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겨울, 세 번째 시민 / 전근배

[칼럼] 전근배의 받아쓰기

2024-12-30     전근배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 가수 루시드 폴, 노래 ‘평범한 사람’ 중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가수 오지총, 노래 ‘헌법 제1조’ 중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눈 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 가수 소녀시대, 노래 ‘다시 만난 세계’ 중

2021년 4월 1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용산4구역 자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규탄 용산참사 유가족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 뒤로 용산 센트럴파크 건물이 높게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첫 번째 겨울에 만난 첫 번째 시민은 ‘범인(凡人)’이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참사는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일어났다. 2009년 1월 20일 재개발에 반대하던 철거민 30여 명이 건물 옥상 망루에서 농성을 벌였다. 지상의 용역 깡패가 무서워 엄포용으로 들고 올라간 시너 수십통이 하루만에 투입된 200여 명의 무장 경찰특공대의 폭력 진압으로 화마가 되어 돌아왔다.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끝내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다. 누군가는 참사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으니 곧 시민의 분노가 들끓어 오를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공안 통치의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이라며 이명박 정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서 공권력에 의해 시민이 죽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시민은 모이지 않았고, 유족은 남일당 현장에 고립되었다. 정부와 여당, 언론에 의해 철거민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었고, 수사기록을 은폐한 검찰에 의해 화재의 원인은 화염병으로 단정되었다. 시위자들은 감옥으로 수감됐고,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국회로 입성했다. 참사의 땅에는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 스퀘어라는 초고가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고, 오징어게임과 같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뉴타운 게임’은 2006년, 2010년,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흥행했다. 평범한 사람은 ‘범인(犯人)’이기도 했다.

2017년 2월 14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사진출처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한 비상국민행동

두 번째 겨울은 8년 뒤 돌아왔다. 두 번째 시민은 ‘명령자’였다. 시민은 외부의 적폐를 찾았다. 박근혜 퇴진과 적폐 청산을 외치며 광장을 메웠고 긴 시간을 지켰다. 무도한 공인과 괘씸한 사인에 의해 훼손된 민주주의의 회복과 수호를 바랐다. 세월호 참사, 역사 왜곡 교과서 국정화, 공공부문 민영화, 노동법 개악, 사드 배치, 차별금지법 제정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제기한 민중총궐기가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으로 이어졌다. 범국민행동이 있었던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만 23차례의 집회에 총 1,7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앞서 개최된 민중총궐기 시기를 포함하면 2015년 11월 14일부터 533일 동안 광장의 촛불이 타올랐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정권만 교체되었다. 이전보다 민주적 절차가 갖추어졌고 농단으로 추락했던 대외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이렇다 할 청산과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이 임기 내 평균 50%대, 임기말 40%대의 지지율로 유지시킨 최초의 정부였지만, 그럼에도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한 전망 없는 권력이었다. 촛불 정부가 어느 때보다 시민의 기대와 염려, 그리고 실질적 권한을 함께 얻고 있었다는 점에서 실패의 원인을 외부 요인으로만 두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윤석열 정부 동안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과 냉소에서 한동안 시민이 헤어 나오지 못했던 이유, ‘시민’이 사라져버렸던 배경에는 그의 폭정 이전에 촛불 수명자들의 태만이 있었다.

지난 22일, 농민과 시민의 힘으로 남태령 경찰차벽을 넘었다. '윤석열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출처 전장연

다시 8년이 지나 세 번째 겨울이 다가왔다. 세 번째 시민은 이제 ‘수행자’의 모습이다. 민주공화국의 변두리에 남겨졌던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담담히 시민의 공간으로 모이고 있다. 용산 남일당의 망루에서, 진도 팽목항의 바다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 복도와 이태원 173-7 골목에서, 청주에 살았다는 변희수 하사의 집에서, ‘건폭(건설 폭력배)’으로 내몰려 분신한 노동자의 묘소에서, 생계와 돌봄을 해결하지 못해 세상을 등진 어느 장애인 가정에서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 유령이 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소리 높던 시민은 이제 경청하고, 침묵 해온 시민은 이제 말한다. 밖을 향해 명령하던 시민은 이제 서로에게 응시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교체된다. 한 사람의 몸에서 매일 3천억 개의 세포가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변화무쌍한 시민의 감각이 다른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시민을 길러낸다. 세 번째 시민의 민주주의는 농민과 남태령을 넘고, 장애인과 지하철에 눕는다. 세 번째 시민은 민주주의가 불완전할 때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다고 믿을 때 실패한다는 것을 안다. 세 번째 시민에게 민주주의란 완전무결하여 지켜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부족하고 약하기에 서로 돌보고 채워야 할 무엇이 되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시민은 더는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 탈시설정책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종종 연구도 한다. 온전히 받아쓰는 일을 활동과 연구의 주된 목적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rmsqo1294@gmail.com