선만, 정시에 도착하지 않는 버스만 타야 하는 프랑스 장애인을 대신해 전장연 파리 특사단이 매일 아침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것이다.

베를린장애인인권영화제 현장.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내가 노동해서 번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왔다니요. 꿈을 이룬 것 같습니다.” 베를린장애인인권영화제 패널로 나온 이은혜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말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그는 활동지원사, 전동휠체어와 이동식 호이스트(중증장애인 이동을 돕는 보조기구)와 함께 오슬로, 베를린, 파리 15일 간의 여정을 끝까지 해냈다.

“꿈을 이뤘다”는 그의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 수 있는 게 당연한 것이 되어 박수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랐다.

내가 꿈꾸는 사회, 이 미래를 앞당기며 살고 있는 사람들, 전장연 특사단과 우리의 억압이 만나는 곳, 우리가 꿈꾸는 해방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자주 교차할 수 있길 바란다.


1) 1987년 독일 뮌헨시에서 세계 최초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했고, 1993년 프랑크푸르트시에서 저상트램을 도입했다. 1994년 독일 정부는 기본법(헌법)을 개정해 “누구든지 장애 때문에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제3조 제3항 제2문)”라는 장애인 차별금지 조항을 명시했다. 2002년 독일 정부는 장애인의동등취급에관한법률(BGG)을 제정했고, 2008년 모든 국가가 사회 각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장애인의 권리와 존엄을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배리어프리로 만들 것을 약속했다. (참고 기사: 프레시안 ‘장애인 운동, 독일에 묻다’ 기획 연재) 

 

필자 소개

손어진 2024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베를린, 파리 일정에 연대한 한국 녹색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